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대차대조표’ 나왔다 | |
현실주의적 진보학자들 ‘노무현시대의 좌절’ 펴내 | |
이세영 기자 | |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에 포함된 ‘좌절’이란 표현이다. ‘마음이나 기운이 꺾임’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말해주듯, ‘좌절’은 행위 주체의 ‘선의’에 대한 신뢰를 밑바닥에 깔고 있다. 실제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개방화 조건 아래서 성장과 복지의 동반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적절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다만 국정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연계짓지 못해 현실의 견고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좌절을 초래한 원인을 글쓴이들은 ‘지나친 의욕’과 ‘외교적 수모’ 사이를 오갔던 대외정책, 취약한 리더십과 정교하지 못한 정책패키지, 관료조직 장악과 국민적 합의도출의 실패 등에서 찾는다.
통일·외교·안보정책을 평가한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나타난 ‘남북관계의 주기적 단절’을 강하게 비판했다. 두 차례에 걸친 남북대화 중단의 근본 원인이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결여”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국방개혁 2020을 통해 군비증강 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진단한다.
정치분야를 다룬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정치전략의 오류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세력을 적극 동원하려던 초기 전략이 철도 파업과 이라크 파병 등을 계기로 벽에 부딪히자 중도·보수적 유권자까지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트라이앵귤레이션’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본다. 문제는 “지지세력이 될 수 없는 상대를 포섭하기 위해 무리한 의제를 반복적으로 제기하면서 지지기반의 균열만 초래했다”는 것인데, 대표적 사례로 꼽는 것이 대연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다. 이 교수는 대연정 제안이 호남/비호남, 친노/반노의 균열을 악화시키고, 한-미 에프티에이 추진은 진보진영과 이념적 균열을 표면화함으로써 지지기반의 전면적 붕괴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전병유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장전략의 부재’를 꼬집었다. ‘동반성장론’을 표방했지만 성장·분배를 조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전략, 특히 설득력 있는 성장전략을 제시하지 못해 소모적인 우선순위 논란에 휘말림으로써 정책 추진의 동력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양극화 문제를 공론화했으면서도 내수·서비스·중소기업 육성과 관련한 과감한 정책전환을 이루지 못해 상황 악화를 막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주택정책과 관련해선 초기부터 공급·조세·금융정책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추진하지 못한 점, 집값 억제와 모순되는 각종 개발정책을 남발한 점 등이 도마에 올랐다.
글쓴이들은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만 비판의 칼끝을 겨누지는 않았다. 서문을 쓴 이일영 한신대 교수는 “실패의 책임을 두고 격론이 오갔지만, 노무현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진보개혁진영 역시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진보세력은 ‘이명박 때리기’에 열중하기에 앞서 지난 5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갑우 교수는 “진보진영은 무엇이 좋은 정책인지를 알고 있지만, 좋은 담론과 정책만으로는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그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구상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한-미 동맹의 민주화나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위성만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미시적 수준의 설득력 있는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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