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서영석의 선거총평] 유시민, 그가 잃은 것과 얻은 것

강산21 2010. 6. 3. 19:00

[선거총평1-유시민 편] '루저'에서 '위너'로

 

안녕하십니까. 서영석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앞으로 우리 현실정치의 흐름과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선거였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의 미묘하기 짝이 없는 결과는 이명박 정권 후반기 권력투쟁의 양상은 물론, 차기 총선과 차기 대선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는 엄청난 단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한꺼번에 다 짚으려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몇개로 나눠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서프 특성을 고려해 제일 먼저 풀어놓을 얘기는 역시 유시민에 대한 것입니다.

 

유시민이 잃은 것

 

사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시민이 잃은 것이라고는 딱 하나입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겁니다. 도전이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들 포장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도전도 이겨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유시민은 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난글(선거전망3)에서 얘기했다시피, 유시민이 이번 선거에서는 이기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합니다.(이걸 강조하다 보니 저도 본의 아니게 욕은 먹었습니다만) 돌이켜 보면 유시민은 경기도지사 선거에 사실 떠밀리다시피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쉬움을 표명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유시민이 굳이 지방선거에 도전한다면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하지만 유시민이 민주당 합류를 거부하고, 국민참여당에 들어가면서, 사실 이런 수순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유시민을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포용력 부재와, 호남당에 안주하고 있는 민주당의 현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두가지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남당에 안주함으로써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의 숱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단 한번도 넘지 못한채 지방선거를 맞이했습니다. 당연히 민주당은 호남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유시민, 단 한사람을 배제하는 대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을 수혈해 지방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당하지 얼마되지 않은 국민참여당으로서는,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밑바닥에 엄존하는 영호남 지역대결적 구도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참여당으로서는 이같은 양보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국민참여당은 차기 총선과 대선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정치이벤트인 지방선거에서 경쟁력있는 후보를 낼 수 없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던 겁니다.

 

유시민의 출마는 따라서 민주당과 이른바 '친노세력'간의 복잡한 정치적 흥정의 결과이기도 합니다만, 경기도의 미묘한 판세는 유시민의 출마를 단순한 출마로만 그치게 할 수 없었던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아시다시피 민주당은 역시 '친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김진표를 내세웠습니다만, 당시의 여론조사를 보면, 김진표나 유시민이나 단독으로는 김문수와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떠밀려 나온 유시민이었습니다만, 유시민의 출마는 이러한 상황이 명분을 부여해 줬습니다. 즉 단독으로는 안되지만 두 사람이 단일화를 한다면 김문수와 한번 붙어볼만하다는 주장이 여론에 통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유시민은 말도 안되는 조건 속에서 치러진 단일화 경쟁에서 이기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기적이 두번 일어나는 것은 로또복권에 2주 연속 1등 당첨되는 확률과 같습니다. 결국은 김문수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패배로 유시민이 잃은 것은 지방정부라고 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틀 속에 공동정부를 운영하는, 우리 정치사에서는 어쩌면 소중할 수도 있는, 연대와 협력의 구체적인 경험을 해볼 기회를 잃었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유시민이 얻은 것

 

유시민이 패배한 직접적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호남 유권자층의 이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선거의 향방을 가른 것은 호남표만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천안함 역풍 등 복잡다단한 요소가 결합돼 이번 선거의 전체적인 승패를 갈랐습니다만,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진 것은 이른바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이 분열돼 100% 표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이 패배한 것은 이것 외에 달리 설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아니길 빌었습니다만, 유시민에게는 '호남 비토'가 존재했던 겁니다. 유시민이 8번이 아닌, 2번으로 출마했더라면 보나마나 압승으로 끝날 선거였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은 단일화 승리로 야권 전체에 바람을 불러일으켜, 야권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약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호남 비토'로 인해 패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맞이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뭃론 안희정이 이기고, 김두관이 이기고, 이광재가 이기고, 심지어는 송영길과 이시종이 이긴 것은, 유시민 덕분만은 아닙니다. 여러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야권단일화 바람을 타지 못했다면, 야권이 단결해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고 그들의 '무한질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견제심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면, 그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기지는 못했을 겁니다.

 

야권단일화바람은, 그것이 정당간의 단일한 대오를 만드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형식에 불과합니다. 그 형식이 바람으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감동'이란 매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유시민은 경선단일화의 '기적'을 통해, 형식에 실질적인 내용을 불어넣었습니다. 유시민이 없었더라면 그 바람은 미풍에 그치고 말았을 겁니다. 유시민이 없었더라면,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커뮤니티와 '트윗질'의 강도는 훨씬 약화됐을 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낙선함으로써, 민주당과 당선된 도지사들에게, 그리고 호남정서에게 매우 커다란 정치적 '부채'를 안긴 겁니다. 유시민이 안겨준 이 커다란 정치적 부채는 두가지 측면에서 의미깊습니다.

 

복수는 끝났다

 

차기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보개혁세력의 단일화'가 정답이란 사실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증명됐습니다. 진보개혁세력의 단일화가 표로 결집될 때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도 한가지 요소입니다.

 

유시민을 여기에 대입해보면, 그의 대권가도에 가장 커다란 장애는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증명됐듯이 '호남의 비토'였습니다. 바로 이 '호남의 복수'로 인해 유시민은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자신을 던져, 바로 호남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당선시킨" 꼴이 돼 버렸습니다. 모두는 아니겠습니다만, 유시민을 싫어하는 호남인들의 마음 속에는 '부채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유시민은 이번 선거에서 낙선함으로써, 비로소 호남비토론과 화해할 수 있는 단서를 잡은 격입니다. 용서(유시민이 뭘 잘못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갑니다만, 여하튼!!)와 화해가 쉽사리 되지는 않겠지만, 그 단서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유시민이 얻은 것은 작지 않다 할 것입니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본다면, 이번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간의 미묘한 일정 차이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장, 도지사들의 임기는 2014년까지 입니다. 하지만 대선은 2012년에 치러집니다. 아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번에 당선된 사람이 중간에 임기를 그만두고 차기 대선에 도전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후안무치를 자랑으로 삼는 한나라당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야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시민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낙선함으로써, 오히려 홀가분하게 차기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했습니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야권의 후보군으로 유시민과 경쟁할 만한 후보군으로는 한명숙과 이해찬, 손학규 정도일 것입니다. 송영길,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은 자연탈락입니다. 물론 현재 야권내 가장 경쟁력이 있는 한명숙과 유시민만으로 차기 대선에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들 도지사들에게도 찬스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럴 일이 생길 확률은 기적이 두번 일어날 확률과 비슷할 것입니다.

 

진가를 보여준 유시민

 

유시민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그의 유세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기에 가득찼습니다. 2002년 노풍을 연상케 해줬습니다. 그의 유세장은 대통령선거 유세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역시 정치인은 선거로 크나 봅니다. 그는 몇차례에 걸친 TV토론과, 지역 유세를 통해, 유시민은 단순히 도지사로 끝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단순히 노무현의 '적자(嫡子)'를 넘어서, 진정으로 국가를 경영할만한 자질과 도덕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당연히 한명숙의 등장이래 정체상태를 보였던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도 약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빠' 혹은 '유빠'그룹의 밀도높은 지지를 넘어서, 그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유시민은 선거낙선으로 작은 것을 잃었지만, 그가 얻은 것은 너무나 큽니다. 그것은 결국 그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얻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유시민과 경쟁하는 많은 야권의 잠재적 후보군들이 그에게서 배워야할 가장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가식적 행동에 국민은 감동하거나 넘어가지 않습니다. 유시민은 국민들을 감동시킬 자격이 있다는 점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겁니다.

 

(덧글)

이렇게 분석하긴 하지만, 저는 이번 선거 결과에 정말로 분노합니다. 저는 지금껏 현실정치적으로는 '중립'에 서 있다는 걸 자랑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책 '유시민의 가능성'이 탈고되는대로,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좋아하는 정치인 '유시민'을 위해 뭔가 할 일을 모색해볼 생각입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64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