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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혼돈의 정치, 멸렬의 정당 / 박명림

강산21 2007. 5. 30. 15:45
[세상읽기] 혼돈의 정치, 멸렬의 정당 / 박명림
» 박명림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 정치가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민주개혁 정당들이 지리멸렬하고 있다. 대통령 대 여당 지도부, 전임 대 현임, 전임 대 전임, 분파 대 분파 간의 반목과 이합집산은 지진 전야의 동물들처럼 혼란스럽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제도를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정치영역의 인간들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작은 이해를 놓고도 갈등하는 우리 자신에 비추어 그들에게 특별한 공적 덕성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즉 권력의 유혹 앞에 외려 평균적 품성조차 갖기 어려운 정치인들에 대한 도덕적 폄하로 풀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은 기존 제도들을 변경시킬 능력만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고전적 명제로 돌아가게 된다. 현행 87년 체제는 네 정권 내내 반복되는 제도적 특성을 갖고 있는가?
 

첫째, 대통령들의 탈당으로 31개월(927일)이나 지배 당과 반대 당이 소멸되는 ‘비정당 통치’를 반복하였다.(노태우 160일, 김영삼 110일, 김대중 295일, 노무현 362일) 이는 정당민주주의의 예외적 법칙화로서 정당책임제인 현대 민주주의 원리의 정면 부정이다. 둘째, 중립내각 구성으로서 정부·내각·각료는 국민과 헌법에 책임을 진다는 민주주의 원리의 위반이자 정당정부와 대통령책임제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 셋째, 대통령·대통령 직계와 여당·여당 후보의 분열이다. 이는 투표와 민주정부의 정당일체성·연속성·대표성의 파괴다. 넷째, 대통령 배출 정당의 소멸과 지배 당의 반복 창당이다. 단 한 번의 정권교체에도 지배 당은 일곱 번이나 교체되었다. 유권자의 대의(代議)와 위임에 대한 부인이다.

 

민주원리와 정당 파괴를 계속 반복하는 데는 분명한 제도적 요인이 존재한다. 현행 헌정체제의 두 축은 ‘87년 헌법체제’와 ‘88년 정당체제’다. 전자가 5년 단임 대통령제라면 후자는 지역정당 체제이다. 문제는 둘이 전혀 조응하지 않는 데에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지역정당 체제의 잘못된 만남은 세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귀결되나, 한국은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의 결합이 양당제가 아니라 유효 정당수가 3.7개에 달하는 다당제로 연결된다. 의회의 1/3.7에 한정된 소수여당 정부가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정당 체제를 극복한 전국정당이 불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은 1987년 이후 최초의 전국정당이었다.(2004년 총선 득표율: 수도권 44.3%, 충청 44.5%, 호남 55%, 영남 32%, 강원·제주 41.6%, 전국 42%) 2000년 한나라당의 영남 57.1% 대 호남 4.4%, 새천년민주당의 호남 66.8% 대 영남 13.3%, 2004년의 52.4% 대 0.4%, 30.8% 대 0.8%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역정당 체제를 돌파했던 열린우리당은 지금 도괴하고 있다. 셋째 대통령과 의회, 여야간의 격렬한 갈등이 유발된다. 민주정부와 정당 능력은 의제 채택 및 입법화를 통한 정책능력으로 나타난다. 정부 입법의 경우 네 정부의 평균 의회 통과 기간은 각각 2.7, 2.2, 3.0, 6.5개월이었다. 강력한 야당의 저항에 직면한 현 정부에서 의제 설정부터 입법화→정책시행까지 걸린 기간은 총 35개월에 이른다. 현 헌정체제에서 특정 정책이 임기 안에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란 시간과 제도상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현행 헌정체제(권력구조, 정당체제, 선거주기, 선거제도) 하에서 대선-총선 조합을 통한 전국대표성, 책임성, 안정성, 효율성을 갖는 정당정부의 구성은 매우 어렵다. 다음 민주정부는 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지혜를 모아보자.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