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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올리면 나라 망하나?

강산21 2006. 1. 30. 23:16
세금 올리면 나라 망하나?
[한겨레 2006-01-26 18:18]    

[한겨레] “4800만 국민이 100원씩만 내게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시험 전날, ‘우리 학교는 불도 안 나나’처럼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 이게 바로 세금의 메커니즘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다 덜컥 실망이 올라왔다. “나는 국민이 원치 않는 일을 할 만큼 그렇게 용기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보’ 노무현이 이리도 ‘똑똑이’였던가? 그는 “정도가 아니면, 차라리 낙선을 택하겠다고 했다”며 대선 때를 자랑스레 말했다. 증세 여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8·31 부동산대책 당시 “하늘이 두쪽 나도”라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할 때와는 많이 다르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부동산은 기득권층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 국민이 지지했다. 그런데 세금은 부자는 물론 못사는 사람들도 다 쌍심지를 켜기에 움찔할 수밖에.

 

연봉 1580만원 미만이면 세금(직접세)을 한푼도 안 낸다. 2500만원 정도라도 연말정산을 받으면 사실상 세금을 안 내는 이가 많다. 그런데 증세 얘기가 나오면, 자신이 세금을 내는지 안 내는지도 모른 채 다들 난리다. 내더라도 얼마 더 내고, 얼마 더 받나를 따지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최근 세금 논란은 ‘증세=악’을 전제로 진행되는 듯하다. 없는 사람 처지에선 10원 내고 100원 돌려받으면, 그 길을 택해야 하는데, 논의 자체도 말자 한다. 누가 이런 논리를 세우고, 세뇌시키고 있나?

 

세금을 올리지 말아야 되는 이유로 거론되는 게 성장잠재력 훼손, 투자심리 위축 등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정부가 제정신이면 성장잠재력을 해치면서까지 세금을 대폭 올리겠는가? 세금을 안 올리면 기업들이 투자하고, 직원도 뽑나? 최근 증세 논란의 논의구조는 허망하다. 미래 청사진을 유럽식 복지국가 형태로 할거냐, 미국식 자본주의 형태로 할거냐는 점을 먼저 논박해야 할 터인데, 이는 생략하고 밑둥치에서 ‘세금을 더 내니 마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인적으론 단일민족 국가, 좁은 국토, 동질화된 사회, 농경사회적 전통 등을 감안하면 유럽식이 우리 사회 갈등요소를 줄일 뿐 아니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이라 생각한다. 미국은 우리보다 더 심한 빈부격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문화와 역사가 다른 여러 인종·민족이 뒤섞인 데다 사회가 다원화돼 있어 어느 정도의 격차는 용인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도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미국식을 따른다고 해보자. 전국민의 15%가 건강보험이 없고, 뉴올리언스 사태에서 보듯 부조리와 불평등이 만연하고, 80년대 레이건 정부 이후 복지재정 축소가 줄기차게 진행된 지금의 미국도 우리와는 또 얼마나 다른가?

 

2004~2005년 미국연수를 1년간 다녀왔다. 내가 있던 미시간주에선 월소득이 1400달러 이하면 저소득층에게 주어지는 메디케이드를 신청할 수 있다. 출산때와 미성년자에 대해선 수술을 포함해 의료비가 무료다. 메디케이드가 아니어도, 종합병원에는 사회복지 직원이 있어 병원비가 모자라면 상담을 거쳐 대폭 깎아주거나, 분할상환 혜택을 준다. 감기로 병원에 가도 100달러를 내는 곳이 미국이다. 나는 의사들이 야간에 돌아가며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공적 의료기관을 이용했다. 20달러면 됐다. 우리나라에 이런 안전장치가 있나?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이런 자원봉사를 기대할 수 있나?

 

세금을 줄여 진료비를 감당할 만큼 내 월급이 늘어나는 것과 세금을 늘려 정부가 진료비를 줄여주는 것, 어느 게 더 빠를까?

 

권태호/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