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국제칼럼] 권력의 아름다운 뒷모습

강산21 2008. 3. 17. 18:23

[국제칼럼] 권력의 아름다운 뒷모습
시민 노무현 소탈 행보 퇴임 대통령 새 문화 만들어 l
2008.03.16

 


 

 

김미선 수석논설위원

mskim@kookje.co.kr 

 

 

16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이 한창이었던 2002년 4월, 갑자기 출현한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해 '이유있는 노풍'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개혁 요구의 뇌관을 때린 정치인으로, 애매모호한 정치수사가 아닌 직설적인 어투는 특별한 데가 있어보였다. 본선마저 불확실해 보이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비주류 대통령으로 숱한 질타를 받았지만 구겨지지 않은 모습으로 퇴임했다.

 

그런데 퇴임대통령이 된 그에게서 제2의 노풍이 불고 있다. 호기심에 찾아간 제2 노풍의 진원지 봉하마을은 평일 오후 2시쯤이었는데도 대통령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임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온 관광객들이 대통령을 부르는 구령은 이제 유행이 된 모양이었다. 사저가 비어있다는 말도 아랑곳않고 50, 60대로 보이는 남녀관광객들은 하나 둘 셋 하더니 일제히 "보고싶어요~"라고 소리쳤다.

 

60대쯤 되어보이는 한 남자는 프리지어와 장미꽃 몇 송이를 들고 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하겠다고 서성댄다. 퇴임해서 만나볼 수 있게 된 전 대통령의 수고를 위로해줘야 한다고. 아주머니 수십 명은 대통령 얼굴을 볼 때 까지 기다리겠다면서 멍석을 깔아달라고 난리다. 지난 5년 동안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유행어였을 만큼 덧칠된 부정적 이미지는 '그때가 좋았다.''벌써 노무현이 그립다.'라고 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

 

생가와 사저 입구에 놓인 어느 열혈시민이 만든 10여 개의 대형 화이트보드에는 한결같이 5년 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편하게 고향에서 쉬시라는 내용들이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을 권력을 누렸다고 경원시하지 않고 고생했다고 위로하는 것이 민심이라니. 언론권력의 부당한 비판을 지적하는 글들이 많은 것은 같은 언론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노 대통령의 생가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가난해서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상고를 나와 고시를 패스함으로써 주류사회의 한 끄트머리에 진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대통령이었지만 사실상 주류에서 왕따당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직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귀향한 첫 대통령이 됐다. 현직에 있을 땐 결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소탈한 행보로 민주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은 이제 편가르기에 안 들어가서 힘들 게 없다. 그래서 평가가 후한 것이라면서 진영읍민으로, 김해시민으로, 경남도민으로, 되도록 사인의 삶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잘 구분하는 셈인 노 전 대통령은 현인의 부류에 속한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섰던 사람이 깡촌인 고향에 낙향해서 도랑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동참하고 동네사람들과 인사하고 구멍가게에서 담배 피우는 촌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가 한국의 전임대통령으로서는 파격이다. 죽어서야 청와대를 나오고 감옥에 붙들려가던 전직 대통령, 권력의 끈은 놓았지만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집착을 보였던 퇴임대통령이 아닌 새로운 대통령의 상을 보여준다.

 

 

금배지의 맛에 중독되어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진저리가 날 판에 시민으로 돌아와 편안해하는 전 대통령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다.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앉았음에도 권력의 독에 중독되지 않은, 어찌보면 권력에 대한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겸연쩍은 듯 씩 웃는 그의 웃음은 착하고 정직한 그의 천성의 일단을 드러낸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보면 그는 섬세함과 과단성을 함께 지닌 보기 드문 우리시대의 대통령이었다. 전국 노사모가 결성되고 그를 변함없이 지지하고 있는 것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현직 대통령시절에도 가장 적나라한 승부세계인 정치판에서 페어플레이를 하려고 끝까지 노력한 그는 눈밝은 지지자들의 기대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좋은 책을 읽으면 행복하다는 그는 그 풍부한 감수성으로 퇴임 후 더 좋은 역할을 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그런 전임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대통령 감식안도 밝아질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하나의 시대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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