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그림사진

[사형수 63인 리포트] (2) 출생과 성장… 뒤틀린 성장 환경이 흉악범 만든다

강산21 2006. 2. 17. 23:45
[사형수 63인 리포트] (2) 출생과 성장… 뒤틀린 성장 환경이 흉악범 만든다
[국민일보 2006-02-17 18:56]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클리퍼드 라인데커는 살인자를 ‘악의 종자’라고 불렀다. 태어날 때부터 악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살인범이 태어나는 것인지,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뒤틀린 가정환경이나 성장과정 등 후천적 요인을 강조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물론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한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성장 환경이 흉악살인범의 온전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

 

◇불우한 가정환경=1996년 다른 폭력조직의 구성원 2명을 살해한 사형수 곽철웅(가명·당시 30세)씨는 ‘술집 키드’였다. 아버지는 바람을 피워 가출했고,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술집에 딸린 2평짜리 쪽방에서 컸다. 접대부 ‘누나’들이 주는 동전으로 군것질을 했고,술집 뒤를 봐주는 조직폭력배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자랐다.

 

학교에서 곽씨는 친구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고,선생님들은 그를 ‘골통’으로 불렀다. 고교를 중퇴한 그는 폭력 등으로 구치소와 교도소를 10차례 들락거렸고 신생 폭력조직의 보스가 되기도 했다. 곽씨는 다른 폭력조직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각상태에서 흉기와 야구방망이로 살인극을 벌였다.

 

곽씨처럼 부모가 정상적인 결혼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사형수는 32명이었다. 출신가정 형태가 파악된 사형수 49명 중 65%에 해당된다. 결손가정(편부 3명,편모 11명,고아 6명)이 20명,이혼가정이 12명이었다. 의처증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이 파괴된 경우가 포함돼 있고,몇몇 사형수는 생부·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출하기도 했다.

 

◇학대·가난 등 특별한 경험=2000년 미성년 여학생 2명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사형수 김하권(가명·당시 31세)씨에게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준비물을 사들고 왔다가 아버지로부터 “돈도 없는데 쓸데없이 왜 샀느냐”며 매를 맞았다. 김씨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잦은 폭력은 김씨 자신의 급우 폭행으로 이어졌다. 중2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했다. 1993년 짝사랑하던 여성이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보복성 강간을 시도하다 경찰에 붙잡혔고 2년뒤 펜팔로 알게 된 여성을 성폭행했다.

 

가난이 싫어 27세부터 원양어선을 탔다.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로부터 결별을 당한 뒤 김씨의 파괴적 공격성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2개월 사이에 초등학교 어린이와 여고생을 각각 강간 살해했다. 재판에서 변호인측은 “범행후 집에 돌아와 태연히 TV 드라마를 시청할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 아버지의 학대와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하면서 쌓인 증오심으로 병적 정신상태에 빠져 범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와 같이 육체적 학대나 찌든 가난 속에서 자란 사형수는 23명으로 확인됐다. 교화위원들에 따르면 배고픔에 호빵을 훔친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사형수가 있으며,돈을 훔쳐 소년원 생활을 시작했다가 범죄의 종착역에 도달한 경우도 있었다.

 

◇정상가정 출신도 17명=수도권의 명문고를 졸업한 사형수 성인규(가명·당시 22세)씨는 사업가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 대학 입학 전까지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성씨는 본인 희망대로 4년제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가정에서 겪은 문제라면 공부를 더 잘한 형에 대한 열등감 정도였다.

 

성씨는 고교 졸업 후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2년간 2000만원의 카드빚을 졌다. 아버지가 900만원을 대신 변제했지만 “나머지는 왜 갚아주지 않느냐”며 어머니와 심한 말다툼을 벌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차례로 살해했다. 아버지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하면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 속에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사형수는 17명으로 성장환경이 파악된 49명 중 35%였다. 2명은 친동생이 현직 교사나 경찰공무원일 정도의 가정환경이었다. 정상 가정에서 자란 사형수는 상대적으로 학력도 높아 대졸 4명,대학재학이 1명이었다. 반면 초교 중퇴 5명,초교 졸 6명,중학 중퇴 7명,중졸 8명 등 중졸 이하 학력자는 대부분 결손가정이거나 가난 또는 학대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