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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국민연금> ③위기는 기회다

강산21 2006. 2. 16. 12:06

<기로에 선 국민연금> ③위기는 기회다
 
[연합뉴스 2006-02-16 05:21] 
 
개혁원칙 지켜져야..정치 불개입.국민 합의 필요
선진국 경험.시행착오 통한 `학습효과' 활용해야

 

(서울=연합뉴스) 황정욱 기자 = 국민연금 개혁안의 정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만 큼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힌다.

 

수혜의 폭을 넓히면 경제에는 독이 된다. 그렇다고 복지를 허술하게 방기하면 부작용이 남게 된다.

 

오랜 연금 역사를 가진 선진국들도 갈팡질팡 해오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에선 이탈리아가 대표적인 연금 실패국으로 꼽힌다. 잦은 정권 교체기 마다 득표의 한 방편으로 연금이 이용됐다. 이탈리아의 실패는 복지 논리 대신 정치 논리가 득세한 결과다.

 

김용문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파이를 더 주다보니 파이가 너무 많아져 보험 재정을 감당 못하는 나라가 많다"고 "정치 논리로 풀면 연금은 왜곡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연금에는 정치적 교훈이 있다. "연금개혁은 정권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연금 개혁을 추진한 정권이 선거에서 이긴 경우가 거의 없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역으로 풀이하면 자기 희생 없이는 연금개혁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의 경우 연금 개혁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덜한 편이다. 연금을 도입한 지 19년 밖에 안되는 짧은 역사 때문에 연금 수급자가 170만명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2008년이 되면 그 수가 300만명이 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연금 수급자가 증가하는 비율 만큼 연금 개혁의 난이도도 함께 올라간다는 게 정설이다.

또 연금 후발국인 우리로선 선진국의 경험과 시행착오에서 `학습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연금 전문가들은 이런 여건을 십분 활용, 차제에 개혁다운 개혁을 이끌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향후 수십년은 버틸 튼튼한 연금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정경배 한국복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이번에 근본적인 재정안정 구조를 다듬어야 한다"면서, "정치권에만 맡겨선 안되며 학계와 언론, 전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범 사회적 공감대가 토대로 철저한 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의 산파역이 될 정치권에 대해선 기대 보다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국민적 관점에서 연금을 설계하기 보다 당리당략이나 표계산 등에 휘둘릴 가능성에서다.

 

김상호 관동대 교수는 "여야의 연금 개편 주장에는 당장 표를 구하기 위해 백년대계를 포기하는 정치집단의 술수가 엿보인다"고 비판하고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간에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연금 개혁의 방향은 크게 3가지로 나눠진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국민연금법 개정안처럼 현행 연금 구조를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바꾸는 것이 첫번째다.

 

다음으로는 연금을 다층 구조화 하는 방식이다. 현행 연금 체계의 골격을 유지하되 정부가 세금 징수 등을 통해 모든 노인들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적용방식'도 가미하는 혼용 방식이다. 여기에다 사적 연금까지 가세하면 그물망은 한층 촘촘해 진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는 이 범주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적 사회 연대의 일환으로 연금 보험료를 따로 내지 않더라도 모든 노인들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우리로서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3번째 방식을 배제하고 1, 2번째 방식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따지고 들어가면 선택과 결정의 폭은 한없이 다양하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간다 할 경우 얼마를 더 내고 얼마를 덜 받아야 할 지, 또는 이 연금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질 사각지대에 대한 배려는 어느정도 수준에서 정해야할 지 등이 관건이 된다.

 

연금 다층 구조도 각 층간에 충돌은 없는 지,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얼마로 할 지, 또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지, 세금 등을 통한 조달 방식에 국민이 동의해 줄 지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좀 더 관대한 태도로 기초연금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정부 여당은 "한나라당의 방안은 현실성이 없다"며 "막상 진짜 하자고 덤비면 피할 것"이라고 기초연금제 주장 배경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연금 개혁의 과정이 복잡하고 지난하며 그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연금 개혁의 전제 조건으로 정치 논리 불개입, 국민적 합의 과정과 절차, 경제와 복지의 조화, 중.장기적 관점과 거시적 안목, 저출산 고령화의 시대적 흐름 수용 등 최소한의 기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와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면서 빈곤 노인층에 대한 최저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주문했고, 노인철 전 국민연금연구원장은 "재정 안정화와 사각지대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나 정답이 없는 만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