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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국민연금> ②표류하는 개혁

강산21 2006. 2. 15. 09:34

<기로에 선 국민연금> ②표류하는 개혁
 
[연합뉴스 2006-02-15 05:21] 

`더 내고 덜 받는' 정부 연금 개정안, 정치적 이해 관계로 마냥 표류
대선.총선이 개혁 걸림돌로 작용 가능성.."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서울=연합뉴스) 황정욱 기자 = 국민연금 개혁이 국회 내로 들어가자 마자 실종됐다.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16대 국회 때인 2003년 10월. 그러나 국회가 교체되는 어수선한 시점이어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이 개정안은 2004년 6월 원안 그대로 17대 국회에 다시 제출됐다.

 

개정안 내용은 소득의 60%에 해당하는 현행 연금 수급액을 2008년부터 50%로 낮추되 가입자의 충격 완화를 위해 2007년까지는 55%의 수급액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대신 소득의 9% 수준인 보험료율은 오는 2010년 10.38%로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매 5년마다 1.38% 포인트 인상, 2030년에는 15.90%에 이르도록 했다.

 

연금 설계 초기부터 보험료에 비해 워낙 후하게 지급하는 체계로 짜여져 있어 이 같은 내용의 정부안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어느 시점에 가면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17대 국회 들어서도 2년 가까이 마냥 방치되고 있다. 국회내 연금특위가 구성됐지만 여야간 진지한 논의가 사실상 단 한차례도 없었을 정도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왜 그럴까.

 

몇가지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나라당이 65세 이상 노인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이 같은 주장은 분배를 중시하는 쪽인 열린우리당 색깔에 근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의 지지 계층 확대라는 전략적 고려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 여당내 혼선도 개정안 처리 지연의 한 원인이 됐다. 열린우리당은 `덜 받도록 하되 더 내지는 않도록 하자'는 법안을 낸 적이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으로 있을 당시 이를 주도했다. 지금은 이 같은 안이 철회됐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눈치보기식 절충안'이 아니었느냐는 비판여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당장의 지방선거는 차치하고라도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등의 정치일정이 연금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다.

 

실제 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야.정 대치구도가 대선 때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방의 주장 관철이 거의 불가능한 국회 구도상 절충이 불가피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양측간 거리가 너무 멀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제는 균등 연금과 소득비례 연금의 중층 구조를 택하고 있다.

 

균등연금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세금 징수를 통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 대비 일정액을 주되, 4-5년이 지날 때마다 지급 비율을 높여 2028년에는 최종적으로 20%에 이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 연금가입자의 월평균 소득 15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는 13만5천원, 2010년에는 16만5천원, 2015년 20만2천원, 2020년 24만원, 2025년 27만7천원, 2028년 30만원으로 늘어난다.

 

소득비례 연금은 소득의 7%를 보험료로 내고 생애 평균소득의 20%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가입 여부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 같은 기초연금제에는 막대한 예산이 든다. 보건복지부는 시행 첫해 8조원 이상 들다가 2030년이 되면 193조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70년에는 무려 1천354조원의 소요액이 추계돼 있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 한나라당 간사인 박재완 의원은 "세금 부담이 늘더라도 기초연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3분의 2 정도 된다"면서 "비용도 생각만큼 많지 않아 우리 계산으로 하면 시행 첫해 2조3천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잘못된 계산법"이라며 기초연금제에 들어갈 재원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정부 여당은 이번 연금법 개정안에 사각지대 해소책이 미흡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지원 확대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의 균등연금을 일부 수용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입장은 강경하다. 박 의원은 "우리로선 기초연금제 도입 시한과 기초연금제 책정액 정도가 절충 가능한 범위"라며 "합의가 안되면 대선공약으로 끌고 간다"고 못박았다.

연금 개혁의 장기 표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고 이렇게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로 넘어간다.

 

한 연금 전문가는 "한나라당이 감세를 주장하면서 기초연금제를 도입하자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열린 자세로 합의점을 모색하고 개혁안을 도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