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안과이슈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곽노현. 입감 전 마지막 글)

강산21 2012. 9. 29. 02:19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어제 교육감직을 내려놓았습니다.

몹시 괴로웠습니다.

2년 전 시민여러분이 제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수행치 못하고

중도하차한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교실에서, 거리에서

불행한 교육현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저와 함께 '행복한 교육혁명'의 꿈을 꾸었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시민여러분,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사과나무는 심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시민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자 합니다.

 

대법원이 제게 유죄판결을 내린 뒤

시민 여러분이 어젯밤 SNS를 통해 분출한

우리 시대의 거대한 물결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버린

공교육 혁신의 물결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민이 직접 뽑은 선출직 공무원을

사법권력이 정치적으로 탄압한 데 대한 공분의 물결이었습니다.

 

그 물결은

교육과 사법부의 개혁을 위해서는

투표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분의 물결이었습니다.

 

그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보며

저는 기뻤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그 시대정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권리를 높이기 위해 일했던 인권운동가로서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믿는 민주주의의 신봉자로서

인정 있는 법을 위해 싸워왔던 법치주의자로서

가까운 학교에서 누구나 최상의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었던 교육가로서

저는 우리 사회의 거악들과 힘겨운 싸움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힘겨웠던 싸움을 통해 얻으려 했던 목표가

지금 대한민국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어젯밤 저는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이제 곧 감옥으로 가야하는 제가

시민여러분과 함께 심고 싶은 또 한 그루의 사과나무입니다.

 

서울교육이 잠시 흔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대법원 판결은 우리를 실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출 수 없고, 식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무의미하고 측은한 역류에 불과합니다.

 

돌이켜 보면

2년전 제가 교육감에 당선됐던 것은

개인 곽노현의 등장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공교육 혁신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용암으로 분출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수형자가 됩니다.

하지만 그 형은 이제 제게 고통의 길이 아닙니다.

제가 우리 시대 교육개혁, 사법개혁,

그리고 민주개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제게는 희망의 길입니다.

 

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신 시민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제게 힘을 주신 시민 여러분, 여러분도 힘 내시기 바랍니다.

 

추석 연휴, 가족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미래, 새로운 희망을 얘기 나누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9.28. 감옥으로 향하며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