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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거짓말

강산21 2009. 3. 3. 18:16

하얀 거짓말


영미 언어권에서는 ‘하얀 거짓말’과 ‘검은 거짓말’을 구분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도 이런 구분이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이 개념들은 1741년에 처음 등장했다.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당시 유럽에서 흰색은 이미 수세기 전부터 순수, 결백, 선의 상징이었고, 검은색은 슬픔, 죽음, 죄, 악을 나타냈다. 따라서 ‘하얀 거짓말’은 좋고, ‘검은 거짓말’은 나쁘다고 여겨진다. 영어에서의 이런 분명한 구분은 거짓말이 모조리 나쁘지는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으며 ‘하얀 거짓말’의 경우처럼 거짓말을 함으로써 심지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독일어에서는 ‘거짓말’이라는 단어에 나쁜 것만 결부시킴으로써 거짓말에 부당한 대우를 한다. 가령 할머니의 퍽퍽한 마블케이크를 “언제나처럼 엄청 맛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사랑과 예의상 한 거짓말이다. 할머니는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를 위해 일부러 주방에 들어갔으니 우리는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이런 형태의 비진실은 고전적인 ‘하얀 거짓말’이다. 즉 하얀 거짓말은 좋은 목적과 최선의 의도를 가진 거짓말을 의미한다.

독일어에서는 ‘하얀 거짓말’을 흔히 ‘궁여지책으로 하는 거짓말’이라고 번역하지만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정말 곤란해서가 아니라 애정, 존경심, 약간의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절 토끼(부활절에 아이들에게 부활절 달걀을 갖다준다고 하는 토끼)와 산타클로스 역시 ‘하얀 거짓말’에 속하고 암환자가 앞으로 오래 못 살 것을 알면서도 그 반대를 주장하는 의사의 긍정적이지만 틀린 진단도 마찬가지이다.


<거짓말의 딜레마> 클라우디아 마이어, 열대림, 2008,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