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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의 비밀

강산21 2001. 4. 29. 00:20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슈퍼맨의 비밀

슈퍼맨의 비밀 - 장애인 무료 수송하는 개인택시운전사 채춘덕씨

어린 시절 한때, 혹은 어른이 된후에라도 어느 날 문득 야무진 꿈 하나 머리 속에 그려볼 때가 있다. 남들은 모르는 초인적인 힘이 내 안에 있어서, 누군가 애타게 도움을기다리는 이가 있으면 어디라도 달려가 구해준다… 영화에서 본 슈퍼맨처럼!
잘 다려진 하늘색 와이셔츠에 감색 넥타이를 단정히 맨채춘덕(44세) 씨는 출근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잡아 탄 택시에서, 약주 한 잔 얼큰하게 걸치고 돌아가는 늦은 귀가 길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평범한 택시운전사이다. 굳이 별난 점을 찾자면 승객이 내릴 때 “좋은 하루 되십시오” 하는 인사를 잊지 않고 챙기는 것과 얼굴에 수줍은 듯친절한 웃음이 반짝, 하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팔뚝께의 초록색 완장 정도가 될까? 그 초록색 완장 위에는 ‘새마을교통봉사대’라는 글씨가얌전하게 새겨져 있다. “장애인 수송 요청입니… 석수동에서 정은진 씨가… 치익… 기다리고 있습니다… 치익….” 갑자기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소리에 “116호 출동합니다”라고 답한 채춘덕 씨가 얼른 핸들을 꺾는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순식간에 슈퍼맨으로변신하듯이 채춘덕 씨는 이 순간부터 택시운전사가 아닌 ‘새마을교통봉사대원’이 된다.
‘새마을교통봉사대’는 여러 지역에 지회를 두고 있는전국 규모의 봉사조직이다. 그 중에서도 경기도 안양시와 의왕시에서 활동하는 ‘안양 새마을교통봉사대(회장 박도용)’는 백퍼센트 개인택시운전자들로만이루어진 모임이다. 지난 1994년,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개인택시운전자 열한 명이 의기투합해 시작된 봉사활동에, 다른 운전자들이 하나둘씩동참하면서 지금과 같은 큰 조직을 이루게 되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고민을 한다는 서로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어느 지회보다 탄탄한 결집력을자랑하는 ‘안양 새마을교통봉사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마치 원래부터 그들의 발이었던 양 유난스럽지 않게 묵묵히무료로 수송해왔다. 대원으로 등록된 개인택시운전자만도 193명, 정기적인 진료를 위해 봉사대를 찾는 단골 장애인회원만 20여 명이 넘는다.
채춘덕 씨가 ‘안양 새마을교통봉사대’에서 활동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다. 봉사대의 세부적인 상황과 활동을 한눈에 꿰뚫고 꼼꼼하게 챙기는교통봉사대의 살림꾼이 바로 채춘덕 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회사에 취직했지만 좀더 활동적이고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어 운전대를 잡게 된 지벌써 20여 년. 이곳저곳 쏘다니다 보니 이 세상 딱한 사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버스를 몰다 개인택시 영업을 시작하면서 교통봉사대원으로서의삶도 시작되었다. 교통봉사대 본부로 전화를 걸어 수송을 요청한 사람을 찾아가 보면 이제는 낯이 익은 얼굴이 기다릴 때도 있고, 때론 거동이불편한 장애인을 업거나 안고 아찔한 계단을 내려와야 할 때도 있다.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장애인을 부축해 조심스레 택시 안에 태우고 휠체어를찰칵, 접어 트렁크에 넣고 나면―등에 땀 한차례 흘리고 나면, 그제서야 진료소를 향해 출발이다.
햇살이 따사로워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불어오기 시작하면 왠지 싱숭생숭해져서 어디로든 콧바람 쐬러 나가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그런 봄날의유희는 그만두고서라도 생존과 직결되는 진료소 왕래조차 여의치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기에 채춘덕 씨의 택시를 탄 장애인들은고맙고, 또 고맙다고 몇 번씩 되풀이 말하고 나서도 뭔가 모자란 듯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은 ‘시간이 곧돈’인 직업이다. 부인과 고등학생인 두 딸을 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도 빠듯할 사람이 여유 시간이 아닌 근무 시간을 쪼개, 누가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위해 달려오니, 아무리 채춘덕 씨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십시오” 하고 신신당부를 해도 택시를 탄 장애인들은“고맙고, 또 고마워요” 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 봉사대 차량이 도로에 늘어선 길이만도, 3km가 넘었다니까요, 장관이었죠. 오래간만에나들이 한 분들이 어찌나 좋아들 하시는지….” 채춘덕 씨는 지난 봄에 무의탁 노인, 장애인들과 함께 인천의 월미도로 나들이 갔던 일을 두고두고이야기하곤 한다. 서른 대의 개인택시가 동원되었던 그날의 나들이는 들뜸 그 자체였다. 평소 집 앞 공원에도 마음대로 나가기 힘들었던 이들에게월미도 나들이는 그 어떤 호화판 여행에도 비교될 수 없는 ‘화려한 외출’이었다. 가끔씩 “자기 먹고 살 궁리나 하지” 하는 핀잔을 들을 때나장애인 수송 때 실수로 오히려 욕을 먹게 될 때가 있더라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냥 툭툭 털어 버리게 된다. 장애인들의 창백한 얼굴이 햇살에그을리는 것을 보고,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고 채춘덕 씨는 그날 기분이 좋아, 못하는 노래도 한 곡조 뽑았다.
채춘덕 씨가 하는 일은 장애인 무료 수송뿐만이 아니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보건소에 데려다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여름에는 수해복구에,겨울에는 저소득 노인들을 위한 김장담그기에 참여하기도 한다. 입시 철이면 수험생 무료 수송에도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쉬는날이면 다른 봉사대원들과 교대로 무의탁 노인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배달해준다. 안양시 의용소방대 대원들이 매일 아침 조연순(51) 대장의 식당에모여 정성껏 준비한 따뜻한 도시락을 무의탁 노인들이 속한 이 지역 저 지역의 동사무소에 가져다주는 것이다. 따끈한 계란말이며 고등어 조림이 든도시락을 건네 받고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노인들, 도시락을 안고 돌아선 굽은 어깨에 소박한 행복이 내려앉는 것을 볼 때, 채춘덕 씨는자신이야말로 금방 도시락 하나 까먹은 사람처럼 뱃속이 든든하다.
“새마을교통봉사대에서 활동하는 기사분들은 아무래도 택시 영업도 모범적으로하는 분들이겠죠?” 하는 좀 빤한 질문에 채춘덕 씨는 말한다. 처음엔 아니었다 하더라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대원들도 변한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열심히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을 돕는 따뜻한 온정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따뜻한 사람으로 변해간다고.
“혼자서는 뭔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도 사실, 실행하기가 힘들잖아요. 한계도 있구요. 이렇게 여럿이 함께 하니까 그럭저럭 해나가는거죠.” 채춘덕 씨가 겸손하게 하는 말이지만, 그 말 속에 바로 슈퍼맨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 힘으로 슈퍼맨이된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구해주고 쓰러진 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슈퍼맨은 여러사람이 힘을 합칠 때 탄생한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뚫고, 작은 용기가 모여 초인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안양 새마을교통봉사대031-444-5600 / 031-388-0114)
샘터 2001.3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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