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학생인권(유시민)

강산21 2009. 5. 6. 00:51

학생인권


"엄마 닭대가리가 뭐야?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애들한테 너네 닭대가리냐고 하는데......" "교실 앞문은 선생님 혼자만 쓴다고 애들 못 다니게 해. 쉬는 시간에 뒷문 하나로만 드나드니까 아주 난리야, 난리." "선생님이 자를세로로 세워서 손바닥을 때려."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아이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게다가 부모님 확인 서명을 해달라는 아이 자습 노트에는,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도덕 교과서에 실린 이런저런 삽화를 베낀 그림이 그득하다고 하자.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세 가지가 있다.


모른 체한다. 담임선생님을 조용히 찾아 뵙고 작은 정성, 곧 촌지봉투를 드린다. 선생님을 만나 이렇게 말씀 드린다. "선생님, 교육 효과가 의심스러운 교과서 그림 베끼기보다는 자습시간에 독서를 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맞을 짓을 하면 때리기 전에 먼저 저한테 전화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부모가 먼저 교정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은 무난한 해법이지만 부모로서 직무유기를 한다는 죄책감을 유발한다. 는 부모된 자로서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만족감을 주며 최소한 자기 아이가 선생님한테 얻어맞을 확률을 낮출 개연성이 높은, 상당히 효과적인 대안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인간으로서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게 부모인데, 뭐 어떤가. 부모가 살짝 비겁해져서 자식 인생이 편해진다면 못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를 선택한다.


손톱만큼이라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부모라면 은 절대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을 선택할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딸한테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선생님이 무언가 트집을 잡아 1층에서 4층까지 계단 철제 난간 손잡이를 깨끗이 닦으라는 벌을 준다. 정해진 시간에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급우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야단을 치고 네 시간 동안 엎드려뻗치기 얼차려를 준다. 선생님이 교무실 갈 때는 반장더러 벌을 잘 서는지 감시하도록 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불러내 친구냐고 물어본다. 친구라고 하면 친구는 동고동락하는 사이라고 하면서 벌을 같이 서게 한다.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왕따를 만들자, 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고 운다. '그래, 학교가지 마라.' 화가 난 부모가 아이를 며칠 동안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도 전화 한 통 없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당신은 이나 를 선택하지 않은 걸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교장선생님과는 면담은 고사하고 전화 통화하기도 쉽지 않다.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교감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고 면담을 할 수 있다. 교감선생님은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거나 다른 반으로 보내자고 제안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부모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좁은 동네니만큼 소문이 다 날 것이고 아이가 옮겨 간 학교나 학급에서도 왕따를 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방교육청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아이의 신원을 노출해서는 안되니 익명으로 전화를 한다. 사연을 들은 장학사는 자꾸만 어느 학교인지를 물을 것이다. 아이가 여러 날 결석을 하는데 학교에서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는다면 문제라면서, 학교 이름과 아이의 인적사항을 달라고 할 것이다. 이걸 말해주면 정말로 큰일이 난다. 그 교육청 산하 모든 학교 선생님들에게 당신의 딸 사건이 알려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육부나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서도 안된다. 교육 관료들의 관심사는 귀하의 소중한 딸을 인격적 교육적으로 돌보는 것보다는 이 사례를 학교 평가나 교사 평가 시스템을 가동하는 연료로 쓰는 데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도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공개적으로 담임선생님의 횡포를 고발하고 학부모들의 항의를 조직해 담임 교체를 요구할 수 있다. 그래봐야 소용없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은 동료이자 후배인 문제의 교사를 적극 보호하려 할 것이고, 다른 학부모들은 저기 아이가 이 소동에 휘말려들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공동행동 참여를 기피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에 맡겨지는 인질이 되고, 학교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인질극의 현장이 된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극소수 문제 있는 교사의 잘못된 행동을 가지고 학교와 선생님들을 폄하한다고 화를 낼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런 교사는 '극소수' 있을 뿐이다. 훌륭한 인격과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많은 선생님들이 오늘도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교직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될 '극소수'의 선생님들이 교사 전체의 신뢰와 명예를 해치면서 교직에 머무르는 것을 제어할 아무런 제도가 없다. 그들은 평생 교직에 있으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와 부모들의 가슴에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 교사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임용단계에서부터 미리 걸러내는 수습교사제,이미 임용한 교사에 대해서는 평가를 통해 걸러내는 교원평가제가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모두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의 일부이다. 연세가 많은 선생님일 거라는 선입견은 자제해주시기 바란다. 서른도 되지 않은 여성이었다. 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는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이런 선생님을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아이가 한 번 정도 그런담임을 만나는 것은 '평균적인 불행'으로 다소곳이 받아들인다.


대한민국 형법에는 어린이에 대한별도 규정이 없다. 그러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10). 어린이도 '모든 국민'에 포함된다. 어린이도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초등학교에서 '극소수' 부적합한 교사가 어린이의 인권을 유린하는 문제에 대해 제도적 해결책이 전혀 없는 현실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돌베개, 2009, 14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