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최경영, 바다출판사, 2017. 97-107.
출입처 폐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옳았다
"과연 언론자유가 기자실에 있습니까? 유신시절, 5공시절은 기자실 전성시대였습니다. 그 기자실에 언론자유가 있었습니까? 통제와 유착과 부당한 이익만 있었을 뿐 아닙니까? 정말 기자실에 국민의 알권리가 있습니까? 알권리는 기자실의 관급정보 받아쓰기, 귀동냥에서 충족되는 게 아닙니다. 발로 뛰어서 기사를 써야 국민의 알권리가 충족되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했다 싶은 좋은 기사들 중에서 기자실에서 나온 기사는 없습니다. 기자실에서는 좋은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출입처 기자실은 경쟁의 필요성을 줄이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출입처 제도는 편견과 유착의 근원이 되고 기사를 획일화하는 백해무익한 제도입니다. 좋은 기사, 나만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출입처 바깥으로 나가서 발로 뛰고 시야를 넓히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기사를 써야 합니다.”
2007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강연한 내용 중 일부다. 위에 있는 어떤 단어 하나, 어떤 문장 하나 버릴 수 없어서 그대로 인용한다. 나는 이 모든 말에 동의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말들은 더욱 좋다.
“유신시절, 5공시절은 기자실 전성시대였습니다. 그 기자실에 언론자유가 있었습니까? 통제와 유착과 부당한 이익만 있었을 뿐 아닙니까?”
"알권리는 기자실의 관급정보 받아쓰기, 귀동냥에서 충족되는 게 아닙니다. 발로 뛰어서 기사를 써야 국민의 알권리가 충족되는 것 아닙니까?”
"기자실에서는 좋은 기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출입처 기자실은 경쟁의 필요성을 줄이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출입처 제도는 편견과 유착의 근원이 되고 기사를 획일화하는 백해무익한 제도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언론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언론은 수십 년 동안 정치·경제 권력을 통해 누린 부당이의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들이 본디부터 소유한 특권이라고 여겨왔다. 언론이 누려온 부당한 이익의 기저에는 '출입처'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그게 그들의 가장 핵심적인 특권이다. <조선일보>든 <한겨레>든, 인터넷 뉴라이트
언론사건 진보적 매체이건, 출입처에 들어가면 동맹을 맺고 동화가 된다.
(중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 절규에 가까운 말을 한 지 10년 넘게 지났다. 대통령도 못 바꾼 출입처 제도는 여전히 온존한다. 아니 그때보다 더 융성하다. 한국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여전히 출입처 시스템을 존중한다. 새로운 언론사나 1인 미디어들이 출입처 기자실에서 작업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기자실을 상시 또는 수시로 이용하고자 공무원들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하면, 자신들의 청사 건물인데도 출입처에 등록된 기존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에게 허락을 받아오라고 말한다. 관공서의 건물은 정부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국민 누구나 이 공간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꼭 공간의 제약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마치 태고시대 금줄처럼 안과 밖을 나누는 공간의 제약이자 차별의 상징이다. 출입처를 통해 언론사 기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일단 밥이 공짜다. 김영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여전히 공무원 한 사람을 붙잡고 우르르 밥을 먹으러 다닌다. 대개 공보실 직원이지만 가끔 부처의 실·국장들이 교대로 나와 밥을 사며 부처 현안을 설명하기도 한다. 밥값을 따로 내겠다는 기자는 아직도 희귀하다. 밥값을 따로 내겠다는 말은 기존의 관행에 저항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양심껏 살아보려는 기자들도 출입처 시스템에서는 밥값을 내기 힘들다. 무엇보다 밥값을 내게 되면 출입처 공무원들이 그를 달리 볼 것이고, 이내 외톨이가 되고 차차 주요한 정보에서 소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마찬가지다. 기자들의 출입처에서 내는 밥값은 기자와 출입처 사람들이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우리는 공적인 관계만은 아니라는 그들만의 표식 같은 것이다.
밥을 트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의 유착들은 자연스러워진다. 일상이 된다. 말단 관공서부터 중앙부처 장관실까지 국민 세금으로 산 '상업 신문'들이 아직도 매일 아침 공무원들의 책상 위에 깔려 있다. 국민 세금으로 왜 공보실 김 과장에게 조중동이나 전경련에서 출자한 경제신문까지 보게 해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바쁜 공무원들이 하루에 10종 안팎의 신문들을 다 보는 것일까? 그걸 보고 앉아 있는게 근무태만이고, 배임이 아닌가? 선진국 어디에 이런 제도가 있는가? 왜 국민 세금으로 조·중·동 수만 부가 자동 선결제되어야 하는지 당신은 이해가 되는가?
출입처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렇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습득하지만 출입처에 해당 언론사 기자들이 있고, 그들이 쓰는 기사가 장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관리하는 것이다. 신문기사들을 꼼꼼히 살펴보다 보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기사라기보다는 출입처 관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가끔 눈에 띈다. 대중매체들이 대중은 배제하고 신문지면을 통해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속닥거리는 기사의 내용이 무엇이든, 결국은 '이익'과 연관되어 있다. 정부 부처나 정부가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들은 기관에 출입 등록된 언론사 위주로 광고비를 지급한다. 한국의 정부 부처만 20개 정도다. 그 부처들이 관할하는 공기업, 공공기관들만 해도 부처에 따라 40~50개에 이른다. 이 공기업들이나 공공기관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는 각종 법인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개가 또 있다. 한 부처가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회사, 기관들이 최대 수백 개에 이른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언론사들에 대한 광고홍보비는 연 단위로 최소 수천억 원이라는 말이다. 그게 어떻게 쓰여질까?
박근혜 정부에서 극우 인터넷 매체들에게 수천만 원씩 지급한 것이 바로 이런 돈이다. 등록된 사무실 주소로 찾아가 보면 조그마한 빙 한 칸짜리 사무실인 경우도 있었다. 언론사에 몸담았던 적은 있었는지 궁금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언론사라고 등록만 해놓은 곳도 여럿이었다. 이런 정체불명의 곳들이 언론사라면서 눈 먼 정부 홍보비 예산을 타갔다. 국토위 산하의 한 공단은 기관장 임기 중 자신이 나온 대학의 교지 등에 홍보비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새누리당 중앙위위원회 당 기관지에 보훈처 등 서너 개 공공기관들의 홍보비가 지급된 적도 있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걷어서 특정 정당 기관지에 뿌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이런 일탈적인 경우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나 산하기관들이 뿌리는 광고 홍보비는 언론사들의 주요한 수입이다. 출입처에서 어떤 언론사가 어느 정도의 홍보비를 광고 명목으로 받아갔다는 것이 소문나면, 비슷한 경쟁사들은 최소한 그와 똑같은 액수의 광고비 책정을 공보실을 통해 요구한다. 공보실 입장에서는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줘서 관계가 악화되는 것보다는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계 형성은 물론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 그래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지급해준다. 어차피 자기 돈 아닌 국민 세금이다. 학회가 열리면 학회지에도 지급해서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교수들과 인적 유대관계를 구성해 놓는 것도 이들 입장에서 나쁜 일이 아니다. 정부나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상적으로 광고·홍보비를 받는 것은 사실상 제도화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그 결과로 출입처와 출입처 기자들은 유착한다. 부조리는 다반사다.
한 공공기관의 홍보팀장은 지금은 광고 에이전시를 자처하는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어 있을 정도로 관련 '산업'이 융성해 있다고 한탄하듯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광고 효과가 없는 것은 서로가 다 아는 사실이니, 티나지 않도록 적절히 기관이나 기관장을 추켜 세워주는 홍보 기사를 통해 광고비와 바꿔 먹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업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홍보의 목적인 바에야 이걸 '광고'를 통해 노골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나 보도를 통해 은연중 내비치는 것이 훨씬 홍보 효과가 크다. 모든 홍보 담당자들이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해왔던 일, 그게 사회적 관습으로, 한 세대의 일반적 행태로 굳어진 일이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금방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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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행정부와 다를까? 구조적으로 똑같다. 출입처 제도는 그 제도 아래 놓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에 관여한다. 국회의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국회의원들은 언론에 더욱 신경 쓴다. 자신의 국감 중 발언이 언론에 인용될수록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잘 써줬다면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따로 올리거나 홍보지로 만들어 지역 유권자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국회에서 일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홍보하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 원내대표실에서 으레 문건이 내려오기도 한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어떤 의원이 잘 했는지 ‘우수의원'을 뽑아야 하니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말이다. 우수의원 선정은 국회의원실에서 나오는 정책자료집, 보도자료, 언론보도 등의 성과를 기준으로 한다. 어떤 의원들은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기 전에 출입처 기자들 중 자신들과 친한 기자들, 자신들의 의도대로 기사를 써 줄 기자들에게 접근해 '특종'을 보장해주며 한 군데 언론사만 집중 공략하기도 한다. 언론사는 좋은 기사거리를 받아서 좋고, 국회의원들은 당내 우수의원에 선정될 점수를 획득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이렇게 점수를 줄 때 언론사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TV 매체와 중앙 일간지, 지방지, 경제지, 인터넷 등 매체별로 나뉘지만 여기에는 이념이 개입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정 활동을 잘해서 <TV 조선>에 좋게 포장되어 나왔다면, 그 역시 가점이 된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겨레>에 좋게 포장되어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모두가 동등한 '한 표'인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특정 언론사를 적대적으로 대해 이득이 될 게 없다. 2017년 10월 치러진 국정감사 때까지도 이러한 관계들은 유지되었다.
앞으로도 출입처 제도는 영원할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출입처 제도는 편견과 유착의 근원이 되고 기사를 획일화하는 백해무익한 제도”지만 그것은 출입처 밖에 있는 사람들, 시민들의 관점이다. 출입처 안에 있는 99퍼센트의 기자, 공무원, 정치인들에게 출입처 제도는 합리적이고 편안하며 편리한 제도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기자, 공무원, 정치인은 한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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