칼럼과 시론모음

전선 지중화 이익은 누구에게 / 권영선

강산21 2008. 1. 23. 22:05
전선 지중화 이익은 누구에게 / 권영선
기고
한겨레
» 권영선/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대불공단 전력선 지중화 문제를 정부의 규제완화 실패 사례로 언급하면서 공무원의 책임회피 행태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공무원 직무유기의 상징으로 간단히 처리할 게 아니라는 점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대불공단 전선 지중화 문제는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영역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가와 직결된 한 차원 높은 문제다. 우선 현재의 전봇대는, 선박조립품 이동 방식에 애로를 호소하는 기업들의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최적의 방식일 수도 있다. 전선 지중화로 절감되는 비용이 지중화 비용보다 적다면 지금처럼 선박조립품을 옮기는 것이 해당 기업들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최적의 생산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민원을 제기하는 모든 지역의 전선 지중화를 정부가 해결할 것이 아니라면 대불공단의 전선 지중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살펴볼 부분이다.

 

반대로 전선 지중화로 절감되는 금액이 그에 수반되는 비용보다 커서 지중화가 사회적으로 최적의 대안이 된다고 할지라도 정부의 개입이 항상 정당화되거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중화로 절감되는 금액이 지중화 비용보다 크다면, 공단의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전선 지중화를 추진할 유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부가 전선 지중화를 예산으로 추진한다면 정부 예산 낭비일 따름이다.

 

물론, 코스를 비롯한 많은 제도경제학자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생산방식이 항상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대불공단의 기업들 전체적으로는 전선 지중화를 통해 이윤을 얻을 수 있을지라도 서로 무임승차를 하려고 눈치만 보거나 공단 내 기업이 많아서 전선 지중화 비용 분담을 협의하기 어렵다면 전선 지중화 문제는 시장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대불공단에 처음에는 운송장비와 금속조립 분야 기업들이 입주했고 2000년 이후에 선박블록 업체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수 기업들은 전선 지중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고, 현재의 선박블록 생산업체들만 협력을 해서는 전선 지중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부가 간여해서 전선 지중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는 있으나, 정부가 예산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정부 예산으로 이 사업을 추진한다면 이는 단순히 정부가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들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 된다. 정부가 전선 지중화 사업을 해주면 그만큼 선박블록 생산기업의 원가가 하락하게 되고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향상된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선 지중화를 통해 저하된 생산비용은 선박 생산 대기업의 이윤을 그만큼 증가시켜 주는 꼴이 된다는 점이다.

 

결국 대불공단 전선 지중화 문제는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에 하청을 준 대기업과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들이 전선 지중화 때 절감되는 비용이 지중화 비용보다 큰지 작은지를 판단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굳이 한몫을 하고 싶다면 대불공단의 선박블록 생산기업에 하청을 준 대기업에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라고 재촉하는 데 그쳐야 한다.

 

상당 기간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려오고 있음에도 대불공단의 전선 지중화 문제가 이 사업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대기업 주도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비용절감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대불공단의 전봇대 문제는 공무원보다는 대기업이 질책받아야 할 문제다.

 

권영선/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