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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향기

강산21 2001. 5. 7. 06:02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그 사람의 향기

지난 2월, ‘따스한 겨울나기 운동 본부’에 무료 식권 3100장을 기탁한 안성노 씨.
‘사람의 향기’는그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화두같은 거였다. 그는 그 이전에도 양로원,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꾸준히 무료 식권을 나눠주었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후원도 7년 동안 매달 해 오고 있는 일이다. 그는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다. 현재의 가게도 집도 모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없는 대로 도우며 함께 가야한다고 그는 늘 생각한다.

신사 분이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켜놓고한참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가지신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칼국수를 다 드시고 10만 원짜리 수표를 내시더라고요. 그리고는 거스름돈을받지 않는 거에요. 돌려주려고 애를 썼지만, 잘 먹었다며 한사코 그냥 나가셨어요.”
서울 노량진에서 바지락 칼국수집을 경영하는 안성노씨(37세)가 신이 나서 얘기한다. 이쯤 되면 사장이야 신바람이 나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한 그릇에 4000원 하는 칼국수를 10만 원에먹고, 감사의 인사까지 하고 떠난 손님을 우리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쨌거나 안씨는, 지난 해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따듯했다고했다. 이름 모를 통 큰(?) 손님 때문에 그랬고, 부쩍 바빠진 가게일 때문에 그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 샘솟는 더운 감정 때문에 그랬다.그러면서 그는 세상의 신기한 이치도 깨달을 수 있었던 뜻깊은 겨울이었단다. 그건 받아서 따뜻한 사람이 있으면, 주어서 따뜻한 사람도 있다는평범한 진리였다고 했다.

지난 2월 그는 동작구청의 ‘따스한 겨울나기 운동 본부’에 무료 식권 3100장을 기탁했다. 그리고현재까지 2500여 명의 이웃들이 바지락 칼국수 집을 다녀갔다. 집안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 무의탁 노인, 취로 사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이들. 모두들 따듯한 한 끼 식사가 정말로 필요한 이웃들이었다. 그러니까 앞의 신사 분은 그런 안씨의 선행에 감동하여 선뜻 동참을 표한것이었다.
“아직도 없어서 굶는 이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믿지 않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분들에게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스스로에게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 용기를 ‘실천의 용기’라고말했다. ‘봉사(奉事)’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실천 앞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은 마치 버스 안에서 노인 분에게 자리를‘양보해야지’와 ‘실제로 양보하는’ 사소한 차이인데, 그 의미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젊은 시절, 그 또한고마운 칼국수를 대접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스물두 가지의 직업을 가져봤다는 그의 인생 역정 속에서 쓰레기 청소부는 그에게 몇 번째직업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군 제대 직후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쓰레기를 치우던 시절이었다.
“골목 한 귀퉁이에작은 칼국수 집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하셨는데, 매일 새벽이면 큰 대접에 칼국수 한 그릇을 끓여놓고 저를 기다렸어요.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1년을 하루같이 정을 베풀어 주셨어요. 7년 전 그 자리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칼국수 집도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하지만할머니가 건네준 ‘사람의 향기’는 아직도 저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사람의 향기’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화두같은 거였다. 그는예전에도 양로원,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꾸준히 무료 식권을 나눠주었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 후원도 7년 동안 매달 해 오고 있는 일이다. 그는그렇게 부자는 아니었다. 현재의 가게도 집도 모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없는 대로 도우며 함께가야한다고 그는 늘 생각한다.
“하루 평균 200명 정도의 식권 손님을 약 열흘 간 받았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가게에서 잤어요. 다음 날일찍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퇴근할 수가 없더라고요. 하루 종일 불하고 사니까 가스 냄새 맡아야죠, 일은 몇 배로 많아졌죠. 그야말로 몸은파김치가 되었습니다.”

부인 박명희 씨(33세)가 매일 큰 잔칫집을 방불케 했던 가게의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박씨는잔치가 대충 끝날 쯤엔 사흘 동안 병원에 가서 누워있었을 정도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그래도 견딜 만했던 것은 돕고 사는 즐거움 때문이었다고.장사 잘 되라고, 돈 많이 벌어 또 좋은 일하라고 가게를 나서며 들려주는 그 분들의 덕담은 아마도 칼국수 한 그릇 값은 훨씬 더 할거라며웃는다.
티 없이 맑게 자라주는 선영(6세), 선이(5세) 두 딸에게도 박씨는 늘 고맙다. 엄마 아빠가 바빠지면 아이들은 더 심심해지기마련. 예전에는 가끔 시장도 가고 책도 함께 읽고 했는데 2월부터는 한 번도 못해줬다. 그래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 엄마의하루는 즐겁단다. 그렇게 바지락 칼국수집의 가족들은 이웃 사랑으로 화창한 봄을 끌어오고 있었다. 이제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는 탄식만으로 할일을 다한 양, 떳떳해하는 세태의 한 가운데서 삼천리 금수강산의 진심(眞心)을 심고 있었다.

“몸을 좀 추슬러서 또 시작해야지요.이번에는 초등학교를 찾아가고 싶어요. 호적상 부모는 있는데 실제 부모 없는 애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가서 끓여주던가, 재료를 포장해주던가 할 생각입니다.”

이들 내외가 들려주는 새 봄의 풍경은 어느 꽃보다 아름답고도싱그러웠다.

연락처 : 02-812-6252 글 서상영 │ 사진 나명석

월간 여의주 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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