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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보는 관점

강산21 2019. 12. 30. 10:57

SBS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의 특집 2부작 돈 나라 사람 나라제작을 위해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이 주저하지 않고 행복의 제1조건으로 꼽는 돈의 의미와 철학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국 30~50대 성인남녀 74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얼마면 가족, 친구와 절연할 수 있을까를 물었더니 10억 원 이상 50.8%, 5-10억 원 미만 7%, 1-5억 원 미만 3.6% 등으로 억대만 넘어가면 가족이고 친구고 간에 버릴 수 있다고 답한 것이다. 100명 중 1-2명은 1,000만 원 미만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답변까지. 10억 원만 주면 가족, 친구와 절연하겠다는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확실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묻는 항목에서는 로또 등 복권(32.3%), 부모의 유산(27.7%), 부동산 투자(22.3%) 등을 꼽았다. 답변은 소득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났다. 300만 원 이하의 소득자는 로또, 유산, 부동산 순으로 생각한 반면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유산, 부동산, 로또 순으로 생각했다. 평생직장을 다니며 알뜰하게 저축해도 아파트 한 채 장만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세태를 낳았음을 슬프게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의 돈이 있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20억 원(32.7%), 30억 원(28.6%), 10억 원(17.7%) 등이라고 답변했으며 소득이 높을수록 액수도 높아지는 추세였다. 문제는 53%의 사람들이 그 금액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필요는 하고, 갖고 싶기는 하고, 가급적 많아지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그 큰 돈을 만져보기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은 포기하지 않기에 복권을 매주 사는 것이다.

 

‘2017 복권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복권이 있어 좋다는 복권 종합평가 공감도는 74.5%2008년 이후 최고치 기록했다. 최근 1년간 복권 구입 경험에 대해 질문한 결과, 57.9%가 구입 경험 있다고 응답했다. 로또복권은 한 달에 한 번구입하는 사람이 21.7%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매주’(18.4%), ‘2주에 한 번’(14.7%) 순이다. 연금복권과 즉석복권은 ‘1년에 한 번구매자가 각각 27.6%, 24.8%로 가장 많은 비율을 보였다. 복권 구매비로는 로또복권과 연금복권 모두 구매자의 대부분이 1만 원 이하로 구매했는데, 1회 구매 시 평균 복권 구매 금액은 로또복권 8,694, 연금복권 7,609원이다. 2017년 온라인복권 판매액은 약 38000억 원으로 3년 전인 2014년보다 24.9%나 늘었다. 그러니까 매주 730억 원어치씩의 복권이 판매된 것이다.

 

넉넉지 않은 이들은 꿈이라도 꾸려는지 그렇게들 복권을 사면서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있는 이들의 돈질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니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커지고, 계층 간의 위화감도 따라서 커지며, 돈에 따라 사법부의 판결과 권력의 유무가 결정된다고들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돈은 사람에 앞서 행세하려 하는 속성을 갖는다. 국민이 힘겨운 살림살이로 고통 받는 때에는 더욱 돈의 행세가 가까이 느껴진다. “젊은 사람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돈이 전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갈수록 실감 나게 다가온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돈에 대한 관점을 제대로 갖지 않고 거기에 매달려 아웅다웅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물론 아니라고들 답하겠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해야 그나마도 복잡하고 험한 세상에서 중심 잃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일은 누구나 한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먹고 살고,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님을 잘 모시고, 노후대비를 하고,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재미있게 노는 게 목적이다. 그렇게 하려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만약 돈벌이가 되는 그 일이 즐겁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프로'라고 한다.”

 

유시민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말이다. 일상적인 삶을 사는 데는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모두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세상에 돈이 목적이라고 하면 얼마나 허망하고 슬픈 일인가. 수단인 그 돈을 벌면서 즐거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지 않을까. 돈은 수단이라는 분명한 사실만은 새겨두고 살아야 인간적인 삶이 되지 않겠나.

 

김성현 <노랑생각>(진인진)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