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여론조사 통해 본 신문의 부정적 영향

강산21 2007. 3. 22. 11:11
신문 독자들이 우울한 이유
여론조사 통해 본 신문의 부정적 영향


조용휴 여론조사비서관

우리가 매일 아침 신문을 보는 행위는 마치 세상을 보기 위해 안경을 쓰는 행위와도 같다. 신문기사를 통해 각 사안을 어떻게 규정하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을 제공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안경이 항상 투명하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형화된 프레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이 무엇이냐에 따라 안경이 보여주는 세상은 때로 빨갛게도 보이고, 파랗게도 보인다.

우리는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이 프레임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신문의 헤드라인을 통해 이 프레임이 압축적으로 표현되는데, 최근 헤드라인만을 주로 읽는 ‘제목 소비자(a shopper of headline)'가 늘고 있다고 하니,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프레임에 오랜 기간 노출된 독자들은 언론이 설정해 놓은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사회의 통념인양 회자되는 것이다.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이 우리사회 통념으로 회자

이같은 경향은 정부비판 및 정치기사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 정책과 관련해서는 ‘오락가락’ ‘사후약방문’, ‘탁상공론’ 등의 프레임이, 정치인과 관련해서는 ‘거짓말만 하는’, ’싸움질만 하는‘, ’염치가 없는‘ 등의 프레임이 흔히 사용된다. 공무원에 대해서는 ‘자기 잇속만 챙기는’, ‘편법을 일삼는’, ‘정해진 틀에서만 일하는’ 등의 낡고 상투적인 프레임으로 기사가 작성되고 있다.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정형화된 프레임을 갖고 있다. 주로 ‘말’과 관련된 것으로,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속어를 사용하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비난함으로써 편을 가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만 부리는’, ‘즉흥적으로 말하는’ 등이다.

이같은 뉴스 프레임은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정치기사에 오랜 기간 노출된 독자들은 어떤 사안을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 높았다.

지난 2006년 9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이 100분 토론에 출연한 다음날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바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문기사를 통해 대통령 메시지를 접한 사람의 경우 생방송, TV뉴스, 인터넷 등의 매체를 접한 이들보다 공감도가 20%가량 낮아 더 부정적이었다.

“전작권 환수 반대논리가 정치공방으로 흐르고 있다”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생방송 시청층’은 60%가 공감한 반면, ‘신문기사로 접한 층’은 42%만이 공감한다고 응답했고, “각종 개혁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장기 표류한다”는 대통령의 견해에 대해 ‘생방송 시청층’은 64%가 동의한 반면, ‘신문기사로 접한 층’은 47%만이 동의했다. “대통령이 민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보는가”에 대해서도 ‘생방송 시청층’은 41%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신문기사로 접한 층’은 18%만이 동의해 접촉 매체에 따라 대통령 메시지에 대한 공감도가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방송 시청자가 신문기사 접촉자보다 대통령 메시지 공감도 높아

이같은 경향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1.23)과 신년 기자회견(1.25)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1월 27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조사 결과,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대한 공감도가 ‘직접 시청층’, ‘TV뉴스/인터넷포탈 접촉층’은 각각 53%, 63%로 높게 나타난 반면, ‘둘 다 신문으로 접촉한 층’은 37%로 공감도가 낮았다.

“참여정부가 민생문제를 못 푼 건 사실이나 민생파탄이란 주장은 지나친 표현”이란 발언에 대해서도 ‘직접 시청층’, ‘TV뉴스/인터넷포탈 접촉층’은 각각 52%, 55%가 공감했으나, ‘신문 접촉층’은 65%가 ‘비공감’이라고 응답해 대조를 이뤘다. 신년연설과 기자회견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 평가 역시 ‘직접 시청층’의 경우, “국정을 책임있게 챙기려는 모습”이라는 응답이 40%선이었으나, ‘신문 접촉층’은 21%에 그쳐 약 20%의 인식차를 보였다.

왜 신문매체 접촉층이 더 부정적인가

이처럼 신문 매체만을 접촉한 사람들은 모든 메시지에 대해 ‘직접 시청층’이나 ‘TV, 인터넷 매체 접촉층’에 비해 좀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신문의 부정적 프레임과 관련이 깊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신문들은 정형화된 프레임에 사실을 끼워 맞추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신년 기자회견 다음날인 2007년 1월 26일자 신문 기사 헤드라인이다.

“크게 뭉쳐서 가면… 대선구도 바뀔 수 있다” (경향 4면)
끝까지 버텨 보자 “지지율은 막판에 올라와도 돼” 대선 훈수, 미워도 다시 한 번 “與, 도와 달라” 호소…한나라 “선거법 위반” (동아 5면)
노대통령 아슬아슬한 대선 접근 (중앙 1면)
한나라 반응 “중립의무 위반… 한편의 선거 홍보물 같다” (중앙 5면)
노 대통령 “경제 좀 안다고 잘하나”, “지지만 갖고 권력 쥔 게 아니다” 야 주자 공격, “열린우리당 도와 달라” 며 지지 노골적 호소 (조선 5면)
대선국면 정치행보 예고 (한겨레 1면)

기자회견 보도에서 모든 신문들은 대통령에 대해 ‘정치개입’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다. ‘대선 훈수’, ‘대선 접근’, ‘대선구도 바뀔 수 있다’, ‘정치행보’, ‘선거법 위반’, ‘탈당 김빼기’, ‘與 지지 노골적 호소’ 등의 조어를 만들어 대통령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창출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신문 이외에 다른 매체를 접촉하지 않았거나 신문의 헤드라인만을 읽은 독자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열린우리당 선거 승리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편향적, 정치공학적 시각 갖게 하는 정치기사 프레임

이러한 신문기사 프레임, 특히 정치기사 프레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들을 너무 단순화시켜 사건의 맥락보다는 특정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달방식은 독자들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차단하고 종합적인 시각보다는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할 수 있다.

둘째, 정치를 하나의 게임으로, 정치인들을 싸움꾼으로 그려냄으로써 정치나 정치인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정치에 대해 거리감, 신뢰 상실, 무력감 등을 느끼게 되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셋째, 지나치게 음모론적이거나 정치공학적인 시각을 독자들에게 유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보게 하는 문제가 있다.

실제 일반국민 1,400명을 대상으로 2006년 2월 9~12일 사이에 실시한 온라인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및 국가기관들이 국민을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문에 ‘그렇다’는 긍정평가가 23%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사회지도층은 대체로 걸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에 대해서도 단지 8%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정부와 사회지도층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상당함을 보여 주었다.

정부와 우리 사회 지도층에 대한 만성적 불신의 원인이 언론에 의해 상당 부분 조장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적 정부 이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언론 특히 신문의 보도 태도는 ‘정부를 믿으라’고 하기보다는 ‘정부를 믿지 말라’는 신념을 설파하는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듯하다.

상투적인 논조에 독자들도 싫증…신문 신뢰도 하락

그러나 지난 십수년간 우리 사회에 통용되었던 신문 기사들의 이런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논조와 울림에 대해 독자들도 점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2003년 3월 26일 실시한 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전화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방송매체(74%)보다 신문에 대한 신뢰도(67%)가 더 낮게 나타났으며, 국민의 59%가 ‘신문에 사실과 다른 왜곡보도가 많은 편’이라고 응답했다.

최근에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기사에 댓글달기’, ‘기사 패러디’ 등의 방식으로 ‘악의적 제목달기’, ‘말꼬리잡기’, ‘자의적 해석’, ‘조롱하기’, ‘꿰맞추기‘ 등 구태적 보도 태도에 대한 언론비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신문을 읽는 독자들의 의식수준과 기사를 보는 안목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제 언론, 특히 신문은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낡은 안경으로 사회 현상을 재단하고 해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언론이라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를 뛰어넘어 세상과 직접 소통하려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