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글 좋은글

"엄마, 난 그래도 상훈이가 좋아요"

강산21 2001. 5. 3. 00:57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엄마, 난 그래도 상훈이가좋아요"

"여보, 여보! 새로 이사 온 집 말이에요. 글쎄 아저씨가 대학 교수라네요. 책도 온통 다 영어로된 책이고…. 안팎으로 교양 있게 생긴 게 친하게 지내도 될 것 같아요. 상훈이란 아이는 우리 희망이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던데.”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는 내내 옆집 사람들 이야기를 하셨다.
“옆집 아이는 공부도 잘 하는지 희망이네 학교로 전학 오는 게 아니라 다니던학교를 그냥 다닐 거라고 하네요. 영재들만 들어가는 학교 아닌가 몰라. 아유, 얼마나 좋을까. 희망아, 너도 옆집 애하고 친하게 지내도록 해.알았지?”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집 녀석을 만났다. 그런데 녀석은 집으로 곧바로 가질 않고 놀이터에 주저앉았다.그러고는 모래 위에 1, 2, 3… 하며 숫자를 쓰고 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니가 지금 몇 살인데 흙장난이나 하고그래?”
“아, 아니야. 자, 잘못했어. 근데 난 모래 놀이가 제일 좋아.”
“웬일이니? 너는 공부가 제일 재미있지 않아? 너학교에서 뭐 배우냐?”
“학교 가서도 매일 이렇게 놀아. 장난감 놀이도 하고….”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5학년씩이나 된 녀석이 학교에서 흙장난이나 하다니. 하지만 난 며칠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 녀석은 우리 엄마가 알고 있는 것처럼 천재가아니라 좀 모자란 녀석이었다. 아이큐가 70밖에 안 돼서 특수 학교에 다니는 녀석…. 영화에서나 본 ‘포레스트 검프’같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난 그 녀석이 포레스트 검프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왠지 그 녀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난 녀석을 ‘검프’라 부르며 매일 같이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녀석은 착했고, 내 말을 열심히 들어줬다. 내 말은 무조건 무시하는 어른들과는 달랐다.

"어머,여보 이런 일이 어디 있대요? 글쎄 옆집 상훈이 말예요. 저능아라지 뭐예요? 어쩐지 좀 모자라게 생겼다 싶더니 아니나다를까 바보래요,글쎄….”
엄마는 뭐 큰일이라도 난 듯이 아빠와 나를 불러 앉혀놓고 한 시간이나 옆집 흉을 봤다. 나는 상훈이를 두둔하려고 했지만 엄마는말할 틈을 주지도 않고 혼자서만 얘기하셨다. 그러더니 급기야 내가 걱정하던 말씀을 하고야 말았다.
“얘, 희망아. 너 옆집 애랑 절대놀지마. 걔랑 놀다가는 큰일나겠다. 앞으로 걔가 놀자고 해도 공부해야 된다고 그러고 학원으로 바로 가. 알았지? 절대 그 아이하곤 말도하지마.”

'엄마, 상훈이는요, 좀 모자랄 뿐이지 절대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다른 애들처럼 싸우지도 않고 욕도 안 해요.그리고 상훈이도 그 학교에서 열심히 배우면 우리들하고 똑같이 될 수 있대요. 나는 상훈이하고 친구하는 게 좋은데, 나중까지 친하게 지내서 커서도옆집에 살고 싶은데…’.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을 할 수 없었다.

글|이수진 월간 여의주2001.4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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