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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씹어 미안하다 명근아

강산21 2006. 7. 29. 18:56

부제: 너의 유일한 의사표현을 무시한 나


저의 무심함으로 인해 기분 상했을 친구를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몇 해 전 인터넷 한 장애인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친구 중 전신마비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35·정명근)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누워만 지내고 앉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으며 그러기에 제대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도 없는 중중 장애인입니다. 학교는 다닌 적 없지만 독학으로 한글을 뗐고 컴퓨터도 혼자 공부해 일반 수준급 이상으로 다룰 수 있는 똑똑한 친구이지요. 누구나 보면 볼수록 본받을 게 많은 친구란 걸 느끼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 중 사지 멀쩡해서 남들에게 피해나 주고 제구실 하지 못하는 사람들 보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매사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이 친구는 정말 그들에게 나아가서 우리들에게 까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줄 멋진 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2006.03 강원 번개 때 명근이 모습] /사진 : 김미정


한 발 들어 의사표현 해요


하지만 이런 친구에게 있어 유일한 의사표현을 저는 본이 아니게 매번 무시를 했습니다. 35년 넘도록 한 번도 제 의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 이 친구는 불과 몇 해 전부터 컴퓨터를 통해 조금씩 자기 의사표현을 하고 카페도 만들어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오프라인모임을 갖고 있지만 정작 모임에 나와서는 한쪽 발을 들어 가만히 있거나 흔들어 자신의 의사표현만 간신히 할 수 있어 그의 답답함은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5월 경 휴대폰을 드디어 구입하고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사용 시에는 각 메신저 기능을 통해 간간히 문자만 보냈으나 이젠 컴퓨터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발가락으로 찍어 보내는 문자메시지


이 친구는 컴퓨터 키보드나 휴대폰 버턴 누를 때 누워서 발로 모두 칩니다. 앉아서 발로 작동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어도 누워서 작동한다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누워서 키보드와 휴대폰 작동을 발로 한다는 것을. 이러한 작동을 할 때면 이 친구는 진정 온몸의 기를 모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저도 오프라인 정모 때만 이 친구를 봐서 컴퓨터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문자도 컴퓨터로 보낸 것 밖에 받은 적이 없었으나 지난 7월 20일  이 친구의 집에 카페 회원 한 분과 방문 했는데 그때서야 이 친구가 새로 구입한 휴대폰을 온몸을 써서 발로 문자를 찍어 보여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분을 어찌 설명을 해야 할는지요? 바로 사진을 찍어 남기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7월 20일 찾아가기로 한 전 날. 미리 점심 식사 걱정까지 해주고 있다. 이 문자 씹음!]

 

▲[ 방문 후 집으로 오는 도중 왔던 문자. 또 씹었다. ]

 

▲[ 다음날 취재 중 전화가 왔으나 못 받았다. 해서 문자가 다시 옴. ]

 

▲[ 취재중 온 전화가 친구 어미니가 하신 모양이다. 문자는 씹고 5시 넘어 어머님과 통화함]

 

** '세바' 란 카페내 대화명인 세바스찬의 줄임말.


그의 유일한 의사표현 도구 ‘문자메시지’


돌아온 그날이 지나고 한참 후에야 참 많은 걸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친구가 제게 보냈던 문자들을 속된 표현으로 씹었던 것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양양에 있는 한 복지시설에 입소해 지내다가 요 며칠 춘천 집에 와 있으면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제게 문자를 보냈을 터인데 그에게 있어 유일한 의사표현을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시를 해 버린 것입니다. 실은 제가 그 자리에서 받지 못한 문자나 부재중 전화에 대해선 거의 답장을 하지 않는 안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해서 여러 지인들에게 지적을 받고 있지만 온몸으로 보낸 친구의 문자를 좀 늦게 확인했다는 이유로 무시해 버렸다는 사실이 7월 20일 발로 문자를 힘겹게 찍고 있던 친구의 모습을 보고 온 후 이제야 가슴이 아프고 있습니다.


요즘 남녀노서 구분 없이 휴대폰 안 갖고 다니는 경우가 적습니다. 그만큼 휴대폰이 보급되었다는 의미고 이는 곧 문자메시지 발송에 있어서도 흔한 일임에 틀림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해서 난무하는 상업적 문자메시지들에 신경 예민해져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요. 그래서 이 문자메시지에 대한 귀찮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자메시지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앞으로 수신돼 오는 문자들은 좀 귀찮더라도 일일이 다 확인한 후 혹시 이 친구에게서 온 문자가 있었다면 아무리 지난 문자메시지라도 답변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 기능. 우리는 쉽게 쉽게 한 번 써버리고 마는 기능일지는 모르나 그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자신의 의사표현 도구가 될지 모르는 유용한 기능입니다.


문자메시지에 마음을 담아 보내자


뿐만 아니라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들 문자메시지로는 얼마든지 전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 부터라도 문자메시지에 대해 좀 더 관심 갖고 인간미 넘치는 내용이 오갈 수 있게 답장도 친절히 해주는 습관을 가져봐야겠습니다. 그동안 본이 아니게 문자메시지를 씹어 속상했을 친구 명근이에게 용서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명근아~ 문자 씹어 미안했다. 앞으로 문자메시지 오면 좀 늦더라도 답장 꼭 보내주마 혹시 늦더라도 속상해 말고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