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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이명박 정권, 문명 역주행 슬프다”

강산21 2009. 3. 14. 16:14

“이명박 정권, 문명 역주행 슬프다”
‘후불제 민주주의’ 책 낸 유시민 전 장관
한겨레  한승동 기자

» 유시민(50) 전 보건복지부장관. 사진 돌베개 제공.
노무현 정권의 ‘실세’였던 유시민(50·사진)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오랜만에 입을 열어 정치와 자기 주변 등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특유의 달변조로 토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 펴냄) 제2부의 ‘연합정치’라는 에세이 항목을 그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12일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참여정부의 노선을 계승할 수 있는 정당 또는 정치세력을 남기지 못했다. 역정권교체를 이룬 보수정부는 참여정부의 정책을 거의 모든 면에서 무효화시키고 단절시켰다. 여러 좋은 정책과 성과도 남겼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씨는 주체적 역량의 한계 외에 경제의 구조적 양극화, “알바 언론에서 악플 언론으로 변신한 일부 거대 보수신문들”이 주도한 보수 편향의 담론시장,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 외교정책을 실패의 외부요인으로 거론했다.

 

노 전 태통령이 임기 말에 “어떻게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계몽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저질렀던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단다. 그게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계몽주의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기보다는 지도자가 국민에게 필요하며 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데 집착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일 좋은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라 다스리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으로 설득하는 것, 도덕으로 설교하는 것, 형벌로 위협하는 것, 그리고 최악이 국민과 싸우는 것이라는 사마천의 말에 공감한다. 계몽주의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중간 정도에 있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현 정부는 형벌로 위협하면서 국민과 싸우고 있다.”

 

이명박정권에 대한 유씨의 평가는 신랄하다. “대한민국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공화국 정신과 국민 기본권을 파괴”하는 “문명 역주행”을 감행하는 현 정권의 “암울했던 독재시대를 재현하는 정치권력의 천박한 속물적 행태”에 “우울감”을 넘어 “슬픔과 노여움”을 느끼고 있다. 바로 그것이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쓴 이유 가운데 하나다.

 

“2002년에 기획한 건데 이제야 자유로운 몸이 돼 쓴 것이다. 원래는 1부에서 기본권 조항을 다루고 2부에서 헌법재판소 주요 판례를 다루려 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 사이 글을 쓰는 동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노골적으로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 기본권을 탄압하는 일들이 생겨 이런 문제를 조금씩 언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정부 비판 책처럼 된 감이 있다.” 그가 현 정부 “최악의 실책”으로 꼽는 것은 남북관계를 망쳐 놓은 일이다. 그는 “하필 이 시기에” 일본 쪽 요구에 응해 김현희의 공개 기자회견까지 주선한 정부의 ‘생각 없음’을 나무라며, “국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마디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민주노동당을 “최초의 정당다운 정당”으로 평가한다며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로 자리매김한 그는 보수자유주의와 지역주의에 집착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패착, 보수정당들의 “이념적 옹졸함과 천박함”을 비판하면서도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 소위 ‘진보적 정책정당’ 역시 이념적 편협함과 경직성이라는 비슷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당 안팎에서 경쟁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과격함과 자기성찰의 부족이 마치 이념적 투철함의 발로인 것처럼 통용되는 한 진보정당이 국민 속에 뿌리내리기는 앞으로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참여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낙담한 면도 없진 않지만” 공직수행 기회를 얻었고 최선을 다한 만큼 “개인적으로 억울해할 일은 없다”며 “평가의 권한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다.


자칭 “정신적 정치적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내적 망명자’”라는 유씨는 요즘 “경북대에서 매주 ‘생활과 경제’를 강의하고 여기저기 대학가 특강 요청에도 응하고, 나머지 시간은 책 쓰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며 “당분간 이렇게 살 계획”이고 “별일 없으면 앞으로도 죽 이렇게 지식소매상으로 살 작정”이라고 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