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뱀과 옥수수

강산21 2008. 2. 29. 18:18
[유레카] 뱀과 옥수수 / 여현호
유레카
한겨레  여현호 기자
» 여현호 논설위원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주에 사는 이룰라족은 인구 6만3천여명(2000년)의 작은 부족이다. 주로 농사를 짓지만 뱀을 잡아 생계를 잇는 사람도 많다. 한창 때 인도는 연평균 500만마리치 뱀가죽을 수출했다. 뱀가죽은 허리띠·구두·핸드백 등의 재료다. 돈벌이가 되는 뱀 잡이에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뱀이 줄고, 대신 뱀의 먹이인 쥐가 크게 늘었다. 쥐들은 연간 곡물 생산량의 30∼50%를 먹어치웠다. 결국 인도 정부는 1976년 뱀가죽 수출을 금지했다.
 

살길이 막막해진 땅꾼들은 이룰라땅꾼산업협동조합을 세웠다. 이들은 뱀을 잡아 세 차례씩 독을 짜낸 뒤 야생으로 돌려보냈다. 모은 독은 혈청으로 정제돼, 독사에 물렸을 때의 해독제로 만들어졌다.

 

이룰라족에겐 좋은 선택이었다. 우산뱀 50마리를 잡아 가죽을 벗겨봐야 300루피(6∼7달러)밖에 못벌지만, 그만큼의 뱀한테서 독을 짜내면 10배나 많은 수입이 생겼다. 쥐를 잡을 뱀이 많아졌으니, 농부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지구촌 차원에선 어떨까. 고유가 행진이 몇해째 계속되면서 대체 에너지로 옥수수를 비롯한 바이오 에탄올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크게 늘었다. 미국에선 지난해 옥수수 생산량의 20% 정도가 에탄올 생산에 투입됐다. 그 때문에 옥수수값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60% 이상 올랐다. 옥수수는 미국내 가축사료 성분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옥수수값 앙등이 사료값에 반영되면서 육류와 우유·달걀 등의 가격이 올랐다. 옥수수 공급이 줄면서 다른 식용 곡물값도 올랐다. 고급 밀은 1년 전에 견줘 세 배, 대두는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는 가공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젠 농업(agriculture) 생산물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상승(inflation)을 이끄는 ‘에그플레이션’(agflation)까지 거론된다. 이룰라족처럼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걸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