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꿩고기 할아버지께서는 심한 폐병을 앓았다. 쌀이 귀하고 고구마가 한 끼를 대신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뭍에 나가려면뱃길로 서너 시간을 가야만 했던지라 병원은커녕 변변한 약조차 쓸 수가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날로 초췌해져가는 할아버지 때문에 눈물이마를 날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며칠 전 어느 날이었다. 밥알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 분이 갑자기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였다.할머니와 식구들은 참으로 난감하였다. 그때는 꿩을 잡을 수 있는 총포를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단지, 극약을 주입한 노란 콩을길목에 놓아두고 꿩이 그 콩을 주워 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꿩을 잡으려면 며칠이 걸릴지, 아니면 내내 못 잡을 수도 있었다. 도회지처럼 사냥꾼이 있었다면 수소문해서 꿩고기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저 한숨만 쉬어야 했다. 극약이 주입된 콩을 숲 속 길목에놓아두었지만 며칠 동안 허탕만 쳤다. 그러던 중 할머니께서는 식구들을 조용히 불러 모아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 시절 폐병에는쥐고기가 좋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할아버지는 절대 쥐고기만은 먹지 못한다고 해서 그 요법만은 쓰지 못했다. 할머니의 제안은이참에 쥐고기를 꿩고기라고 속여서 할아버지가 드시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쥐고기의 맛이 단백하기에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하셨다.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쥐고기를 꿩고기라 생각하며 맛나게 드셨다. 곁에서 지켜보던 할머니는 몰래몰래 눈물을훔치셨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원하던 마지막 음식일 수도 있겠다는 안타까움과,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서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할아버지께서는 새벽녘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의 짐작처럼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드신 음식이 쥐고기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일로 인해서 가슴 속에 깊은 못 같은 한을 박고 사셨다. 내가 열 살무렵부터 할머니는 막걸리와 담배를 배우셨다. 어쩌면 눈물뿐인 허전한 가슴을 술과 담배로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장가를 들어 꿋꿋하게 살아가는자식들도 그 자리를 메워주지 못했다. 별난 억척 때문에 조금씩 늘어나는 논밭도 그 서늘한 가슴을 데워주지는 못했다. 그리움 끝에마시는 막걸리와 빈 가슴을 쓸어주는 담배만이 할머니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오는 눈물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도 막걸리와 담배였다.그래서인지 밭일 하다가 컬컬한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할머니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고된 일 뒤에 휴식처럼 담배 한 대 피우시던할머니의 쓸쓸한 모습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막걸리와 담배의 양이 조금씩 늘어만가던 할머니께서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막걸리한 잔이라도 드신 날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밭에서 김을 매다 호미에 묻은 흙을 털다가, 장독을 닦다 말고 먼 산을쳐다보면서도 할머니의 혼잣말은 시도 때도 없이 늘어만 갔다.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두고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망령이 들었다고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쑥덕거리고 손가락질을 하여도 나는 절대 아니라고 믿었다. 식구들을 못 알아본다거나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지도 않았고, 할머니의 대화 상대는 줄곧 돌아가신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낱낱이해주는가 하면 힘들 때는 뼈 없는 욕까지 늘어놓으셨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불현듯 5리나 떨어져 있는 할아버지 묘소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한참 있다가 돌아온 할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 설날 무렵이었다. 이른 새벽에 할머니께서나를 깨우더니 부랴부랴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어젯밤 꿈에 니 할아버지가 뵈더구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자꾸만 아침 일찍 산 밭에나가보라는구나." "에이, 할머니는 성가시게 맨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찾고 그래?" 산 밑에 있는 돌밭까지 가는 할머니의걸음은 무척 빨랐다. 어디를 가든지 늘 할머니를 따르던 버릇 때문에 귀찮은 투정도 잠시였다. 산 밭까지 가는 총총걸음 내내 할머니는 할아버지를나무라셨다. 왜 자꾸 꿈에 나타나서 성가시게 하느냐고 빈정거리셨다. 그렇게라도 찾아주는 할아버지를 못내 반기셨을 속내를 감추면서말이다. 아직 잠이 덜깬 상태로 잔설을 털어가며 산 밭에 겨우 도착했다. 그리고 어디인지 모르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할머니를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영문을 모른 나는 어서 집에 돌아가자고 막 보채려는 참이었다. 그때 할머니께서 저만치 작은 소나무밑동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거봐라, 이놈의 영감탱이가 거짓뿌랭이는 아니구만. 아야 얼른 저것좀 주워와라." 키낮은소나무 밑동에는 꿩 두 마리가 죽어있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할아버지가꿈속에서 할머니를 꿩이 있는 자리로 인도했다고 생각했다. 행여나 누가 볼까봐 꿩 한 마리씩을 감추고 부랴부랴 집으로 도망치듯내려왔다. 이웃 사람들은 극약이 주입된 콩을 꿩이 주워 먹고 그 자리에서 죽었겠지 하였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그 소문이동네에 자자하게 퍼졌지만 꿩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설날 아침에는 단백하고 쫄깃쫄깃한 꿩 떡국이 밥상에 올라왔다.그러나 밥상머리에 앉은 우리 식구들은 할머니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제대로 밥술을 들지 못했다. "이 영감탱이가 죽어서도 꿩고기때문에 한이 되었나벼. 아이구 짠해서 어짰으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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