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빅뱅 예감 2006 극장가의 대형뮤지컬, 요절복통 코미디 <프로듀서스> 주목
조승우가 무대에 오를 예정인 <지킬 앤 하이드>도 일찌감치 입장권 동나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빅뱅’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쓰인다. 올해 뮤지컬 극장가를 두고 나온 말이다. 지난 2001년 우리말로 번안됐던 <오페라의 유령>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뮤지컬의 산업화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이래 매해 17~18%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오던 우리 뮤지컬계는 새해 들어 더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올 1월에 예정된 대형 뮤지컬 무대만도 대여섯 작품에 달해 치열한 시장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년의 경우 대형 뮤지컬은 한 시즌에 한 작품 남짓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열기가 아닐 수 없다. 가히 21세기 한국은 뮤지컬 전성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홍콩 스타 모원웨이 캐스팅한 <렌트>
2006년 우리 뮤지컬 시장에 나타나는 큰 특징은 다양한 유형으로 시장이 분할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뮤지컬 시장이 수입과 창작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의존해왔다면, 양적 팽창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 올해에는 좀더 다양하고 다변화된 시장의 구분과 분할 그리고 이에 따른 새로운 관객층의 개발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하고 획일화된 환경보다 소비자가 각자의 개성과 구미에 따라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은 일단 반가운 현상임이 틀림없다. 물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따른 마케팅 전략의 수립과 분석,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수요와 공급의 예측과 창출을 꾀해야 한다는 점은 뮤지컬 산업이라고 해도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올 초 우리 뮤지컬 극장가에 올려질 작품 중에는 단연 <프로듀서스>(Producers)가 돋보인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쇼 기획자들’쯤으로 바꿀 수 있는데, 요절복통 코미디로 지금도 브로드웨이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화제작이다. 만들기만 하면 망하는 브로드웨이 쇼 제작자가 일부러 흥행에 실패할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인데, 성공하면 투자자들에게 이익금을 배당해줘야 하지만 실패한 공연에는 아무도 배당금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거액의 제작비를 모아 일부러 망하는 공연을 올리려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쇼는 최고의 풍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이중장부가 들통나 그만 철창행 신세가 되고 만다. “무엇이 잘못돼 성공했지?”(대부분 “어디가 잘못돼서 실패했지?”라고 말하지만 이 뮤지컬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라서 우습다)라는 유의 <프로듀서스>만의 대사는 애호가 사이에서 한참 회자됐을 정도로 재미있다. <프로듀서스>는 초연이 되던 2000년 토니상 12개 부문을 휩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어떤 뮤지컬도 이보다 많은 토니상을 받지 못했다.
조승우가 무대에 오를 예정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도 일찌감치 입장권이 동이 난 인기 뮤지컬이다. 우리에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제목의 괴기소설로 더 유명한 이 무대는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등과 함께 흉측스런 괴물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로 각광을 받았다. 뮤지컬에 나오는 주제곡들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는데, <원스 어폰 어 드림>(Once upon a dream)은 클래식 가수들의 애창곡으로도 불린 바 있다. 특히 국내 마니아들 사이에선 “조승우에 의한, 조승우를 위한, 조승우의 무대”라는 별칭이 널리 알려졌을 정도로 배우 조승우의 매력을 한껏 담아냈던 작품이다. 이번 국내 공연을 마치면 일본 일정도 잡혀 있어 무대에서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에 도전할 예정이다.
<프로듀서스>와 <지킬 앤 하이드>가 우리 제작진이 한국말로 번안해 무대를 꾸미는 경우라면, 또 다른 외국 뮤지컬 <렌트>는 현지에서 팀을 구성해 내한하는 투어 뮤지컬로 시선을 끈다. 원래 뮤지컬가에서 투어 공연이라 하면 출연진이나 제작진, 기술 스태프 등이 모두 현지에서 선발, 참여하는 투어 프로덕션을 구성해 지역을 이동하며 무대를 꾸미는 것을 말한다. 과거 이같은 투어 뮤지컬 공연이 동일 언어권이나 문화권 내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다분했던 반면, 최근 세계 극장가는 좀더 글로벌한 규모로 그 시장을 넓혀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현지에서 더 이상 관객 동원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재활용해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세계적 문화자본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이번에 국내 무대를 찾을 예정인 <렌트>는 특히 홍콩계 스타 여배우인 모원웨이(막문위)를 캐스팅하는 등 아시아 지역의 투어를 목표로 구성된 아시아 투어팀의 공연인데, 제작자인 조너선 라슨의 사망 10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무대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지난해 초연해 큰 인기를 누렸던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두 번째 내한 공연도 관심이 가는 무대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소설을 형이상학적인 무대와 아름다운 선율에 담은 이 뮤지컬은 프랑스 문화권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못지않은 메가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올해 우리 뮤지컬 극장가에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 뮤지컬 시장의 분화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명명되며 뭉뚱그려졌던 수입 뮤지컬들이 그 형태에 따라 투어 뮤지컬과 번안 뮤지컬 등으로 다시 세분화되고 있다. 특히 투어 뮤지컬의 양적 증가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설명한 작품들 이외에도 또 다른 프랑스 뮤지컬인 <십계>, 브로드웨이팀으로 구성됐다는 <그리스>, 오리지널 캐스트로 구성됐다는 <지킬 앤 하이드>의 투어 콘서트, 퍼포먼스 뮤지컬인 <스톰프> <블라스트> 등이 전반기 공연시장에 앞다퉈 막을 올릴 예정이다.
투어 뮤지컬과 번안 뮤지컬의 분화
마니아의 입장에서 수입 뮤지컬을 외국 배우들에 의해 그 모습 그대로 본다는 점은 일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유니버설한 공감대의 형성을 통해 전 지구적 마케팅 체제를 구축하는 영화와 달리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속성을 적극 반영하는 뮤지컬 무대에서 이같은 형태의 공연들이 과연 현지 관객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다. 글로벌한 뮤지컬 소비시장의 구축은 문화의 다양성을 파괴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로컬 시장의 성격을 자칫 세계적 문화상품의 ‘소비시장’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외국 뮤지컬도 뉴욕 극장가에 올려질 때면 다시 미국적 정서와 문화를 반영하는 내용으로 개작되고 번안돼야 한다는 브로드웨이의 흥행 공식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 수입 뮤지컬 혹은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불리며 창작 뮤지컬의 반대적 입장으로만 해석되고 받아들여졌던 번안 뮤지컬들도 이제는 그 역할을 다시 조명해봐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셈이다. 문학계의 번역처럼 번안 뮤지컬도 ‘제2의 창작’을 더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