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대통령의 그날 오찬, 일그러진 진실

강산21 2006. 8. 21. 12:25

대통령과 논설위원 비공개 오찬 대담록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일부 언론사 외교·안보분야 논설위원들과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주로 외교·안보 및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국정 전반에 대한 허심탄회한 얘기가 오갔다. 참석자들은 대화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참석자들이 잘못 전언한 일은 심히 유감스런 일이다.

18~19일자 언론은 오찬의 일부 내용을 왜곡·편집한 상태로 일제히 보도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한번 꼽아보라", "내 임기는 이제 끝났다", "아무도 내 말 안 듣는다", "이제 개혁은 끝났다", "요즘 지지율 고민", "다음 정권 잘해보라지 심정 반, 잘해서 물려줘야지 심정 반" 등이 주요 신문의 제목들이다. 실제 대통령의 발언과는 한참 거리가 먼 무책임한 왜곡이다.

이번 일은 문화일보가 불확실한 전언을 확인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문화일보는 마치 오찬 대담을 직접 들은 양, 여기에 '제멋대로, 입맛대로 해석'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받아 자의적 해석을 추가해 확대시켰다. '집단적 횡포'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도를 넘는 왜곡이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있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청와대는 오찬 내용이 이렇게 왜곡된 상태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대담 내용 중 해당 부분을 발언 그대로 공개한다. 다만 안보 관련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으나 사안의 성격상 해명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공개하지 않는다.

1. "민생을 해결하지 못해 송구... 그러나 최선을 다 했다"

[대통령 발언 요지]

대통령은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등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다만 참여정부가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 했으며 다음 정부에서도 풀리기 어려울 만큼 난제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한번 꼽아보라... 대통령 비하 여론 납득 안 돼"

[언론보도]

중앙일보 등은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는 잘못한 거 없다, 국정과제를 뽑아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왔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한번 꼽아봐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대통령 비하 여론 납득 안돼"라고 기사 제목을 뽑았다. 대통령에게 '독선과 오만'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대통령이 민심을 거스르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대통령 발언록]

국민들에게 불경스럽게 보일까봐 물어보지 못한 것이 있는데 '참여정부가 뭘 잘못했지요?'라는 질문입니다. 이 사람 저사람 기분 나쁘게 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의 문제에 있어서 내가 경제를 망쳤습니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습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영세자영업자에게 살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 했습니다. 이 분들한테 1차적 분배 과정에서 소득을 듬뿍 높여주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이 분들도 5.7% 소득성장이 있었지만 고소득층의 성장이 빨라서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5년 안에 해결되는 문제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소득의 재분배를 위해 가능한 예산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납득을 못하는 것은 참여정부가 망쳐놓은 것이 무엇인지…. 제 생각엔 신뢰의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뭘 하겠다고 했을 때 그걸 믿어주고 밀어주고 그런 게 축적돼야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 될 것이라고 해버리면 일이 진척이 안 되고 결과가 나쁘게 나옵니다. 내가 하겠다고 해놓고 안한 것은 무엇인지…. (대통령의 어투가 문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습니다.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국민들한테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란 뜻이었는데 난 한 번도 '예'하고 답한 적이 없습니다. 이 다음 대통령도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는 어렵습니다. 영세 자영업자들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2. "임기 말 국정의 공백 생기는 일은 없을 것"

[대통령 발언 요지]

노 대통령은 "내 임기는 끝났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국회가 개혁입법을 처리하지 않는데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여론의 압력이 없는 점을 걱정하면서 지지율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을 뿐이다. 대통령은 오히려 전직 대통령들처럼 임기 말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임기 말 국정의 공백이 생기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국정수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내 임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 개혁은 끝났다"

[언론보도]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이 "내 임기는 끝났다"면서 "(그래서) 남은 임기 동안 새로운 개혁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로 초조해 하는 것처럼 제목을 단 신문도 여럿이다. <서울신문>은 노 대통령이 "개혁은 끝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대통령이 스스로 레임덕을 인정하고 낮은 지지율 때문에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국정과 개혁과제를 포기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대통령 발언록]

과거엔 여론이나 지지도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최근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론 환경이면 국정수행이 거의 마비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국회가 8개월간 문을 닫아놓고 있는데도 여론의 압력이 없습니다. 여당이나 정부에 대한 지지가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국민적 압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대통령이 정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국회가 해줘야 할 일은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습니다. 국회에 제출한 사법제도 개혁안을 통과시키지 않아 로스쿨은 1년이 늦어버렸습니다. 이 사안은 문민정부 이래로 밀린 것입니다. 그때는 이해집단의 대표들이 합의를 못 이뤄서 표류했지만 지금은 합의를 다 이루고도 국회에서 막혀 있습니다. 국방개혁안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기획되고 필요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우리 국방체제가 아주 낙후되어 있어 시급한데 (이 역시 국회에서 막혀 있습니다). 정부가 국회에 올려놓은 법안만 200여개나 됩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에 비로소 관심을 갖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데 길이 안 보입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은 임기 말에 벼랑 끝으로 밀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임기 말에 국정의 공백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도 모르게 달러가 바닥이 나거나 경기 부양하다가 가계부채를 만들어 다음 정권에 넘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경제성적은 곧 다음 정부 2년의 경제성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점은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관리는 하겠는데, 개혁은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것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개혁은 힘듭니다.

3. "장관, 공무원 국정시스템 잘 따르고 있어"

[대통령 발언 요지]

대통령은 국회의 '태업'에도 불구하고 장관과 공무원들이 국정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인사, 평가, 지휘, 통제 시스템이 완벽하게 개혁됐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의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의 철학을 이해하는 사람을 공기업 감사로 보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국정시스템에 어긋난 일부 공기업의 사례를 거론했을 뿐이다.



"아무도 내 말 안 듣는다"

[언론보도]

조선일보, 문화일보는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요지의 푸념을 했다고 쓰고 있다. <세계일보>는 대통령이 "공기업 기관장들이 다 자기 논리를 내세워서 자기네 주관대로 한다"며 "지금은 더 이상 잘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장악력을 모두 상실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대통령 발언록]

장관들이나 공무원들은 국정 시스템의 통제권을 따르고 있습니다. 소통령이나 비선권력, 게이트도 없을 것이고 적어도 정부에 대한 장악력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장관들을 챙기고 있고, 장관들은 대통령의 수준만큼 정책을 챙기고 있습니다.

책임감 갖고 열심히 했습니다.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 같은 것은 내가 94년부터 구상을 했고 아마 세계적인 수준일 것입니다. 학계에서 제기한 고위공무원단 문제도 해냈습니다. 전체적인 (인사) 평가시스템도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정책관리, 지휘시스템, 통제시스템은 완벽하게 바뀌어져 있습니다.

인사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우리가 자격 안 되는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인 만큼, (공기업에) 감사들을 많이 내려보낸 이유가 감사가 애정과 책임을 갖고 감사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공기업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집니다. 대통령으로서는 정부의 기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문제는 끊임없이 시비가 될 것입니다.

4. "여러 시스템, 다음 정부 넘겨줘 잘 활용할 것"

[대통령 발언 요지]

대통령은 언론의 정치권력화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며 차기 정부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란 점을 설명했다. 이어서 언론의 폐해를 막기 위한 대응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차기 정부에도 이를 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은 다만 이 시스템을 현 정부 임기 때보다 다음 정부에서 더 잘 활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약간 서운하기도 하다는 뜻을 실어 "다음 정권 맡는 사람에 대해 꼬부라진 마음도 있는데 작업은 펴진 쪽으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다음 정권 잘해보라지 심정 반, 잘해서 물려줘야지 심정 반"

[언론보도]

조선일보, 문화일보는 노 대통령은 "요즘 다음에 누가 오든 '한번 잘해봐라' '한번 혼나봐라'는 식의 꼬부라진 마음과 잘해서 물려줘야지 하는 펴진 마음이 반반"이라고 보도했다. 마치 대통령이 다음 정부에 대해 뒤틀린 심사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대통령 발언록]

전직 대통령들도, 언론 달인이라고 한 사람도 결국 언론에 무너졌습니다. 내 생각엔 정부에 대한 언론의 평가 잣대가 높습니다. 도저히 못 맞추겠습니다. 보수 언론은 권력화를 넘어 아예 정권교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넘어 언론이 정치권력화하는 수준까지 가면, 언론과 정권이 함께 침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은 그 수단에 있어 최소한의 금도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설사 정치투쟁을 하더라도 자기의 윤리적 한계를 갖고 해야 합니다. 그 이상의 것을 갖고 하면 안 됩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사이의 경계선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나 있을 때 마음대로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정권 때 (언론의) 환경이 나아지면 그게 민주주의의 진보 아닙니까? 다른 방법이 있으면 이 생각을 안 했을 텐데... 진보 언론은 재정제도나 국민연금 같은 중립적 정책은 국가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던져버립니다.

내가 홍보시스템의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데 마지막이라도 한번 해보려는 것입니다. 성공할 수 없으면 기록이라도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다행히 어찌해서 회복돼 마지막 남은 임기라도 책임 있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고, 그렇지 못하면 다음 사람한테 기록으로 남겨 참고라도 하게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지금 매뉴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개인 기록 외에는 지금 우리가 하던 시스템 전체를 넘길 것입니다. 제 심경이 참 비장합니다. 다음 정권 맡는 사람에 대해 꼬부라진 마음도 있는데, (웃음) "이것 넘겨주면 다음 사람이 너무 좋아할 것 같아 배가 살살 아프다"고 참모들하고 얘기합니다. 이것 진짜 넘겨주기 아깝다, 얼마나 공을 들인 것인데, 그래도 넘겨줘야지, 대통령이 만든 시스템인데 그게 내 개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락가락하는데 작업은 펴진 쪽으로 하고 있습니다.

5. 그 밖의 발언들

"FTA는 왼쪽에서, 작통권은 오른쪽에서 공격"

보수정당이 집권한다고 보수언론이 안 쓸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는 보수든, 진보든 도로에서 차선을 바꿔봤자 2차선 아니면 3차선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의) 보수나 진보는 헬기를 타고 위에서 맘대로 좌로 가고 우로 가고 쏠 수 있습니다.

FTA만 안 꺼냈더라도 정치적으로 숨쉬기는 낫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명색이 대통령이 이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FTA에 대해선 왼쪽에서 날아오고, 작통권에 대해선 오른쪽에서 날아오고. 날개가 없어 날 수도 없습니다.

총탄은 많이 맞았어도 엔진이 상하거나 타이어가 펑크 나지는 않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통령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일 하나에 갈등 하나, 일 둘에 갈등 둘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문제 이외에 다른 것은 가닥은 잡아놓은 것으로 이해해주십시오. 책임감을 갖고 했습니다. 이런 양극화 문제 외에 불안요인은 북핵문제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지위는 높이고 권력기관은 겸손해져"

국민의 지위가 이렇게 높았던 적이 없습니다. 권력기관이 이렇게 겸손한 적이 없습니다. 정부가 이렇게 투명하고 공정했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문화, 기업의 문화가 바뀌고 있습니다. 50만원 이상 접대비 명세 제출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엄청나게 시달렸는데 지금 접대문화가 많이 달라졌지 않습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성인오락실, 문화상품권인데 그것은 재임 기간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청와대가 할 수준은 아니고 부처에서 할 일이지만 그것을 컨트롤 하지 못했습니다. 정책적 오류말고는 국민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론스타 문제는 실무선에서 무슨 부정이 개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누가 뭐래도 정책적으로 오류가 아닙니다. 게이트도 될 수 없습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