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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위선

강산21 2009. 6. 4. 19:51

위선


대한민국 대통령은 ‘집 떠나는 홍길동’과 비슷하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진실을 입에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집을 떠날 수도 없으니 더 답답하다. 대통령은 여당이 선거에서 이겨 의회에서 안정된 과반의석을 확보해야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말을 하면 안된다. 그래서 국민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몰래 여당을 돕고 여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과 정무수석을 보내 소위 재야인사를 영입하고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줬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수억 원이 든 돈가방과 지구당 사무실, 승용차와 비서까지 패키지로 장만해 주었다고 한다.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이 엄격해지기 전이니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것들을 합법적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18대 총선에서 떨어졌지만 여전히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심재철 의원 등이 모두 과거에 그런 케이스로 한나라당(당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재임 중에 여당 총재를 겸직했다. 당연히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여당의 공천권을 행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과 참모들을 통해 한나라당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후보 공천을 좌지우지했다는 것도 만인공지의 비밀이다.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공천을 좌우했고 여당의 총선 승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다. 정치중립은 고사하고 선거중립조차 지키지 않았다. 중앙선관위와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그들은 모두 공직선거법 제9조가 규정한 공무원으로서 명백한 위법, 위헌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들은 이 진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난도 받지 않았고 탄핵을 당하지도 않았다. 중앙선관위는 ‘만인공지의 비밀’을 모른 체하며 넘겼다. 이처럼 명백한 정치적 위선이 달리 또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위선을 거부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정당이 잘되기 바란다는 소망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러한 의사표현은 선거에 임하는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의 대상일 뿐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와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을 일반 국가공무원과 똑같이 취급하면서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했고, 이러한 헌법과 선거법 해석에 대한 대통령의 논리적 반박까지도 헌법을 무시하는 행위로 단죄했다. 왜 그랬을까? 법철학이나 법 이론의 차이도 있겠으나, 그 저변에는 모든 관료 조직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권력극대화 욕망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을 그렇게 좁고 경직되게 해석해야 중앙선관위나 헌법재판소의 권력이 커지고 ‘서식지’가 넓어진다. 그들은 ‘이기적 개체’로서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력극대화를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중앙선관위와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론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기가 없었고, 거대 보수 신문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이 대통령의 ‘정파적 언행’을 비판했다. 국민들도 대부분 선관위와 헌재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국민의 마음 속에는 대통령이 아니라 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은 만백성의 아버지다. 불편부당하고 후덕해야 한다. 정치와 선거에 개입해 특정한 정파와 얽히는 것은 왕답지 못하다. 대통령은 왕과 같은 위엄을 지녀야 하며, 말 한마디 한마디를 천금처럼 무겁게 해야 한다. 대통령은 선거로 뽑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운명이다. 마치 왕조시대 어떤 남자가 출생이라는 초대형 로또에 1등으로 당첨되어 왕위에 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통령의 언행에 비판적이었던 여론을 잘못 해석하고 탄핵을 강행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취임한지 1년밖에 안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대통령이 마음에 들게 더 잘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물론 탄핵에 적극찬성한 국민들도 있었다. 주로 한나라당 지지층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나라당은 탄핵역풍과 소위 대선자금 ‘차떼기’ 폭로 후유증을 견디고 살아남아 2004년 총선에서 무려 120석을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지지층이 대통령 탄핵을 원하지 않았던 민주당은 의석이 10석으로 쪼그라드는 치명적 패배를 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으켰던 국민들과의 정서적, 정치적 불화가 주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사회적, 정치적 계약의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재신임, 사임, 임기단축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지율이 너무 낮은 대통령이 계속 재임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한된 권력을 가진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언론,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과 수평적인 다툼이나 권한쟁의를 벌이면서 서로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보수언론과 싸우고 검사들과 논쟁하고 선관위나 헌재와 대립하고 여야 정당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무거운 것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소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낮았던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의 어떤 대통령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대통령직은 분명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과 맺은 계약의 산물이지만, 예전의 대통령은 운명이 맺어준 만백성의 왕처럼 말했다. 고은 시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가 안타까웠던지, “위정자에게는 때로 위선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이 위선적 언어를 쓸 필요도 없고 실제 쓰지도 않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2008년 이후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위선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전제군주처럼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다. 말로는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검찰과 국세청, 국가기록원,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기관 뿐만아니라 감사원과 같은 헌법기관까지 사유화하여 언론장악과 정치보복의 첨병으로 동원하는 위선적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시간을 두고 충분히 심사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대혁명의 본산인 프랑스 사람들은 실제로 왕의 목을 쳐 죽었다.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주권재민의 원리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왕을 죽인 나라는 프랑스 말고도 많다. 대한민국은 왕을 죽인 일이 없는 나라다. 고종 황제가 다스리던 나라에서 일본 왕의 대리인인 총독이 다스리는 식민지가 되었다. 제헌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 대통령은 ‘국부’ 이승만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아니라 왕이었고, 오스트리아 출신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공공연히 ‘국모’라 일컬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라 함부로 부르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온화한 이미지를 가졌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버젓이 ‘국모’라 불리었다.


왕국의 신민에게는 자애로운 국부와 국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국의 주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필요할 따름이다. 우리 마음 속의 왕을 죽여야 민주공화국이 산다.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견해는 우리의 문화유전자 안에 남은 침팬지의 그림자일 뿐이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런데 헌법적, 법률적 제약 조건을 받아들이고 5년 계약직답게 행동하는 대통령은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하는 백성의 요구를 충족할 수 없어서 인기를 잃는다. 사실은 계약직 공무원이면서 마치 왕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은 권력오남용을 거부하는 시민의 저항과 비판에 부닥쳐 인기를 잃는다. 우리 사회가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돌베개, 2009, 206-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