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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교육, 死교육] <6> 사교육 효과의 진실

강산21 2009. 3. 14. 18:21

[私교육, 死교육] <6> 사교육 효과의 진실

기사입력 2009-03-14 03:21 

9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뒤 학교 앞에 대기 중인 학원 차량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아이들, 학원 올인하다 '나만의 공부방법' 터득 못해 뒷걸음"

"학습 능력 배양" "효과 없다" 엇갈린 분석 속 2000년 '과외 허용' 전후 수학·과학 실력 비슷

애들을 점수따는 기계로… 창의력·재미 잃어가 인재개발 경쟁력 지수 OECD 최하위권 지속

남의 자식 3개 시킬 때 자기 자식은 4개를 시켜야 안심이 된다는 사교육. 과연 사교육은 자녀의 성적향상에, 나아가 한국 청소년들의 교육 경쟁력과 국가의 인적자본 경쟁력 향상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분명한 것은 점수 올리기에 관한 한, 사교육이 도움이 되는 학생도 있는 반면 역효과만 내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강남의 K고등학교 3학년 이모(18) 양은 중학교 시절 내내 대치동에 있는 학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논술 6개 과목을 들었다.

월 학원비가 300만원에 달했다. 한때 외고를 목표로 할 만큼 성적이 상위권이었지만, 고교 진학 후부터는 성적이 떨어져 지금은 서울의 4년제 대학 진학도 빠듯하다. 이양에게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양의 담임인 이모(51) 교사는 "워낙 학원 주도로 공부를 해오는 바람에 자기만의 공부방법을 터득하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교육 효과에 대한 학계의 분석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송경오 조선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주최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참된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탐색' 논문에서 "일반고 학생들의 경우 사교육 제공 여부가 내신성적, 탐구학습능력, 학습에 대한 긍정적 태도 등 세 가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실증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교육이 자녀의 전반적인 학습능력 배양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노동연구원의 '사교육의 대학진학에 대한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사교육과 대학진학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교육을 받거나, 사교육에 드는 돈이 많다고 해서 대학 진학률 또는 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형재 연구위원은 "사교육 열풍은 실제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교육 효과에 대한 학부모들의 환상, 혹은 사교육을 안 할 경우의 불안심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에서 한 학생이 책을 보며 걸어가고 있다. 학원 건물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명문대와 특목고 입학자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오대근기자

설령, 개인적으로는 사교육을 열심히 시켜 효과를 봤다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 올라간 점수가 한국 청소년들의 교육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과외교육을 전면 허용했던 2000년 이전과, 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수학ㆍ과학 국제경쟁력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의 조사(TIMSS)에 따르면 중학 2학년 기준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수학이 1995년 세계 3위, 1999년 세계 2위, 지난해 세계 2위였고, 같은 해 과학은 각각 4위, 5위, 4위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학업성취도는 세계 50개국 같은 연령대 학생들이 똑 같은 시험을 치러 그 결과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다. 결국 사교육이 강화된 만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나 교육경쟁력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수학ㆍ과학 성적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그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TIMSS 설문조사에서 '수학ㆍ과학 학습이 얼마나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수학은 즐거운 정도가 상중하 가운데 '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3%로 국제평균 54%에 턱없이 못 미쳤고, 과학도 38%(국제평균 65%)에 불과했다.

50개국 가운데 각각 43위와 29위였다. '수학ㆍ과학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묻는 질문에서도 '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수학 39%(국제평균 43%), 과학 24%(국제평균 48%)에 그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경희 TIMSS 팀장은 "학생들이 교과서가 요구하는 것을 성실히 잘 따라 하기 때문에 성취도는 높지만, 수학과 과학에 대한 열정과 흥미는 세계 하위 수준"이라고 말했다. 성적은 좋아도 재미를 못 붙이고, 자신은 늘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교육평론가 이범(전 곰TV 강사)씨는 "학원에서 원리와 상관없이 문제풀이만 시키니깐, 시험점수는 높을지 몰라도 탐구력과 같은 기본적인 수학ㆍ과학적 능력은 길러질 수가 없다"며 "특히 빨리 풀기 위주의 초등학생 대상 수학 사교육은 사교육 중에서도 최악인데, 이렇게 해서는 학문에 대한 동기부여도, 국가적인 인재 양성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점수 따는 기계'를 양성할 뿐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배양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교육이 사실상 공교육을 점령해온 지난 10여년 간, '창조적인 인적자본 육성'에 관한 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본보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입수한 'OECD 국가의 인재개발 경쟁력 지수 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인재개발경쟁력지수는 OECD 30개국 가운데 2006년 기준 28위에 머물렀다. 2000년 이후 7년째 27~28위에서 맴돌고 있다.

이 보고서는 교과부가 2004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발주해 작년 말 작성된 것으로, 교과부는 워낙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자 발표를 미루고 있다. 인재개발지수란 한 나라의 교육체계가 얼마나 좋은 인재를 효율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연령대별 취학률, 학생 1인당 교육비, 교원 1인당 학생수, 평균교육연수, 고등교육이수비율, 수학 과목 국제경쟁력, 취업률 등을 바탕으로 산출된다.

그 내용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나 세계경제포럼(WEF)의 교육부문 국가경쟁력 지표보다 더 포괄적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송창용 연구위원은 "사교육에 '올인'하는 사회문화적 환경 때문에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 초ㆍ중등 단계에서는 실종되고, 곧바로 대학의 고등교육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면서 "지금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10여년 뒤 인적자본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행학습땐 "학교수업 방해 된다" 학부모에 경고



■ '교육강국' 핀란드의 비결은… 평가 목적도 '비교' 아닌 '가능성 탐색'

50 대 30. 한국과 핀란드 학생들이 일주일 간 학업에 투자하는 시간이다. 공부시간은 우리나라 학생의 60% 밖에 되지 않지만, 핀란드는 국제학업성취도 비교 평가(PISA)에서 항상 선두를 달리는 나라다. 핀란드는 어떻게 이 적은 시간의 학교 공부만으로 '교육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물론 완벽에 가까운 복지 인프라, 무상교육 시스템 등 핀란드 모델은 우리의 교육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감이 있다. 하지만 여건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핀란드의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 공교육 위기를 타개할 몇 가지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우선 핀란드에서는 선행학습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학부모가 자녀에게 수업 진도를 미리 가르치다 적발되면 학교로부터 경고를 받을 정도다. 선행학습을 한 학생은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수준의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암기해야 하는 우리나라 어린들과는 학교 교육을 대하는 태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1970년대부터 학교 현장에 뿌리 내린 핀란드의 '통합 교육'은 믿을 수 있는 공교육을 만든 핵심 비결이다. 우리나라의 초ㆍ중학교를 합친 종합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도 하향 평준화로 흐르지 않은 까닭은 교실 안에서 개인의 학습능력을 고려한 개인별ㆍ그룹별 맞춤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종합학교의 학력 수준이 비슷할 수밖에 없고, '명문'이라는 타이틀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에선 '분리 교육'이 가속화하고 있다. 뒤떨어진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겠다며 학교 단위에서 수준별 수업과 우열반 편성을 독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따라 외국어고, 과학고, 자립형사립고에 더해 자율형사립고, 기숙형공립고, 국제중 등 이름만 다를 뿐 입시경쟁 일색인 새로운 학교 체제가 등장하고 있다.

평가방식도 다르다. 중학교 단계에서나 나오는 핀란드의 학교 성적표는 모두 절대평가다. 시험에서 학생이 아는 문제라고 판단하면 시간을 더 주기도 하고, 학생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도록 교사가 풀이 단서를 제공하는 일도 있다. "평가의 목적은 '비교'가 아닌 개인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라는 공감대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안승문 스웨덴 웁살라대 객원연구원은 "핀란드의 성공에서 보듯 사교육 문제는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기존 학교 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그에 걸맞은 교사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유병률기자 bryu@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