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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들은 지금 변신의 계절

강산21 2005. 6. 24. 12:22
계파들은 지금 변신의 계절
[한겨레21 2005-05-20 18:12]

[한겨레] 열린우리당 참정연·국정연·국참연대 생존의 몸부림…새 조직 창설과 기존 조직 정비에 부산한 나날들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변해야 산다.’
4·2 전당대회와 4·30 재보선에 올인했던 열린우리당의 3대 계파 모임이 요즘 부여잡은 화두는 변신이다. 2004년 4월 총선 이후 줄곧 ‘개혁’을 기치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중심의 ‘실용 블록’과 혈투를 벌였던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와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 이들에 맞서 사이비 개혁주의 척결을 외치며 등장한 국민참여연대(국참연대). 이해관계와 지향점은 서로 다르지만 고민은 요즘 한 길로 통한다. 4·2 전당대회에 대한 조직적 반성과 새로운 생존전략 수립이다.

 

참정연, 자발적 해체 결의

반성과 변신의 맨 앞줄에는 참여정치연구회가 있다. 유시민·유기홍 의원 등 개혁당 그룹과 김두관 장관 중심의 자치분권연대 활동가들의 연합체인 참정연 회원 300여명은 지난 5월7일 충남 연기군에 모여 ‘자발적 해체’를 결의했다. 2004년 6월9일 창립총회 이후 당 상임중앙위원회 등을 근거지로 실용 블록과 선명한 대립각을 형성하며 기간당원제, 국가보안법 폐지, 친유시민·반유시민 논쟁 등 굵직한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했던 참정연은 왜 자발적 해체를 선택했을까.

 

참정연의 핵심 주역들은 입을 모은다. ‘기간당원제와 상향식 공천’이라는 조직 노선에 동의해 급조된 사단법인 참정연이 더 이상 변화된 현실을 주도할 수 없다고. 유기홍 의원은 “대중 회원의 참여조직이 아닌 개혁당과 자치분권연대 인사를 중심으로 이사회 조직을 만들면서 상향식 의사결정이 어려운 계서조직, 조직 노선은 확실하나 정책 노선은 취약한 구조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른바 ‘탄핵 역풍’을 타고 원내 과반수 정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실용주의 노선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 노선 중심으로 모였지만 4·2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한계점이 드러났고,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7, 8일 열린 참정연 총회에서는 통렬한 자기반성이 쏟아졌다. 반성은 4가지로 요약된다. △대중회원의 참여가 없는 닫힌 조직 △명망가 중심의 상임이사제 채택에 따른 상향식 민주주의 실종 △김두관·김원웅·유시민 등 3명 당 의장 후보가 난립·경쟁한 데 따른 전당대회 전략 부재 △구심점 없이 구성원의 개인적 판단에 의존하는 조직 문화.

 

참정연이 선택한 변신 코드는 ‘상향식 민주주의가 보장된 대중조직’이다. 서울·경기 등 전국 14개 시도에서 28개 지역조직을 만들고, 기존 사단법인 참정연은 새 조직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참정연 새조직 준비위원회’가 변신 작업을 총괄 지휘한다. 준비위원장인 최교진 상임이사를 제외한 유시민·이광철·김두관 등 나머지 상임이사들은 총사퇴했다. 참정연은 특히 새 조직을 당과 연계성이 확실한 상향식 대중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정회원 자격을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한정하고, 광역별 국회의원 지역구 수의 10배 이상으로 정회원을 확보한 곳만 지역조직으로 인정하는 규약 초안도 마련했다. 5월17일 새 조직 준비위 첫 전국대회 개최, 6월 말까지 2천명의 정회원 확보가 새 참정연의 당면 목표다.

 

5월11일 부산에서 15명의 핵심 활동가가 새조직 준비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인다. 참정연의 핵심 관계자는 “외연 확대를 거쳐 실질적인 대중 정치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사실상 헤쳐모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준비위 모임에서 국회의원 지역구의 10배수에 해당하는 정회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등 변신 과정에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국정연, 젊은 조직으로 환생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중심의 재야파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이사장 장영달 의원)도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임채정·김태홍·문학진·유선호·이호웅 등 운동권 출신 재야파 의원 40여명이 가입한 국정연의 몸집은 어느 계파도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원내대표 경선과 4·2 전당대회 등을 거치면서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는 의원 중심의 폐쇄적 조직문화, 회원의 노령화와 인물난, 대중성 부재 등 문제점이 노출됐다. 국정연 대변인인 정봉주 의원은 “이른바 재야 엘리트 중심인 국정연은 선후배의 서열이 너무 뚜렷해 조직의 활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고, 대중성 확보에도 장애가 있다”고 말했다.

 

국정연이 부여잡은 변신 코드는 ‘젊고 대중적인 조직’이다. 내부적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자가 아닌 인사들에게 문호 개방, 온라인 홍보대책 마련, 평균 50살 안팎으로 추정되는 회원 연령을 30대 수준으로 낮추는 ‘회춘’ 대책, 자발적인 김근태 장관 지지모임 네트워크화 등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국정연은 특히 참정연 조직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장기적인 연대 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그러나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국정연의 한 핵심 관계자는 “엘리트 운동권 중심의 국정연은 문호 개방과 젊은 조직화 계획을 추진할 기본 시스템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며 “젊은 유권자들은 끊임없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지만, 아직 인터넷 홈페이지도 없는 오프라인 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참정연과 연대를 통한 생존 길 모색도 걸림돌 투성이다. 국정연 소속 우원식·정봉주 의원은 지난 7일 열린 참정연 총회에 참석해 “참정연은 함께 갈 수 있는 동지” “재야파와 참정연은 DNA가 일치한다”며 연대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전당대회 때 유시민 의원이 김근태 장관계와 연대를 제안했고, 국정연과 참정연이 상호 결점을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낙관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정봉주 의원은 “당장 연대가 추진되는 건 아니지만, 두 조직의 연대는 환상적인 만남”이라며 “실질적 연대가 가능한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참정연에는 국정연과의 연대에 대해 회의적 기류가 강하다. 참정연쪽의 한 핵심 의원은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국정연과 조직문화가 맞지 않고, 참정연은 앞으로 상당 기간 특정 대권주자와는 거리를 두며 개혁의 초심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쉽게 연대가 성사되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

 

‘세불리기에 혈안이 된 사이비 개혁주의자 척결’ ‘평당원에 의한 당권 접수’를 외치며 1월16일 출범한 장외 친노세력의 대표조직 국민참여연대 역시 변신 몸짓이 뜨겁다. 국참연 핵심 지도부 250명은 이미 지난 4월16일 총사퇴했고, 임시집행부로 조직강화특위(위원장 선두·인터넷 아이디)를 구성했다.

 

국참연, 정체성 회복을 향해


이들의 고민도 다른 계파 모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 회원의 당직 후보 출마, 명계남 의장의 당권 도전 시사 등으로 한껏 기세를 올렸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출범 직후부터 ‘정동영 통일부 장관 대통령 만들기 외곽조직’이라는 의혹에 시달렸다. 전당대회에서 국참연이 지지한 염동연·한명숙 두 후보가 상임중앙위원회에 선출됐지만, 국참연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더 커졌다. 현역 의원의 대표자를 당연직으로 3인의 공동의장단에 포함시키고, 구당권파인 염동연 후보를 당 의장으로 지지하면서 국참연이 내건 정당개혁, 상향식 민주주의, 인터넷 아이디 평등주의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국참연의 변신 코드는 ‘아이디 평등주의와 정체성 회복’이다. 이를 위해 △원내위원장, 정책위원장, 평회원의 3인 공동의장제를 평회원 중심의 3인 공동의장제로 전환 △의장 임기 2년에서 1년으로 단축 △온라인투표권과 의결권, 집행부 참여권을 갖는 기간회원과 일반회원 이원화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한정했던 회원 요건도 삭제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상호(인터넷 필명 미키루크) 전 국참연 수석부의장은 “상향식, 수평적 민주주의라는 조직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2006년 지방선거에 대비해 조직을 재정비하는 게 변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참연 역시 적지 않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게 새 리더십 구축이다. 회원 일각에서 대중성과 카리스마를 갖춘 명계남 전 의장의 ‘2선 후퇴론’이 불거졌고, 명 전 의장도 본업인 영화 제작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상호 전 수석부의장은 열린우리당 청년위원장을 맡았고,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국참연이 참정연을 ‘사이비 개혁주의자’로 비판하며 분리를 선언한 뒤 국참연과 결별했다. 국참연의 핵심 관계자는 “국참연의 변신과 미래는 새 리더십 구축에 달렸는데, 확실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뒤흔들었던 3대 계파는 생존을 위한 변신의 계절,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