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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권 앞세울 자격있나

강산21 2005. 11. 6. 20:19

미국, 인권 앞세울 자격 있나

[한겨레 사설 2005-11-04 19:57]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11 동시테러 이후 국외에서 운영 중인 테러 용의자 비밀수용소가 다시 국제사회의 관심이 되고 있다. 최근 ‘동유럽 등 8개 나라에 100여명이 수감돼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유럽연합과 국제적십자사 등이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중앙정보국이 운영하는 국외 수용소는 존재 자체가 극비사항이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비밀수용소의 실체와 법적 근거, 수감자에 대한 가혹행위 등을 밝히라는 인권단체들의 요구를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정책으로 줄곧 무시해 왔다. 이들 수용소는 법적 절차 없는 구금과 심문이 불가능한 미국 국내법을 피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애초부터 불법 구금을 전제로 한 것이니, 수용소를 묵인한 나라들도 쉬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힘의 논리로 ‘반인권 시설’을 만만한 나라에 수출하고, 이들을 불법 행위의 공범으로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큰 문제는 수용소의 인권유린과 고문이다. 대부분 이슬람 사람인 수감자들은 어떤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몇 달에서 몇 해씩 불법 감금된다. 테러 용의자란 이유로 제네바 협약이 정한 전쟁포로 대우도 받지 못한다. 부시 행정부는 수감자에 대해 △20시간 연속 조사 △종교적인 배려 금지 △옷가지 제거 △군견을 이용한 공포 조성 등을 ‘고도의 심문기술’이란 이름으로 승인한 바 있다. 오죽하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수용소의 가혹행위는) 미국의 도덕적 가치의 심각한 훼손”이라고 한탄했겠는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강제수용소 얘기를 듣고 “왜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에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미국의 안보와 이익에 필요한 경우에만 그러는 건 아닌지 되묻는다. 국외 비밀수용소는 국제사회의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