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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없는 독일 기자들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

강산21 2007. 5. 30. 12:43
“기자-정부기관 공간적 거리 둬야 언론 독립”
[해외 특별기고] 독일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기자
기자실 없는 독일 기자들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기자
정치가와 언론인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어떤 직업이 가장 악명을 떨치고 있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정치가와 언론인들은 한결같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인이 받고 있는 나쁜 평판은, 독일에서 의사표명과 언론의 자유가 소중한 자산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 비쳐 볼 때, 기이한 모순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도 어느 정도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 언론매체들은 곧잘 통치 권력을 감시하는 제4의 권력이라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불가근 불가원-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라

언론인들은 직업적으로는 권력과 가까워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거리를 두어야 하는 끊임없는 긴장관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주요 정치가와 장관, 정부당국자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내야 하며, 이는 ‘접근’이라는 형식을 필요로 한다.

반면 이런 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스스로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거나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방송기자 고(故) 한스 요하임 프리드리히 씨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라”

기본적 취재 수단은 전화

독일의 유력 일간지 정치부 기자의 취재는 대부분 전화로 시작된다. 각 정부부처의 공보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얻어낸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여당 소속 의원에게 국회에 계류된 현안 법률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기도 한다. 야당 소속 의원에게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듣고 이를 기사화한다. 각종 이익단체와 노조의 공보실과 대변인들, 해당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 특히 본사의 편집부와의 전화로 하루가 시작된다.

독일 언론인들은 소도시의 시청에서부터 의회, 연방정부와 총리실에 이르까지 각각의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권리를 갖고 있다. 언론인들은 질문을 던지고 각 기관의 대변인들은 이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물론 언론인으로서는 불만이지만, 정보를 얻을 권리가 항상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담당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처 청사에 기자실은 없어

기자가 정부기관과 공간적 거리 두는 것은 언론 독립 증명 사례

정부부처 청사 등 각 관청의 건물에는 언론인들의 취재를 위해 따로 기자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모든 기자들은 컴퓨터와 전화, 인터넷, TV, 팩스 등이 갖춰진 자체 사무실을 갖고 있다. 방송사나 발행부수가 많은 전국지들은 독자적인 지국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소규모 신문들과 외신 기자들의 경우, 연방기자회견협회의 건물에 입주해서 시설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 비용을 지불한다. 이렇게 언론인들이 정부기관과 공간적 거리를 두는 것은 언론매체의 독립을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연방기자회견은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연방기자회견은 ‘연방기자회견협회’에 소속된 언론인들만이 참석할 수 있다. 기자를 주업으로 삼고 있으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언론인들은 누구나 이 협회의 회원이 될 수 있다. 현재 연방기자회견협회는 내외신 기자를 통틀어 800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연방기자회견은 정부대변인인 연방공보처장과 각 정부부처의 대변인들이 1주일에 3번씩 정해진 시간에 연방기자회견협회의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주요 언론사의 경우 연방기자회견 상황을 자사 편집부로 실황중계한다. 연방기자회견협회에 소속된 언론인들은 누구나 횟수와 시간에 관계없이 정부의 대변인들에게 질문을 던질 권리가 있다. 또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변인들은 언론인들의 질문에 대해 가능한한 진실되고 상세하게 답변한다.

독일 기자들의 취재현장 모습

반드시 사전에 신청해야만 관공서 출입

정치부 기자들은 이밖에도 연방의회와 연방정부의 공보처에 등록해야 한다. 연방의회의 공보처에 등록함으로써 언론인들은 연방의회 시설에 출입할 수 있는 신분증명서를 발급받고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의회시설 내에서 취재할 수 있다. 공보처로부터 취재허가증을 발급받으면, 별다른 마찰을 빚지 않고 신속한 취재를 벌일 수 있으며 국회의원들과도 접촉할 수 있다.

이러한 취재허가출입증은 각 정부부처 청사를 방문할 때도 필요하다. 정부 부처 청사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며 취재 전에 미리 방문을 신청한 경우거나 취재를 위한 초청을 받은 경우 혹은 공식 행사의 취재를 원할 경우에만 출입이 허용된다.

취재를 위한 출입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은 경우에는 청사에 출입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규적으로 활동하는 기자들의 경우 각 정부부처에서 열리는 기자회견마다 취재허가를 받아낼 필요는 없다. 보통의 경우 각 정부부처들은 사전에 언론인들에게 기자회견 참석요청서를 보내고, 참석 언론인들의 규모에 맞춰 그에 맞는 회견장을 준비하기 위해 기자들의 기자회견참가 확인서를 회신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공식적인 취재관계 외에도, 당연히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주요 정치인들과 정부부처의 주요 인사 등의 주요 정보 공급원들과 비공식적인 관계들을 맺어나가게 된다. 비공식 접촉 또한 언론인의 취재활동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비공식적인 만남은 제도화되거나 정부의 청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는, 직업활동에 따른 접근과 개인적인 거리두기 사이의 딜레마가 나타난다. 이 딜레마는 언론인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독일 언론인들은 한스 요하임 프리드리히의 조언을 명심하고 있다. 언론을 상대하는 취재원들도 이 점을 인정해준다. 아마도 바로 이 점이 한편으로는 언론인들이 악평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표명과 언론의 자유가 존중받는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원인일 것이다.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Steffen Hebestreit):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지 정치부 기자. 1972년생. 독일의 4대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의 베를린 주재 정치부 기자로 정치학과 미국학을 전공했으며 7년 전부터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지의 기자로 활동했다. 프랑크푸르트 본사에 재직할 때는 외신담당기자로 재직. 베를린에 주재하면서 안보정책과 국내 정치 뿐 아니라 국제정치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기자 (@) | 등록일 : 2007.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