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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계미년 소록도!

강산21 2003. 1. 12. 23:32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아! 계미년소록도!

햇수로 8년째 찾아가는소록도이지만 이번 방문은 참 어렵게 가는 것 같다. 오갈 곳 없는 장애인들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다가 공사가 중간에 스톱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소록도를 방문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부천에서 살다가 화성시로 이사를 오니까 행동반경이 무척 좁아졌다. 함께 봉사를 가려고 해도차량문제가 우선적으로 걸림돌이 된다. 가까운 지역에서 봉사에 동참할 사람들이 있다면 쉬우련만, 마음은 함께하는 분들은 많은데 행동으로 옮기는분들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래서 '나눔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하는가 보다.

이번에는 우리 가족만소록도를 방문하게 된다. 1년에 4번씩 방문하는 소록도, 소록도에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그곳에는 우리들의 부모님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싶다. 연고자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분들. 세상에서 문둥이라고 돌팔매질을 당하며 살아왔던 수많은 세월을 오직 하늘만 바라보며 욕심도 없이살아온 소박한 사람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눌 수 없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 예수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소록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잘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우리들의 부모님이라고 부르기를주저하지 않는다.

소록도를 방문하려고 해도적지 않는 경비가 들어간다. 새해 첫날이라 어르신들께 떡국을 끓여서 대접해 온 것이 벌써 몇 해 째다. 어르신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드릴감사헌금도 준비해 가야 한다. 특별한 수입이 없는 그분들은 외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예배당에 헌금한 것을 당회에서 절약하여 사용하고 나머지는골고루 나눠서 과일이라도 사 드시게 한다. 그러면 그분들은 그 돈을 모아놨다가 당신들이 하늘나라에 가실 때 장사치를 사람들을 위해 국수 값이라도사용하게 하신다. 그래서 각 마을에 있는 예배당은 마을의 리사무소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기에 힘들더라도감사헌금도 챙겨 간다.

함께 방문하지 못해미안하다며 감사헌금에 보태라는 박정희 집사님의 소중한 마음이 더해진다. 아내는 부족한 살림을 쪼개고 쪼개어 떡국을 사고, 갈비를 사고, 당면도산다. 김치도 두 가지, 과일도 두 가지, 바라만 봐도 풍족하다. 아내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새벽에 출발을 하자고 한다. 그런데 평상시습관이 무서운가 보다. 그렇게 하자고 해 놓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예배 끝나면 바로 출발하자고 한다. 부족한 남편이지만 나누는 일에무슨 의견을 내면 힘들더라도 함께해 주는 아내가 고맙다. 이사 온 후 처음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 축복의 말씀을 많이 듣고 목사님께 특별기도까지 받고 차에 오른다. 달리는 차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 불빛이 우리의 가는 길을 축복해 주는 것 같다. 햄스터를 집에 놔두면 죽을 위험이있다며 아내와 아들은 나의 반대를 무시하고 차에 태운다. 아들은 금방 햄스터와 친구 되어 있다.

이제 한해가 시작되었으니아내의 나이도 마흔 일곱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피곤하다는 말을 안 했는데 첫날부터 피곤하다고 한다. 힘들면 쉬엄쉬엄 가자고 해 본다. 한참을가다가 휴게소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인다. 다시 일어나 차를 달리고, 달리다 다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을 잔다. 평상시 같으면 잠 한숨 안자고기쁨조 노릇을 잘할텐데 나도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 잠시라도 차를 세우면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잔다. 잠자지 말라는 아내의 핀잔도 들리지않는다. 급기야 아내가 히든카드를 꺼낸다. 집에서 자고 새벽에 가자니까 미리 출발했다고 바가지를 긁는다. 말다툼이 벌어지고 잠이 다 깼다.그러다 보니 소록도가 보이는 녹동항에 도착해 있다. 평소 내가 사용하던 방법을 이번에는 아내가 사용해 버렸다. 아무튼 이번 기쁨조 역할은빵점이다. 나도 이젠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가 보다.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시켜 놓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온 아내, 섬기는 모습이 참감사하다.

아들이 소록도 행 배를보고 빨리 가자고 재촉이다. 녀석이 5살 때부터 소록도를 다녔으니 이번이 녀석에겐 7년째 소록도 방문이다. 덕분에 녀석은 장애인이나 외모가 보기좋지 않는 사람을 만나도 자연스럽다.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소록도 행 배를탄다. 배를 타는 요금도 올랐다. 허긴 모든 물가가 올라가는데 여기라고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이제는 정다운 이웃처럼 가까워진 선원 총각의눈인사가 정겹다. "올핸 돈 많이 벌어서 장가가세요~ " "네~ 감사합니다. 올해도 소록도 봉사 오시는군요..." 하면서 요금을 깎아 준다.소록도에 도착하여 검문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봉사자라는 명찰을 받아 차에 걸고 동생리를 향해 출발.

계미년 첫날 소록도는조용하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동생리에 도착해도 밥하는 냄새도 나지 않는다. 겨울이면 더 쓸쓸한 소록도이다. 동성교회에도착하니 장로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차 소리를 듣고 오셨는가 보다. 차에서 짐을 내린다. 마침 원집사님도 오셨다. 차에 가득 실린 물품들을 보고놀라는 장로님과 집사님. 부엌을 새로 고쳤다고 자랑하시는 장로님의 안내를 받고 부엌에 들어가 보니, 봉사자들이 편하게 부엌일을 할 수 있도록새롭게 고치셨단다. 어느 한센병자가 소천하시며 당신이 평생 모은 돈 얼마를 기부하면서 부엌을 고치게 했단다. 말만 들어도 감동이다.

소록도는 될 수 있으면예배를 낮에 드린다. 몸이 불편하기에 이동 중 다칠까봐 낮 시간에 드린다고 한다. 마침 수요일이라 수요예배를 드린다. 한분, 한분... 낯익은어르신들이 예배당에 모인다. 가운을 입고 성가대 석에 앉아 있는 성가대, 장로님 석에는 다섯 분의 장로님들이 앉아 계신다. 1번지 교회에 시무하시는 정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신다. 소록도는 1번지와 2번지로 나뉘는데 1번지는 임직원들이 사는 곳이고, 2번지는 한센병자들이 사는번지다. 정목사님은 올해도 기도를 많이 하는 소록도 성도들이 되자고 강조를 하신다.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신다. 준비한 감사헌금도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정다운 해후를 나눈다. 반갑게 다가와 포옹하시는 할머님, 이젠 할머님들이 더 포옹하시는 걸좋아하신다. 처음 내가 포옹해 드렸을 때 눈물을 흘리시던 순간이 떠오른다. 벽이 없으면 누구라도 포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드러진조막손으로 내 조막손을 만지며 좋아하시는 어르신들, 저쪽에서는 아내와 아들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어르신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밖으로 나와 바다를 본다. 바다를 마냥 바라보는 내 모습이 누구를 닮았다. 바람에 날리는 해송가지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아내는 어르신들께 대접할갈비찜을 하려고 갈비를 물에 담가 놓고 장로님과 함께 녹동항에 시장을 보러 나갔다. 아내 혼자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아내에게 몹쓸 짓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많이 미안하다 아내에게... 녹동항에서 장을 잔뜩 봐 온다. 부엌에 조리대가 없다며 가구점에 들려서 커다란 조리대까지샀는가 보다. 아무튼 부엌살림이 풍족하다. 이젠 누구든지 부엌에서 봉사하더라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내와 준열이가 햄스터랑놀더니 준열이는 소록도 주민과 함께 마른 잔디 잎을 모으러 중앙공원으로 간다. 돌아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오는 걸 보니 아마 다른 집에 놀러갔는가 보다. 소록도를 7년째 방문하는 아들은 소록도에서는 자기집 안방처럼 생각하는가 보다. 신나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좋다. 나중에 들어보니소록도 주민 집에 가서 라면 끓여서 할머님이랑 함께 먹었단다. 대견하다. 아내는 부엌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2003년에 해야 할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다. 매월 정해진 봉사 외에 각종 행사가 있다. 이젠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뜻이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바람이 엄청 불고 있다.바다에는 하얀 파도가 꽃을 피웠다. 바람에 문들이 들썩거리고 방으로는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아내는 녹동항에서 매생이를 사와서 굴과 함께 국을끓여왔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푸짐하다. 장로님 댁에서 밥을 담아와 세식구가 저녁을 먹는다. 저녁에 손님들이 오셨다. 대구 명일교회 학생들을인솔하고 전도사님이 오셨다. 개인적으로 가정을 방문했는데 잘 곳이 없어서 왔단다. 옆방에서 자게 하고 저녁에 철야기도나 하자고 한다. 아내 혼자해야 할 것을 알고 지원병을 보내주신 여호와이레.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아내는 푹 쉬라며 아들을 데리고 예배당으로 간다. 예배당에는 명일교회학생부가 성경을 읽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서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조금하던 준열이는 심심한가 보다. 십계명을 다 외우고 자라고 했더니 금새외워버린다. 곁에서 자게 한 후 철야기도에 들어간다. 잠을 자던 녀석이 일어나더니 소리지르지 말고 기도하란다. 녀석의 보청기를 빼주니 편하게잠을 잔다.

자정이 넘으니 어김없이기도하러 올라오시는 어르신들. 저들은 누구를 위하여 저렇게 기도를 하고 있을까. 소록도는 새벽 4시에 새벽예배가 시작된다. 성가대의 찬송이새벽하늘에 퍼지고 있다. 환갑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성가대에 앉아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들이 부르는 찬송은 은혜다. 새벽예배가 끝나자 잠시 눈을붙인다. 아내는 부엌에서 혼자 음식을 만들고 있다. 8시부터 학생들을 깨워 씻게 한 후 식사 봉사 준비를 한다. 오후부터 며칠동안 눈과 비가내리고 기온이 급강하한다는 뉴스를 듣고 오늘 소록도를 떠나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어르신들께 이젠 현충일 때 오겠노라고 인사를 드린다.

해마다 신정 때 찾아와떡국을 끓여 대접해 주는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며 눈물을 훔치시는 할머님. 육지에서 살고있는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부모가 한센병자라면 그 가정이깨질까봐 날마다 기도하면서도, 자식에게는 부모가 없다고 말하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진다. 어느 사람이라고 사연이 없겠는가, 그러나한센병자들만큼 한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방문할 때마다 줄어드는 어르신들. 이분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찾아뵙는 것이 우리들의 할일이라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시는 교역자 님들이 더 많이 소록도를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록도를 방문하여 그분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가면 말씀을 전하실 때도 더 은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꼭소록도가 아니라도 한센병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오후에 서둘러 소록도를떠나오는데 바람이 심상치 않다. 하늘은 맑은데 바닷바람이 심상치 않음은 무슨 기상 변화가 생길 징조다. 배에 올라 바라보는 소록도는 어느 누구나오라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주님의 모습을 닮았다. 

2003. 1.3   자오쉼터에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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