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청와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이야기 ① 452명이 탈락하기까지

강산21 2007. 3. 22. 11:09
추천·검증기능 분리로 투명성 강화
청와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이야기 ① 452명이 탈락하기까지


문태곤 공직기강비서관

1만6849명 가운데 452명. 1만6849명은 2003년 3월 이래 4년간 참여정부에서 도덕성을 검증한 공직자 또는 공직후보자 인원이다. 그 가운데 2.68%에 해당하는 452명이 검증과정에서 부동산·전과·병역 문제 등으로 탈락했다. 참여정부는 출범과 함께 과거 정부의 불합리한 인사 관행을 개혁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정착시켜왔다. 탈락자 수치 자체를 성과로 내세울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같은 노력의 일단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 4년을 돌아보는 하나의 ‘창(窓)’으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평가와 과제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ㄱ교수는 국외 이주를 통해 장·차남의 병역을 회피시킨 사실이 드러나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장 임용에서 배제됐다. 정부 부처 1급 공무원 ㄴ씨는 두 차례 음주운전 적발등으로 차관 승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ㄷ변호사는 80여 차례에 걸쳐 부동산 거래를 하고 위장전입으로 농지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 정부 산하 위원회 위원 임용에서 제외됐다. 정부산하기관 간부 ㄹ씨는 수년간 소득세액을 탈루한 사실 때문에 이사 승진에서 탈락했다.

참여정부 들어 민정수석실 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인사추천회의 등에서 결정한 내용들이다. 이에 대해 일부 당사자들은 문제된 사안이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큰 잘못이 아니었다거나, 본인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엄격해진 검증기준과 ‘세상의 눈’을 당시에도 실감하지 못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례들이 나오기까지, 고위직 인사검증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매주 목요일, 추천과 검증이 ‘격돌’하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청와대에서는 비서실장 주재로 인사추천회의가 열린다. 인사수석을 비롯, 비서실 내 관련 수석비서관과 인사관리비서관 등이 주요 참석 대상이다. 이 회의가 부처 장·차관, 산하 기관장, 정부위원회 위원, 특정직 공무원 등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주요 정무·고위직 추천 대상자를 선별하는 자리다.

회의에 오를 안건은 인사수석실에서 2주 전에 통보한다. 인사수석실은 인사요인이 발생한 기관의 성격과 후보자의 능력, 자질을 토대로 많게는 5∼6명의 후보를 발굴한다. 발굴된 후보에 대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국정원, 경찰청, 검찰청, 감사원, 행자부, 금융감독원 등 관련기관의 협조를 받아 검증작업을 벌인다.

회의에선 통상 5∼6개 직위에 대한 인사검토가 이뤄진다. 인사수석실은 주로 후보자를 추천한 사유를 중심으로 각 후보별 강·약점을 설명한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후보자의 도덕성과 특이사항 등 검증한 내용을 제시한다. 결격사유가 있는 후보를 걸러내고 최종 후보는 단수 혹은 복수로 정리된다.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다시 정밀 검증작업을 벌인다. 인사수석실은 심의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재가하면 최종 인사가 발표된다.

후보의 추천과 검증과정에서 인사수석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자연스레 상호견제 관계에 놓인다. 후보자에 대한 사전 협의나 정보 공유가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인사추천회의 당일 공개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인사를 발굴, 추천한 인사수석실과 검증을 맡은 공직기강비서관실 간에는 각각의 사유를 놓고 팽팽한 긴장과 견제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검증을 위한, 말 그대로 합리적 긴장관계라 볼 수 있다.

어떤 직위가 인사검증 대상인가

고위공직자란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정부 정책개발 및 집행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참여정부 들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수행하는 인사검증의 대상 직위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정무직을 포함해 일반직 고위공무원 및 3급 직위 △군·검·경·국정원 등 특정직의 일정 직급 이상 직위 △대통령이 위촉하는 정부위원회의 비상임 위원장 및 위원 직위 △정부투자기관과 산하단체의 임원 직위 등 총 3천여 개에 이른다.

검증작업의 두 방향 : 역량검증과 도덕성 검증

본래 고위공직 후보자 검증이란 임용후보자의 자질, 역량 및 도덕성 등에 대한 종합 점검을 통해 공직수행의 적격자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인사검증의 목적을 고려할 때, 인사검증의 개념은 직무수행능력 등 긍정적(positive) 요인을 중시하는 역량검증, 도덕성이나 청렴성 등 부정적(negative) 요인에 초점을 두는 도덕성 검증, 해당직위에 따른 이해충돌 여부를 확인하는 이해충돌 검증 등으로 구분된다. 넓은 의미에서 인사검증은 이러한 부분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참여정부 들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수행해온 인사검증은 도덕성 검증과 이해충돌의 검증을 주된 요소로 하는 협의의 인사검증에 해당한다.

한편, 역량검증은 중앙인사위원회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고위공직 후보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들의 역량을 평가하고, 그 중 특정 직위에 적합한 후보자를 발굴·추천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이해충돌 검증은 주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나 국회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시스템이 단시일 내 갖추어진 것은 아니다. 정부수립 이후 고위직 인사검증시스템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해방 이후 5공화국까지 공직윤리 관심 미비

해방 후 1공화국에서 5공화국에 이르기까지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에 대한 제도화된 인사검증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3공화국 이전까지는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기구 자체가 없었다. 그 이후 인사검증을 소관업무의 하나로 하는 기구로 3공화국의 사정특별보좌관이나 5공화국의 사정수석실이 설치되었는데 업무의 중심은 공직비리 감찰활동에 두어 졌다.

이 시기의 특기할 만한 제도로는 1983년부터 시행된 공직자윤리법을 들 수 있는데, 공직자 재산등록제도와 취업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검증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직사회에 별 다른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전두환 정부까지 고위공직자가 도덕성 문제로 임명되지 못하거나 중도에 하차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로 첫째, 건국 후 2공화국까지는 국가 기간제도 정비, 전쟁, 혁명, 군사정변 등 격동기로서 혼란과 무질서의 와중에 공직과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가 만연한 시기였다. 반면,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이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둘째,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민주화 투쟁에 국민들의 비판역량이 집중돼 개개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는 특별한 관심영역이 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민간이나 언론이 고위 공직자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공직자 재산공개, 인사청문회 도입 ‘기폭’

1993년 실시된 공직자 재산 공개제도와 2000년부터 실시된 헌법기관 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인사검증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제도였다. 두 제도는 언론과 국회에 고위공직자 인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단과 논의의 장을 제공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부터 국민의 정부에 이르기까지도 대통령 비서실의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업무 자체에 큰 변화는 없었다. 관장 비서관만 사정비서관에서 나중에 신설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공직비리 감찰에 업무중점이 두어졌으며, 발굴과 검증기능의 통합수행으로 독립적이고 엄격한 검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문민정부 시절부터는 고위공직자들이 재산 등 도덕성 문제로 임명 초기나 중도에 퇴진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통성을 갖춘 정부가 처음 등장하자 고위공직자 인사를 두고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국민들의 공직 도덕성에 대한 기대수준도 날로 높아져 갔다. 실제로 문민정부 첫 조각 발표 11일만에 장관 3명과 서울시장이 부동산 투기, 자녀 편법입학, 개발제한구역 내 무단 형질변경 등으로 퇴진하는 일이 벌어졌으나 이는 폭풍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1993년 3월부터 시작된 최초의 공직자 재산공개 때에는 부동산 투기의혹이 제기된 여러 국회의원과 행정부 고위직들이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부동산 투기, 부동산 명의신탁, 재산형성 과정의 의혹 등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중도에 퇴진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특히 2002년에는 2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위장전입, 재산신고 누락 등으로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검증과 후보자 발굴업무를 통합수행하는 방식은 그대로 유지됐으며 이는 엄격한 검증을 실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참여정부 인사개혁 : 추천과 검증기능 분리

참여정부가 고위공직자 인사 분야에서 출범 당시부터 실천한 대표적인 개혁은 바로 후보자의 추천과 검증 기능을 분리한 것이다.

참여정부 이전에는 장·차관 등 정무직과 정부투자기관 및 산하단체장 후보자의 추천과 검증을 모두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담당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담보하기 위해 긴장과 견제관계에 있어야 할 양 기능을 단일 조직이 수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간적으로 앞서고, 좋은 소리 듣는 추천에만 관심이 집중되다보니 검증은 요식화되는 현상이 자연스레 나타났다. 검증의 유명무실화로 인해 고위 공직자나 공무원 사회 전체의 도덕성을 높이는 효과는 미미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던 참여정부는 이미 출범 전 인수위 시절에 인재 발굴 기능을 전담할 인사보좌관실(현재의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보좌관을 먼저 내정해 첫 조각부터 추천과 검증을 분리·적용했다. 양 기능은 균형과 견제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정하고 객관적 인사의 토대를 형성했다.

참여정부 인사개혁 : 투명인사의 핵심-인사추천회의

참여정부 고위공직자 인사의 또 다른 대표적 혁신은 인사과정을 투명화하고 시스템화한 것이다. 후보자 추천과 검증기능의 분리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후보자를 발굴하게 된 장점과 검증과정에서 나타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통해 복수 후보자들 중에서 특정 후보자를 인사권자에게 최종적으로 추천하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분장이 필요하다.

분장의 양상에 따라 인사과정의 제도화 정도와 투명성이 좌우된다. 그러한 기능의 분장 자체가 베일에 가려지거나 특정인에게 집중되면 비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잃을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시스템에 의한 체계적인 정무직 인사를 위해 비서실장과 관계 수석 등이 참석하는 인사추천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를 계기로, 출범 초기 고위공직자 최종 추천과정의 투명화와 제도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가 바로 서두에 설명한 인사추천회의의 신설이다.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인사수석, 홍보수석 등이 참여하는 인사추천회의에서는 인사수석실이 발굴해 민정수석실에서 검증한 고위 공직후보들의 자료를 놓고 최적임자의 선정을 논의,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참여정부 인사개혁 : 검·경·군·국정원도 검증대상 포함

잘 알려진 대로, 참여정부는 과거 정권의 이해에 따라 작동되던 권력기관의 ‘제 자리 찾기’ 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그동안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군,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의 기관을 인사검증 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2005년 6월 ‘특정직 인사검증 개선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그해 10월 군 인사부터 이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군은 소장 이상 인사에서 준장 이상으로 검증대상이 확대됐다. 2005년 12월 국정원은 1급 승진자에서 2급 이상 부서장 보직자로 검증대상을 넓혔다. 2006년에는 그동안 검증을 실시하지 않았던 검찰도 고검장, 검사장 등 고위직 중심으로, 경찰도 경무관 이상 승진·전보 후보자에 대해 검증을 실시했다. 이러한 특정직 인사검증에서 음주운전, 기밀누설, 위장전입, 금품수수, 소득세 탈루 등의 사유로 수십명이 배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