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서화숙 칼럼/3월 13일] 코드 위에 법

강산21 2008. 3. 13. 12:06

[서화숙 칼럼/3월 13일] 코드 위에 법


딱 5년 전 신문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씨는 커피를 직접 타 마셨다. 국무회의실에 차가 있는 탁자를 갖춰 놓았으니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거기 가서 차를 타 마셨다. 그게 지금 이명박 대통령처럼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때는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적는 게 고작이던 국무회의가 본격적인 토론장이 되었다는 것이 더 화제였기 때문이다. 세시간씩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하는 국무회의는 단연 이전 정부와는 달라진 특징으로 대서특필되었다.

5년 후로 다시 돌아오니 대통령이 커피를 직접 타 마신다는 것이 확 달라진 청와대의 모습으로 거의 모든 신문에 크게 소개됐다.

5년 사이에 청와대 국무회의 커피는 '셀프'에서 '서비스'로 다시 바뀌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대통령이나 장관이 직접 차를 타 마시는 국무회의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은 기억할 만한 사람은 다 기억한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일을 보면 정부가 '친언론적'(프레스 프렌들리)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언론이 '친정부적'으로 바뀐 것이다.

■ 법에 정해진 기관장 임기

그래서인가,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를 비판하던 언론들은 이명박 정부의 코드인사에 대해서는 아무 비판이 없다.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를 비판하지 않았던 나는 이명박 정부의 코드인사에 대해서도 비판할 생각이 없다.

정치적인 인사란 코드가 맞는 것이 본령이기 때문이다. 코드가 맞는 능력가를 고르되 제발 법을 지키고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사람을 골라달라는 주문을 할 뿐이다. 코드에 앞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법과 도덕을 준수하는 사람을 제대로 못 찾아 문제 있는 장관과 수석의 임명을 강행한 정부가 느닷없이 '코드'를 앞세우며 공공기관의 기관장들한테 물러나라고 한다. 한나라당 원내 대표가 발언하더니 문화부 장관, 지식경제부 장관이 다음날로 다시 언급을 했으니 이것이 이 정부의 초미의 관심사인 모양이다.

코드가 맞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여당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한나라당 공천전에서 이미 박근혜씨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대통령으로서는 어려운 시기에 곁을 지켜준 공신들에게 어서 한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은 심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 인사들이 언급하는 자리는 모두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독립기관들이다.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지키라고 국민이 합의해준 자리들이다. 그런데 이런 기관장을 '코드'가 다르니 나가달라는 것은 코드를 지키기 위해 법과 원칙은 무시해도 좋다는 말이 된다.

이런 주장을 펴면서 국민의 뜻과 좌파 이념을 들먹이는 것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 좌파 이념으로 치자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좌파라는 것인지 애매할 따름이다. 혹시 좌파라는 말을 예전의 '빨갱이'처럼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주문으로 여긴다면 더 걱정스럽다.

■ 이념차 아니라 흠 있어야 교체

국민의 뜻을 말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48.7%이다. 투표율이 62.9%였으니 실제로 지지해서 표를 던져준 사람은 유권자의 30.6% 뿐이다.

3분의 2가 넘는 유권자가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국민의 뜻이니 대통령에서 나가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3분의 1이 아니라 단 1%가 지지했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를 존중하기로 법에 따라 온 국민이 합의했다. 그게 작동하는 곳이 민주국가이다.

그러니 기관장을 바꾸고 싶다면 그들에게서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법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찾아내기 바란다. 그래서 그보다 훨씬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을 제시해 주기 바란다. 그게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에게 박수 받으면서 적들과 싸우는 방법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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