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미국의 범죄심리학자 클리퍼드 라인데커는 살인자를 ‘악의 종자’라고 불렀다. 태어날 때부터 악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살인범이 살인성향 갖고 태어나는 것인지,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국내외 학계에서는 뒤틀린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등 후천적 요인을 강조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물론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훌륭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한 사례들도 적지않은 만큼 사회적 환경이 흉악살인죄의 완전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
◇불우한 가정환경=1996년 다른 폭력조직의 구성원 2명을 살해한 사형수 곽철웅(당시 30세·가명)씨는 ‘술집 키드’였다. 아버지는 바람을 피워 가출했고,초등학교 입학전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술집에 딸린 2평짜리 쪽방에서 컸다. 접대부 ‘누나’들이 주는 동전으로 군것질을 했고,술집 뒤를 봐주는 조직폭력배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자랐다.
학교에서 곽씨는 친구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고,선생님들은 그를 ‘골통’으로 불렀다. 고교를 중퇴한 곽씨는 폭력 등을 저지르며 구치소와 교도소를 10차례 들락거렸고 신생 폭력조직의 보스에까지 올랐다. 과감해지기 위해 필로폰 주사바늘에도 몸을 맡겼다. 곽씨는 다른 폭력조직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각상태에서 흉기와 야구방망이로 살인극을 벌였다.
곽씨처럼 부모가 정상적인 결혼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사형수는 32명이었다. 결손가정(편부 3명,편모 11명,고아 6명)이 20명,이혼가정이 12명이었다. 교화위원과 판결문 등에 따르면 의처증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정이 파괴된 경우가 포함돼 있고,몇몇 사형수는 생부·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출하기도 했다. 가정의 결손에 대해 곽씨는 그룻된 외향성으로 반응했지만 부모 얘기를 숨기고 내성적,소극적 성격으로 변한 사형수들도 있다.
◇학대,가난 등 특별한 경험=2000년 11살과 17살 여학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사형수 김하권(당시 31세·가명)씨에게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준비물을 사들고 귀가했다가 아버지로부터 “돈도 없는데 쓸데 없이 왜 샀느냐”며 매를 맞았다. 김씨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2남2녀중 장남인 김씨는 다른 가족들과는 갈등이 없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김씨 자신의 급우 폭행으로 이어졌다. 중2 때 학교를 그만 두고 가출,10대 후반을 서울에서 식당 종업원을 하며 보냈다. 김씨는 1993년 짝사랑하던 여성이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보복성 강간을 시도하다 경찰에 붙잡혔고 2년뒤 펜팔로 알게된 여성을 성폭행했다.
가난이 싫어 27살부터 3년간 원양 어선을 탔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로부터 결별을 당하자 김씨는 ‘가학적 환상상태’로 빠져 들었다. 파괴적 공격성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김씨는 초등학교 여학생을,다시 두 달 뒤 여고생을 강간 살해했다. 재판에서 김씨의 변호인은 “범행후 집에 돌아와 태연히 TV 드라마를 시청했을 정도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학대 당하고,커서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하면서 쌓인 증오심으로 병적 정신상태에 빠져 범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와 같이 육체적 학대나 찌든 가난 속에서 자란 사형수는 23명이었다. 배고픔에 돈을 훔쳐 소년원 생활을 시작했다가 살인이라는 범죄의 종착역에 도달한 경우도 있었다.
◇정상가정 출신도 17명=수도권의 명문고를 졸업한 사형수 성인규(당시 22세·가명)씨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경제적 어려움없이 자랐다. 대학 입학전까지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성씨는 본인 희망대로 4년제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부모 사이에 문제는 없었다. 성씨가 가정에서 겪은 문제라면 공부를 더 잘한 형에 대한 열등감 정도였다.
성씨는 고교 졸업 후 2년간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2000만원의 카드빚을 졌다. 아버지가 900만원을 대신 변제했지만 “나머지는 왜 갚아주지 않느냐”며 어머니와 심한 말다툼을 벌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차례로 죽였다. 아버지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1,2,3심 재판부는 성씨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정상가정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속에 가족살해라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부모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평균 혹은 이상의 삶을 살았던 사형수는 17명으로 가정환경이 파악된 사형수 59명 중 29%였다. 2명은 친동생이 현직 교사나 경찰공무원일 정도의 가정환경이었다. 대학 재학 이상의 사형수 5명도 모두 정상 가정에서 자랐다. 반면 중졸 이하 학력자 중에는 결손가정이거나 가난 또는 학대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