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따뜻한시선

[시선] 어거지 쓰는 아빠

강산21 2005. 4. 26. 14:34
어거지 쓰는 아빠

<노엄 촘스키와의 대화 권력과 테러>(양철북 펴냄)라는 책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저널'이 중동지역의 '부유한 이슬람인'(은행가, 변호사, 미국 다국적기업의 지점장 등 미국 체제 안에 있는 사람들로 오사마 빈 라덴을 증오하는 측)의 미국에 대한 견해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미국의 정책에 반감을 품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이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개발을 반대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무력점령에 대한 미국의 일방지원도 반대하고, 미국의 이라크 제재에도 반대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이슬람인들은 미국이 필요에 따라 독재국가에 대해서도 지원을 하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지원을 중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재하고 공격하려는 방식을 택하면서도 그 지역 국민들이 나쁜 문화를 갖고 있다거나 세계화에서 소외되고 있기에 미국의 자유와 위대성으로는 참을 수 없어서 개입한다는 식의 나름대로 정교한 이론을 펼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에 미국 체제의 중심에 존재하면서도 미국의 정책에 반감을 갖게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왜 그들은 우리를 미워할까? 이렇게 잘해 주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방법만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미국체제 안에서 지내고 있는 그들이라도 말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문득 아이들과 논쟁하고 다투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난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와서는 숙제며 예습이며 복습을 먼저 하고 남는 시간에 여유롭게 노는 것을 바라고 아이들에게 주지시키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무 학원도 다니지 않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하교시 만나는 친구들과 놀고와서 자신들의 할 일을 하는 것이 편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할 일을 마치고 나가면 친구들은 학원에 가고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누구든 가족회의를 하자는 소집권이 있는데 아이들이 내 강압에 못이겨 며칠 하다가 힘들면 불쑥불쑥 가족회의를 소집하려고 한다. 난 사실 회의를 하게되면 수에서 밀리는 입장이라 안하고 싶은데 말이다. 말로 설명하다가 내 뜻대로 안되면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던 나로서는 그놈의 회의가 무척 못마땅하기에 싫은데도 정해진 룰이기에 할 수 없이 참여하고 나면 난 어거지만 쓰는 아빠라는 비판을 들어야만 한다.

그래도 난 아이들에게 참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 생각에 변함이 없고 아이들도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요구를 하지 말라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 그럴 때 나는 미국이 할 수 있는 생각인 "왜 아이들은 내 말을 안들을까? 이렇게 잘해 주는데."를 떠올리게 된다. 이상한 오버랩인지 몰라도 가만 앉아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토록 별로로 생각하는 미국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진다.

미국을 좋아하던지 내가 생각을 바꾸던지 둘 중의 하나는 아무래도 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결론이 너무 뻔히 보이니 진퇴양난이다.

김성현 / 주간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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