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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휴전

강산21 2009. 3. 6. 13:10

크리스마스 휴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 독일군이 프랑스 내륙에서 북해에 이르는 약 800Km의 참호를 파자 연합군측도 이에 맞서 참호를 팜으로써 기나긴 대치전선이 형성되었다. 당시의 참호전은 한 쪽에서 돌격을 감행하면 상대편이 집중사격함으로써 대량학살을 벌이는 양상이었다. 전선의 큰 변동 없이 이러한 참호전이 반복됨에 따라 참호 사이의 벌판에는 엄청난 시신이 방치되어 양측 병사들 사이에서 '무인지대'라 불릴 지경이었다.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 둔 1224일 밤, 독일 서부전선 플뢰르 벌판에서 연합군과 독일군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을 사이에 두고 각각 참호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일군 진영으로부터 '슈틸레 나흐트(Stille Nacht heilige Nacht 고요한 밤 거룩한 밤)'가 울려 퍼졌다. 상상치도 못한 독일군의 캐롤 소리를 듣게 된 영국 병사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이에 용기를 얻은 독일군 병사들은 참호 주변에 촛불을 꽂기 시작했다. 슈틸레 나흐트가 끝나자 한 독일군 장교가 스코틀랜드 민요인 '애니 로리(Annie Laurie)'를 완벽한 영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역시 영국군의 환호 속에 노래를 마친 독일군 장교는 참호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교다. 쏘지 마라. 이제 참호 밖으로 걸어나가겠다. 영국군 여러분 중에서도 장교가 한 사람 나와달라." 곧 영국군 측에서도 하사 한 명이 걸어나가 독일군 장교와 대화를 시작했고, 양측은 전사자들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한 크리스마스 휴전에 합의했다. 양측 전사자들의 합동장례식을 치른 후 그들은 함께 어울려 토끼 사냥을 하고 돼지고기를 요리해서 나눠먹었으며 담배를 서로 교환하고 가족사진을 돌려보았다. 독일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소시지를 영국군의 잼, 위스키와 교환했으며, 한 독일 병사는 영국군 측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양측 약 1,000여명의 병사들이 크리스마스 휴전에 동참했는데, 이어 야전전화를 통해 이 소식이 인근 전선으로 퍼져나가면서 벨기에 북부 뉴포오트 항구 부근에서 이프래 마을까지 약 40Km에 달하는 전선에 배치된 양측 군사들이 차례로 크리스마스 휴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전선에 따라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어느 전선에서는 독일군과 영국군이 축구경기를 벌이기도 했는데, 당시 축구경기에 참여했던 한 영국 병사는 "독일군이 3:2로 이겼으나 독일군의 마지막 골은 오프사이드였다"고 일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휴전' 소식을 접한 양측 사령관들은 병사들에게 당장 참호로 복귀할 것을 명령하며 크리스마스 휴전에 동참하는 병사들은 군사재판에 회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각각의 본국에서도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곧 크리스마스 휴전은 끝나고 전투는 재개되었다. 이후 44개월 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9백만명 이상이 죽었고 2천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전쟁터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1914년을 끝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재현되지 않았다. '1914년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20061221일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지식e> season1, EBS지식채널e, 북하우스, 2007, 268-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