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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와 열 명의 어머니 그리고 111명의 자녀들

강산21 2001. 7. 30. 00:53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생모 그리워할 때가 가장 가슴 아파"
한 아버지와 열 명의 어머니 그리고 111명의 자녀들

세살배기 영민이는 엄마가 없는 틈에 신나게 물장난을 놀았다. 축축한 바지를 벗어버린 채 마을을 휘젓던 영민이는엄마가 달려오자 함박 웃음을 터트린다.

"아이쿠 우리 아들 이게 뭐야! 고추를 그대로 내 놓고 창피하게."

그새단정한 옷차림으로 깔끔해진 경민이는 엄마와의 바깥 나들이에 신나는 표정을 짓는다. 영락없는 모자지간인 서남숙(44) 씨와영민이.

"우리 경민이는 자동차 소리만 들리면 제일 좋아해요. 차 소리만 나면 바깥에 나가자고 손을 잡아끌어요!" 아들이 그렇게좋냐는 괜한 질문에 "그럼요, 우린 아들인데요 그치, 경민아!"

얼마 전 돌잔치의 주인공이었던 승채는 마을의 막둥이, 지난 2월1일 수녀원 대문 앞에 유모차에 실려 버려진 승채는 한 수녀님의 품에 안겨 마을에 왔다. 아이의 이름은 한 집에 살게 된 승찬이(6세)가 자신의동생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비슷한 이름으로 지었다.

순천SOS마을에는 아버지 한 분과 어머니 열 분, 이모와 삼촌 13명과111여명의 자녀들이 모여 산다. 일반 가정처럼 10가정에 나뉘어 사는 이들은 비록 친 혈육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혈육지정을 나누며산다.

한 분의 아버지인 김학규(64) 원장.

서른이었던 아버지는 어느새 예순 넷이 됐다. 핏덩이로, 사나운 눈빛으로안겨 온 갓난아이와 소년들은 아버지의 세월을 따라잡더니 놀랍게도 청년이 됐고 장년으로 성장했다.

김 원장은 아들과 관련된 뭉클한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사가 돼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미국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결혼식을 마친 아들이 피로연 자리에서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겁니다. 고아인 자신을 훌륭하게 키워준 아버지를 존경한다며 소개하는데 그것 참, 가슴이 미어질 것같았어요."

김 원장은 세상 밖으로 내보낸 600여명의 자녀들이 세파에 잘 견디는지 늘 걱정이다. 혈육에게 버려진 고통 못지않는것은 고아라는 신분 때문에 계속 배척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자식도 버리는데 제 배로 낳지도 않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있을까?' 세상은 야속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평생 독신으로 살며 상처받은 자녀들을 치료하기 위해 해산의 고통 못지 않은 아픔을참아내며 자녀들을 양육한다.

16년째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김명순(41) 씨는 어머니의 아픔을 이렇게 토한다.

"착하게 잘 자라던 한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방황과 가출을 했어요. 눈물로 기도하고 찾아다니며 호소했더니 다행히 제 자리로돌아왔어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아이들이 생모를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파요!"

혈육은 얼마나 잔인한연줄인가?

버려졌다는 사실에 못 견뎌하다 정신장애, 도박, 가출로 자신의 아픔을 표출하는 아이들, 핏줄 어딘가에 숨었던 육친의정이 꿈틀대면 몸살을 앓는 아이들... 육친의 정을 채워줄 수 없어 막막한 어머니들은 느닷없이 나타나 친권을 주장하는 부모들의 성화에 어쩔 수없이 자녀들을 내줘야만 한다.

용철이는 결국 교도소에서 출감한 아버지와 유흥업소를 떠돌던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부모가 헤어지면서 또 다시 버려졌다. 새어머니의 가출에 이어 아버지마저 행방을 감추면서 마을에 맡겨진 혜인(16세), 혜철(17세) 남매는 최근어머니가 나타나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떠난 아이들에 대한 불안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너 SOS마을에 산다면서..." 혹은"부모도 없는 애가..."

송곳 같은 말과 면도날 같은 눈초리에 순식간에 무너지는 아이들... 간혹 학교 친구들로부터 고아라는흉을 듣거나 맞고 돌아오면 형제자매들은 팔을 걷어부친다. 친 혈육 못지 않게 서로를 챙겨주는 마을 형제자매들, 아픔이 뭉치면 얼마나 큰 힘이되는가.

순천S공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한 자녀는 여천산단의 한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쓰라린 좌절을 겪고 오랫동안 방황을 했다.우수한 시험성적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탈락시킨 회사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고아라는 출신성분이 결정적 이유가 됐던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

학맥, 인맥, 지역이란 장벽을 겹겹이 둘러친 이 사회에서 바로 서기란 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거센 세파를 이겨낸 자녀들은 목사, 군인, 학생, 회사원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결혼해 손주들을 안고 찾아오기도 한다.

문성윤(40) 총무는, 깨진 그릇을 원상태로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원형에 가깝게 돌려놓는 일이 SOS마을의 존재이유라고 강조하면서이렇게 말한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버림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평생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만큼 사회가 아이들이사회 구성원으로 잘 설 수 있도록 도와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일반 가정보다 3∼4배나 식구가 많은 가정, 일부 방문객들은 이런사정을 고려치 않고 괜한 말로 상처를 남기고 갈 때 가슴이 아프다.

"간혹 마을 방문객들이 우리 가정을 보고 세탁기나 냉장고 등이너무 고급스럽고 크다며 냉소 섞인 말로 '우리보다 낫네'할 때 가슴이 막힙니다. 아직도 60∼70년대 고아처럼 헐벗고 굶주려야 한다는 인식에서벗어나지 못한 탓이겠지만 쉽게 남기고 간 말들이 이 곳 식구들에겐 상처가 됩니다."


SOS마을은?

SOS마을은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9년 오스트리아 티볼지방의 임스트란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전쟁의 참화로 많은 아이들이 절망과혼란을 겪어야했고 수용소에서 목숨을 연명해야 했다. 이를 지켜본 오스트리아 출신 헤르만 그마이너(1919∼1986) 씨는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버려진 아이들이 더 이상 상처없이 성장할 수 있는 보금자리'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1949년 SOS마을을 만들었다.

'우리들의영혼을 구해주소서'란 의미를 지닌 SOS(Save Our Souls)마을은 현재 전 세계 131개국에 343개의 어린이마을과 1005개의부대시설을 가진 세계적인 민간 사회복지 단체로 성장했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순천마을을 비롯해 서울과 대구에 마을이있다.(순천마을 061-752-7556)

조호진 기자 jhj600105@hanmail.net 
2001/07/27 오후 7:36:03 ⓒ 200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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