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청와대가 짜놓은 시나리오, '10.26 그 이후'

강산21 2005. 10. 25. 15:06
청와대가 짜놓은 시나리오, ‘10·26 그 이후’
지도부 사퇴후 조기전대…차기경선 천정배·유시민·강금실 등 가세
입력 :2005-10-25 10:27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경향신문이 이달 초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명 중 1명은 ‘열린우리당에 마땅한 대통령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대선이 2년 이상 남은 시점이지만 정부·여당이 마냥 손을 놓을 수 없는 상황. 비록 난감하지만 그다지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상당 기간 지속돼온 현상으로 여권 일부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있었다.

여권의 비밀문건 ‘정치지형의 변화와 국정운영’은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지도부와의 면담(회담) 등을 통해 여야지도부와 연쇄접촉을 이어가며 체제정비와 기반조성을 위한 초당파적 이슈로 자연스럽게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미 노 대통령은 연정론·선거구제 개편 등 ‘초당파적 이슈’로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강정구 교수 사건이 국가보안법, 국가정체성 논쟁까지 확산되며 청와대가 전례 없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띄운 승부수에 여권이 맞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인권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국민적 동의를 끌어낼 수 있고, 차제에 분산됐던 여권의 역량을 결집해 차기 대권창출의 기반을 삼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차기 대권창출을 위한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현재 여당의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정동영 통일부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경쟁력은 야당후보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게다가 좀처럼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으로는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어떤 카드들이 제시될 수 있을까.

국민 3분의 1 “여당엔 대통령감 없다”

‘여당에 대통령감은 누구인가.’ 여당후보들만을 놓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 장관은 24.8%로 선두를 차지했으며 김 장관(9.9%)과 이 총리(9.5%)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1.6%에 달했고, ‘대통령감이 없다’는 대답이 34.2%로 1위를 차지했다. 권역별로는 대구·경북(40.8%), 서울(39.2%), 부산·울산·경남(36.2%)이 부정적이었다.

반면 ‘청계천’이라는 대박으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37.3%의 지지를 받아 한나라당 최고의 대통령감으로 꼽혔다. 박근혜 대표가 27.4%로 10%p이상 뒤처졌고,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5.2%에 그쳤다. ‘대통령감이 없다’는 답변은 15.8%, ‘잘 모르겠다’는 14.2%에 불과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 시장(44.9%)을 박 대표(38.9%)보다 선호했다.

여권의 1위 대권후보보다 ‘여당엔 대통령감이 없다’는 응답이 10%p가량 많은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선두인 정 장관은 전체 순위에서 9.7%를 기록해 4위에 턱걸이했다. 게다가 현재 무소속인 고건 전 총리와 한나라당 대권후보를 조합한 3자 가상대결에서도 여권후보들이 모두 완패했다는 점은 열린우리당에게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짐짓 여유 있는 표정을 보이고 있는 여권이지만 이번 조사는 단순한 지지율이 아닌 ‘대통령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각된 대권후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후보를 빨리 물색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더 효율적일까.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대응 부재 반성

청와대는 열린우리당을 ‘소용돌이가 가능한 정당’으로 보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탄핵이라는 극적 사건을 통해 민주화세대라는 ‘외부세력’에 의해 사회적으로 정치적 소용돌이를 형성하며 과반정당으로 급성장했지만 역으로 보면 그만큼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정당의 이 취약한 사회적 기반은 바로 열린우리당 대권주자들의 한계로 이어진다. 사회적 기반이 공고한 정상적 정당이라면 대권주자들은 당내기반이 강하면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민주적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고, 사회적 힘의 동원능력을 겸비한 후보를 부상시켜야 한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지지세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동원능력이 현저하게 낮고, 당의 조직기반이 매우 허약한 상태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외부적 힘을 동원해서 소용돌이 정치로 등장시킬 수 있는 사회적 힘과 일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예측하거나 찾기 힘든 열린우리당의 내부 사정이 있다. 재야 및 시민운동의 힘은 이미 동원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노 대통령을 청와대로 이끈 안티조선·노사모 등의 모델도 이미 ‘소진된 사례’로 꼽힌다.

당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의 사회적 기반을 뿌리내릴 수 있는 정권재창출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지배적 헤게모니의 새로운 저항과 필연적으로 대면하게 되지만 당의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단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대응을 진두지휘할 통제센터(리더십집단) 형성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 열린우리당이 갖추지 못한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조기전대와 ‘축제 경선’… 변종 소용돌이 필요

청와대는 친노 직계, DY계, GT계, 개혁당, 안개모 등 5개의 의견그룹이 존재하는 열린우리당의 현실적 한계와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에 대해 일찌감치 진단을 내린 상태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넓어 진보진영에서도 보수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점은 ‘최고의 권위’에 도전하는 집권여당 내의 소용돌이 정치를 동원하는 힘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기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가 가급적 소용돌이를 허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결국 소용돌이를 허용할 수 있는, 그래서 사회적 기반이 약한 열린우리당은 다시 역으로 또 다른 형태의 소용돌이를 통해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2000년 안티조선으로 상징되는 외부의 힘(노무현 후보)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의 ‘변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청와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부의 힘’을 ‘내부의 힘’으로 승화하는 방법이다. 집권여당 내의 소용돌이를 청와대가 주도하는 것이다. 조기 레임덕을 방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차기 대권을 창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청와대는 조기전당대회와 경선을 축제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의 DY·GT에 이어 이해찬 총리와 천정배 법무부장관, 한명숙 의원, 김혁규 의원과 유시민 의원까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원외 인사로는 박원순 변호사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부각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라는 보수진영의 최강의 카드에 맞설 필승카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축제를 통해 분위기 반전 끌어낸다

이중 이 총리는 스스로 킹메이커의 역할로 한정하고 있어 직접 대권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아 보인다. 매니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유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에 이어 ‘흥행카드’로 활용가치가 대단히 높은 반면 사실상 ‘차차기’로 분류된다. 한 의원은 자칫 조성될 수 있는 날카로운 대립을 화합으로 이끌 부드러운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 3인방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강정구 교수사건과 관련해 검찰개혁의 기수로 떠오른 천 장관은 침묵할 때와 나서야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로 핵심지지층 사이에서는 노무현·유시민과 더불어 ‘믿을만한 인물’로 꼽힌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텃밭인 호남권과 더불어 ‘경남대통령’을 불릴 정도로 영남권에서 인지도가 높아 경쟁력은 충분하다. DY·GT와 더불어 이들 4인은 실제 경선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이다.

원외인사로는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시민사회운동을 몇 단계 끌어올린 박 변호사가 가장 큰 잠재력을 보인다. 제도권정치의 지지가 약하다는 점과 ‘아직까지 나설 뜻이 없다’는 개인적 의지가 문제라면 문제. ‘강효실’이라는 애칭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강 전 장관도 ‘컨텐츠 부족’이라는 치명적 한계를 지닌 박 대표에 비교되는 탄탄한 컨텐츠와 논리가 눈에 띈다. 대통령까지는 몰라도 ‘부통령’으로는 최적임자라는 중평.

열린우리당도 경선 최다득표자를 대권후보로 선정하던 기존 방식에서 1위 득표자가 50%미만을 득표했을 때 차점자와 다시 결선투표에 벌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후보자 간의 합종연횡이 가능해 분위기를 한층 가열시킬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전례에서 보듯이 탄력을 받아 대선까지 휩쓴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다만 잡음 많은 과당경쟁이 아닌 ‘축제’로 진행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지도부사퇴 후 조기 전당대회…구체적 시나리오까지 등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10·26 재선거를 앞둔 청와대와 여권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4개 선거구 중 한곳이라도 건지면 다행이겠지만 이미 지난 4·30재선거에서 23대0이라는 참패를 기록한 전력이 있는지라 새삼 충격을 받을 것도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분위기 쇄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문희상 당의장은 이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10·26재선거 참패가 현실화될 경우 지난 4·30 참패와 더불어 여당 지도부의 책임론이 불가피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재선거 직후 지도부가 총사퇴하며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해 위기를 쇄신하고, 지지율 반전을 노린다는 것이다. 재선거 패배가 선명한 개혁성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셈이다.

이미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재선거 참패 이후 제기될 지도부 책임론과 관련해 비 당권파로 분류되는 장영달, 한명숙, 유시민 의원이 상임중앙위원직을 일괄 사퇴해 조기 전당대회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사실 이 시나리오는 지난 초여름 노 대통령의 탈당가능성과 더불어 같이 거론돼온 카드였다. 당시에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치부됐지만 결국 참패가 현실화되자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핵심관계자는 “조기 전당대회는 당의 소관”이라며 “청와대가 나설 문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재선거 참패가 현실화될 경우 분위기 반전을 위한 당차원의 움직임은 있지 않겠느냐”며 “조기전당대회 개최와 축제분위기를 만들자는 여권 일각의 제안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 지도부 개편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차기대권을 창출할 통제센터가 부실하면 이를 개편하면 된다. 정황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최근 8·31 부동산대책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고, 유사 이래 최고라는 증시 활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회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참여정부 출범 이래 지속된 수세정국을 단칼에 역전시켜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여권의 기대대로 ‘제2의 노풍(盧風)’이 불 수 있을까. 청와대와 여권의 움직임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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