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붕어빵 팔던 대학생 민기야, 미안

강산21 2008. 3. 14. 12:53

[장영희]붕어빵 팔던 대학생 민기야, 미안

2008년 3월 14일(금) 3:00 [동아일보]

 
 
우리 동네엔 몇 년 전 누군가 벚나무 10여 그루를 나란히 심기 시작해서 ‘꽃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있다.

그 길 한쪽엔 지금 ‘청정 붕어빵’이라고 쓰인 천막 우산과 빈 손수레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겨우내 민기라는 청년이 등록금에 보탠다고 붕어빵 장사를 했는데 개학이 돼 폐업한 모양이었다.

지난달 그 청년에게 등록금을 얼마나 준비했느냐고 물었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55만 원이오. 턱도 없지요, 등록금 만들려면. 그래도 55만 원이 어디예요.”

꽃길을 돌아 놀이터 입구 옆에는 의류수집함이 있다. 키 작은 할머니가 윗부분에 있는 개폐구에서 삐죽 나온 옷을 꺼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 지나던 중년남자가 옷을 꺼내 할머니께 드리며 물었다. “할머니, 이거 하나 파시면 얼마 받으세요?” “이런 헝겊은 그래도 한 개에 60원이여. 상자는 한 개 50원이고.”

놀이터를 돌아 조금 내려가면 ‘서민 할인마트’가 있다. ‘딸기 1킬로에 5000원!’이라고 적힌 푯말 옆에서 두 아주머니가 승강이하고 있다. “아, 몇 개 더 얹어.” “애고, 이거 팔아봐야 얼마 남는다고 그래….”

등록금 모으려고 겨우내 장사

유난히 따뜻했던 3월 어느 봄날 우리 집이 있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풍경이다. 그다지 부자 동네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다지 가난한 동네도 아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붕어빵을 굽는 청년이 있고, 상자보다 10원 더 받는 옷가지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폐품 수집 할머니가 있고, 덤으로 딸기 몇 알 더 얻으려는 아낙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곳이다.

그런데 난 가끔 이 땅 어딘가에 우리가 전혀 모르는 나라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 같은 땅에 살고 같은 말을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모르고,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

이명박 정부 내각 장관 후보들의 평균 재산은 40억 원대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부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들이 부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정도의 재산에 놀라는 국민들이 더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30여억 원을 신고했다는 모 후보는 “부부가 25년 교수를 했는데 그 정도도 못 모으는가?”라고 항변했다.

나도 적지 않은 월급을 꼬박꼬박 주는 대학의 교수이고, 내 주변에도 부부 교수가 꽤 있지만 25년 교수생활에 그저 강북의 내 집 한 채에 자식 둘 대학 보내면 재정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건강검진 결과 잘 나왔다고 남편이 축하하는 의미에서 오피스텔을 하나 사주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내가 산 골프장 회원권은 겨우 4000만 원짜리(당시 가격)인데 그것 갖고 그러느냐”고 눈 크게 뜨고 반문하는 후보도 있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낀 논문을 코앞에 들이밀어도 창피해하기는커녕 “잘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후보도 있고, 어느 후보는 지난 1년간 교통위반 딱지만 11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지적당하자 쾌활하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기사에게 싫은 소리 좀 하지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보면 “그들은 함께 폴로를 치고 함께 부자인(rich together) 곳만 좇는 사람들이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들도 ‘함께’ 골프를 치고 ‘함께’ 부자이고,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모 TV 방송에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얼마 전에 소개된 ‘배달의 달인’은 시장에서 옷 배달을 하는데 온몸에 보따리를 주렁주렁 매단 채 눈만 빠끔히 내놓고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뛰어다니는 청년이었다.

PD가 힘들지 않은가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아직 세상이 땀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자 PD가 “신문 보니까 땀에도 거짓말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말하자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신문에 나죠!”

다른 나라 사람같던 장관후보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은 땀에 거짓말을 하면 신문에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나라 사람들은 함께 부자이고, 함께 골프 치며 이 땅 어딘가에 살고 있다. 이제껏 그래 왔듯이 그냥 자기네끼리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 두면 된다.

하지만 겁나는 게 있다. 새 대통령이 우리가 모르는 바로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일까 봐, 그게 무섭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