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칼럼] 사회적 법치주의

강산21 2010. 7. 31. 18:19

사회적 법치주의
<연재칼럼> 김성현의 따뜻한 시선
2010년 07월 31일 (토) 17:58:24 김성현 okdm@naver.com
노무현 시민학교에서 강연한 문재인의 강연록에 따르면 법치주의는 시민적 법치주의에서 사회적 법치주의로 진보하였다고 한다. 국가권력에서 시민의 자유를 보장받는 게 시민적 법치주의였는데 그런 제도를 마련하고 운용해보니 법과 제도적으로는 자유롭고 평등하지만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과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울수록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데,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선택의 폭도 좁으니 자유롭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형식적 자유와 평등만으로는 안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조건 등이 보장되어야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발전해 갔고 이것을 사회적 법치주의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사회경제적 약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규제할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긍정적인 조치’라는 말이다. 한 사회가 더 평등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긍정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언론에서는 흔히 약자보호정책이라 표현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를 실시하는 것 등을 말하는데 대학교수 채용시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일정 비율을 할당하여 채용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몇 점 접어두고 들어가는 접바둑인 셈이다.(노무현 시민학교 강연록, 정연주)

70-80년대의 민주화 투쟁 이후 제도적인 면에서는 독재사회가 민주사회로 전환된 모양새이지만 실질적인 민주화는 아직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하는 것은 법과 제도적으로는 평등과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차별과 불평등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적 측면에서의 욕망을 자극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이 일어난 것은 법과 제도면에서는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의 민주적 삶의 방식이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이기에 이 틈새를 파고든 욕망이 승리한 것일 수 있다. 그런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법치주의라는 말이 강압하고 감시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겉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인권이 후퇴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독재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내용이 채워지지 못한 민주주의의 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정치권에서 여성의 참여를 늘이기 위해 지역구에 일정 비율의 여성 후보를 공천하기로 한 것이나, 비례대표 후보의 홀수번에 여성을 두도록 강제한 것은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려는 의미있는 움직임이다. 때로 역차별이라는 지적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부분은 오랜 기간 동안 차별받고 의사 표현이 막혔던 여성에 대한 당연한 우대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상당 기간 동안 역차별이라 하더라도 강제하는 비율을 높이고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뉴욕 브루클린의 아파트 단지인 스타렛 시티는 2만 명이 입주해 있는 곳으로 연방 정부가 보조하는 최대 규모의 중류층 주택단지 조성계획에 따라 설립된 곳이다. 1970년대 중반에 문을 연 이곳은 인종통합공동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의 인종적, 민족적 구성 비율을 조정하는 ‘입주자 조절 정책’을 실시하면서 흑인과 히스패닉을 전체 입주자의 40%로 제한한 바 있다. 할당제인 것이다. 이는 인종적, 민족적 균형을 유지해서 안정되고 인종적으로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함이다. 효과가 있어서 대단히 살기 좋은 공동체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여기에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흑인에게 돌아가는 할당량이 적은 탓에 일부 흑인 신청자들이 이 정책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할당제를 유지하되 국가는 소수집단을 위한 주택 조성 계획을 더 추진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크 샌델, 김영사)

사회적 균형과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어느 누군가는 우대받고 누군가는 남몰래 눈물짓는 일이 없어지도록 해야 하는 방향이 맞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다양한 이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맞다. 동일 성적임에도 사회적 조건이 열세에 놓인 이들을 할당하여 입학시키는 미국의 대학들의 경우 이를 차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뜻대로 허용되지는 않는다.

사회적 조건이 다른 이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하고 한 줄로 세워 비슷한 이들끼리의 모임이 되어버린 대학 사회의 모습은 조화로운 사회를 향한 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를 조장하는 교육당국의 정책도 적절치 않다. 남성들로 가득 찬 의회의 모습도 적절한 모습이 될 수 없다. 시 산하의 많은 위원회에도 남성들이 넘쳐나고 사회적 주체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이 안될만큼 현저하게 적어서는 바른 정책을 강제할 방법이 되지 않는다. 다양성과 조화는 민주주의적 삶의 실천에 절실한 조건이다. 변화를 위한 수고는 늘 힘들지만 변화를 통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이 시대의 숙명이다.

   
김성현
san05@paran.com | 010-2611-4471
경기고교평준화시민연대 공동대표 / 참여자치연구소 소장 / 광명여성의전화 지역자치위원장 / 블로그http://blog.daum.net/san05


ⓒ 광명시민신문(http://www.km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