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정치의 실종, 이명박 정부의 위기 / 박명림

강산21 2008. 3. 19. 21:45
[세상읽기] 정치의 실종, 이명박 정부의 위기 / 박명림
세상읽기
한겨레
»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능력과 전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최근 조사들을 보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초기 지지도는 39.9%, 48.4%, 56.8% 등으로 나타나 민주화 이후 최악의 수치다. ‘도덕성보다는 능력’이 당선 요인이었고, 또 ‘당선 효과’ 덕에 기대와 지지가 가장 큰 임기 초라는 점을 고려할 때 ‘능력 부재’로 인한 국민 지지의 철회는 자못 걱정스럽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미리 쓴약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요인은 정치와 민주적 가치의 실종이다. 대통령의 언어, 철학, 인사, 방문, 만남의 일관된 기조는 경제, 기업, 경쟁, 효율, 성장, 규제 완화 쪽으로 치우쳐 있다. 반면 공정, 균형, 타협, 평등, 참여, 여성, 노동, 복지와 같은 민주 정치의 핵심 용어와 가치들은 찾기 어렵다. 온통 기업과 경제 관련 언술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 정치 없는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 기업 경제는 기업 운영이라는 경제로 살아나지만, 국가경제·국민경제는 국가 경영이라는 정치에 의해 살아난다. 즉 국가경영에서 경제는 자유·평등·삶의 질·행복과 같은 인간적 가치를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인사에서도 하자 있는 후보를 내 밀어붙이는 것 못지않게 큰 문제는 정치 폄하다. 예컨대 대통령도 기업인 출신인데 총리-대통령실장-정무수석으로 이어지는 ‘대통령 정치’의 핵심 라인에서 정치를 제대로 담당할 사람은 없다. 민주주의에서 국민과 호흡하며 성장한 선출직의 역할은 너무 중요하다.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국정운영 핵심에서 대표체계를 배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를 배척하며 성공한 민주주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국가 의제, 국민 의제로서 ‘대통령 의제’ 제시의 실패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부의 성패는 바른 대통령 의제의 설정과 실현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의제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자원 외교, 물가 관리, 노동 안정, 대북 정책 수정이 시급하다고 해서 그것들이 처음부터 대통령의 입을 통해 핵심 국정 의제처럼 부각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은 핵심 대통령 의제를 통해 뚜렷한 국가 비전·목표·신념을 보여줘야 하나, 지금의 언명과 활동은 특정 기업의 전략회의 주재 또는 특정 장관의 지시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한 부서 장관이나 한 회사 사장을 선출한 것이 아니다.

 

끝으로 국회의원 후보 공천 문제다. 여야 모두 정당 대표 후보를 지역구민이나 당원의 밑으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선출’하지 않고 대표성 없는 극소수가 ‘심사’를 통해 위로부터 ‘공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 위배된다. 공천제도 자체가 반정당적·반민주적·반주권적인 것이다. 따라서 위헌 소지도 있다. 게다가 소수 당외 인사들의 정당 공천 참여는 정당정치를 기저부터 무력화한다. 현행 공천제도는 빨리 폐지될수록 좋다.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이지 ‘추인하는 과정’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현 정부 여당은 이러한 반민주적 제도를 활용해 대통령당, 이명박당을 만들려 무리를 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정부에 걸쳐 ‘여당의 등장과 소멸’ 및 ‘대통령 탈당’의 반복이었다. 집권 초기에는 무리하게 ‘대통령 정당화’에 성공하나 후기로 갈수록 외려 ‘대통령 탈당 요구’ ‘탈대통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대통령 정당화와 탈대통령화의 양극단은 민주정부의 능력에 치명적 약점을 초래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바로 그 길을 가고 있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