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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개혁위기 대안모델을 찾는다 ③ 사회투자국가론

강산21 2007. 3. 7. 18:44
복지도 투자’ 성장주의 담론의 벽을 넘자
사회개혁위기 대안모델을 찾는다 ③ 사회투자국가론
한겨레  이창곤 기자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참여사회연구소가 지난 달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수동 희망포럼에서 연 ‘사회투자국가의 이해와 한국적 적용 가능성에 관한 토론회’에서 양재진 연세대 교수(왼쪽 두번째)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기회의 평등 중시…공공보육 등 필요성 주장
진보학계·정치권, 다양한 적용 가능성 모색

진보개혁 진영의 학계 및 정치권 등에서 최근 널리 회자되는 대안 모델은 ‘사회투자국가’이다. 지난 2월15일 참여연대가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묻는 토론회를 열었다. 엿새 뒤엔 한국사회정책학회 등 4개 학회가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짚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정치권에서도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천정배 의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주창하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발전계획인 ‘비전 2030’ 등에도 부분적으로 녹아 있다. 영국 등 서구에서 ‘수입된’ 이 모델이 과연 우리 사회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나? 학계 등 각계가 이 담론의 적용 여부를 놓고 관심을 갖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기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추구하는 제3의 길=사회투자국가는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지난 1998년 처음 내놓은 개념이다. 기든스는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을 이야기하면서 ‘전통적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제3의 대안’으로 이를 제시했다. 1980~90년대 전통적 복지국가의 위기와 이에 따른 신자유주의적 재편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새로운 경제사회정책적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학계에서 엄격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이 담론의 핵심은 복지를 생산요소, 투자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과 경제(성장)정책을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본다. 신자유주의의 시장담론을 수용해 국가의 시장에 대한 통제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시장의 핵심기능이 정치적 행위에 의해 훼손되어선 안된다”고 인식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며, 시민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책임도 따라야 한다는 논지를 내세운다.

임채원 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 연구원은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투자국가로>란 저서에서 ‘사회투자국가는 사회가 사람에 투자하는 국가’라고 정의한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과 지식기반 사회란 오늘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는 자본이나 토지가 아닌 인적자본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사회정책은 비용이 아닌 생산요소, 투자라는 것이다. 이 담론의 핵심구호는 그래서 ‘사람에 대한 투자’다. 예컨대 국가가 모든 아이들에게 자기개발의 기회를 갖도록 하고자 공공보육 확충정책을 편다고 하자. 당장은 많은 비용이 들지만 아이들을 더 튼튼하게, 더 지적으로 자라게 해, 나중에는 그들이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튼튼한 주춧돌이 될 것이란 논리다. 이 정책은 또 여성의 육아부담도 덜게 해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개발과 고용기회를 갖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이념적으론 중도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자유’를, 사회주의가 ‘평등’을 추구한다면 사회투자국가는‘사회정의’를 추구한다. 영·미식의 자유주의형과, 스웨덴·덴마크 등 사회민주주의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 임채원 김연명 신광영

양극화 해결의 대안모델인가?=한국 사회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한 만큼 성장주의 담론이 유난히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한국 진보개혁 진영의 눈길을 모으는 데는 이런 성장주의 담론의 벽을 넘어 복지(재정)확충의 당위성을 설파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복지도 투자’란 말이 대표적인 그 예다.

이런 맥락에서 친 복지 학자들이 주로 주창한다. 사회복지·노동·여성·교육·가족 등 사회정책적 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적용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다.

이 담론을 우리 사회에 적극 수용하자고 주창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 경제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이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연명 중앙대(사회복지학)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경제사회구조가 오늘날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등의 새로운 상황과 위험을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급 격차(2003년 1.53배)가 해마다 늘고 있고, 10가구중 1가구가 절대빈곤 상태에 빠져 있을 정도로 소득분배가 악화하고 있다. 2005년 현재 4829만명이던 인구는 2050년에는 4234만명으로 줄어드는 데 비해 65살 이상의 노인은 2005년 전체 인구의 9.1%에서 2050년에는 37.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는 이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사회경제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그게 사회적투자국가 또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행정학) 교수는 ‘사회투자국가는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제사회 패러다임인가?’란 논문에서 한국의 선택으로 ‘영국형 사회투자국가’를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형 사회투자국가를 목표로 두되 단기적으로 영국형같은 중간 ‘정거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양 교수는 구체적으로 아동·청소년을 위한 사회적 보육·교육을 앞세우되 평생학습체계와 장기요양서비스 구축 등 생애주기별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하다는 정책방향도 내놓았다.

신광영 중앙대(사회학) 교수는 ‘복지레짐과 사회투자국가’란 심포지엄 발표문에서 사회투자국가와 이에 따른 정책이 중산층 강화와 사회적 통합 증진’이란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이 담론이 현실화하려면 노사간의 사회적 협력 내지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윤홍식 전북대(사회학) 교수는 특히 한국형 사회투자국가의 방향으로 아동수당의 도입 등 기본적 복지욕구 충족,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 및 사회서비스 확대 등을 제시했다. 그는 다만 “사회투자전략을 뒷받침할 정치세력이 존재하는가란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 사회적 투자국가론


한계와 보완할 점
‘경제는 없다’ 최대 한계로

“대안이라 하기엔 너무 모호” 유럽 복지정책 짜깁기 비판

‘사회투자국가론’의 결정적 한계로는 흔히 경제이론이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고전적 복지국가는 케인즈주의가, 신자유주의는 통화주의란 경제이론이 있다. 이 모델은 사회정책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경제(성장) 정책 모형이 없다. 이때문에 진보학계의 일부 학자들은 사회복지 확충을 위한 긍정적 담론이라고 보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투항한 담론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던진다. 유럽 좌파들이 사회투자국가를 ‘결과적 평등에 대한 좌파적 전통을 부정하는 신자유주의의 아류’라고 평가절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스웨덴 등 북구 사민주의 국가들의 일부 복지정책을 선별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는 “사회투자국가는 사회복지정책이 경제발전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만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접근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면서 “이런 정책방향은 시장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혼란과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지난달 15일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사회적 투자국가인) 영국은 본질적으로 (공공 정책이 아닌)민영화 정책을 펼쳤던 만큼 우리가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면서 “사회투자국가론은 새로운 생산주의 담론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연명 교수는“사회투자국가론은 성장주의적 생산담론과는 달리, 스웨덴처럼 사회정책을 통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사회투자형”이라고 반박했다.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는 “대안이라고 하기엔 너무 모호한 점이 많다”면서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 평등, 분배 등의 가치를 너무나 희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개별 정책 내용이 아직은 미흡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사회투자정책을 현실화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도 종종 한계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