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는 꽃다발 초봄을 앞둔 이맘때 쯤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어 교문을 같이 썼던 이웃고등학교 졸업식 날, 교문 앞은 온통 꽃천지였다. 꽃다발 장사들과 꽃을 사려는 사람들로 몹시 혼잡한 그 길을 걸어 나오면서 나는 내가 졸업하는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다 보니 교문 끝 한구석에서 초라한 꽃다발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할머니의꽃다발은 내가 보기에도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꽃에 시선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우리 학교 졸업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할머니는 같은 자리에 앉아 꽃을 팔았지만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한참 동안 한 다발도 팔지 못했다. 몹시 안타까웠다. 그러다가그 다음해 졸업을 맞은 나는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매일같이 엄마를 졸랐다. "엄마, 내 졸업식에 꽃을 사오려면 교문 앞에서 가장 볼품없는 꽃을파는 할머니의 꽃을 사 오세요. 알았죠?" 몇 번씩 거듭 당부하는 내 말에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그러겠다고 하셨다. 드디어 졸업식 날 나는교문 앞을 들어서면서 변함없이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고 일단 안심했다. 그날 식이 끝났을 때 엄마는 그 할머니에게 샀다며 내게 꽃다발을안겨 주셨다. 그런데 옆에 엄마와 함께 오신 친구들의 어머니들도 모두 비슷한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엄마가 그분들께도 얘기하신 거였다. 나는비록 친구들에게 꽃다발이 너무 볼품없다는 핀잔을 들었지만 마음만은 흐뭇했다. 윤정식 님 / 충남 논산시 두마면부남리 <좋은생각>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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