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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만사형통·상왕…‘비공식 권력’ 개입의 그림자

강산21 2008. 12. 9. 11:52

이상득, 만사형통·상왕…‘비공식 권력’ 개입의 그림자

기사입력 2008-12-09 00:30 |최종수정2008-12-09 03:25 

ㆍ끊이지 않는 논란 실체는
ㆍ“사심없이 동생 지킬 사람”
ㆍ정권 핵심부 생각이 토양
ㆍ당내정치 곳곳 개입 흔적
ㆍ‘2인자’로 있는 한 못피해

#1. 지난 6월 초의 일이다. 촛불위기 타개를 위해 한창 여권의 쇄신이 거론되던 때다. 당시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포함한 청와대의 전면 인적쇄신 흐름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한승수 국무총리 등 내각책임론이 급부상했다. 진원지는 이상득 의원이었다. 그가 당밖 이른바 원로 공신그룹의 의견을 모아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한 직후였다. 박근혜 전 대표의 ‘총리 기용’ 등 ‘박근혜 구원투수론’과 함께였다.

#2. 앞서 18대 총선 공천이 한창이던 3월 초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늦은 밤 서울 성북동 이 의원의 집을 찾았다. 서울지역 공천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풍문이 떠돌던 때였다. 이 의원의 귀가가 늦어지면서, 그 초선 의원은 밤이 이슥하도록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 끝내 이 의원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지난해 대선 이후 이 의원의 국회부의장 방에 이력서가 쌓이고, 전·현직 의원을 포함한 여권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잇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여권내 위세와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늘 “나는 입을 다물고 있고, 국내정치는 할 일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그를 둘러싼 ‘권력 정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만사형통(萬事兄通)’ 논란부터 여당 내부의 ‘영일대군’ 별명, 최근 ‘상왕정치’ 비판까지 모두 그를 둘러싼 ‘비공식 권력’의 그림자들이다.

혈육이란 대통령의 상징적 신임이 출발점이고, 이는 다시 사람과 정보를 모으면서 ‘힘’이 커지는 ‘선순환(?)’의 상황이다. 여기에는 “마지막까지 사심없이 대통령을 지킬 사람”(친이계 한 의원)이란 정권 핵심부의 생각이 토양을 이룬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도 신문에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근본적으로 형님 이야기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 출마를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인척이지만 공인으로 감시받겠다. 국회직·당직엔 일절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음지에서 동생의 성공을 돕는 ‘병풍’ ‘방파제’ 노릇만 충실히 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의 현실정치, 특히 당내 정치 개입 흔적은 심심찮게 감지됐다.

지난 8월 초 ‘원박’ ‘월박’ 이야기가 나오던 때 한 친이계 의원이 친박계와 가깝다는 내밀한 보고를 받고, 이 의원은 즉각 해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심하게 질책하며 경고음을 보냈다. 지난 9월 초 불심을 달래기 위해 당내에서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론’이 비등하자, “어청수 청장은 잘못한 게 없다”는 말로 진화했다. 그 이후 어 청장 경질론은 잠복했다. 같은 무렵 이 의원은 직접 경북 영천 은해사 등 전국 사찰을 찾아다니며 물밑 무마작업도 벌였다.

지난달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로 ‘친박계’를 중심으로 비판이 커지자, 이 의원은 “뭘 알고 반발하느냐”고 공박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귀국’ 문제가 당내 갈등의 불씨로 떠오른 지난달 초엔 이 전 최고위원의 측근인 진수희 의원을 만나 ‘내년 귀국’으로 정리했다. 진 의원이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를 상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다음날이다.

“인사는 개입했는지 안했는지 한 번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 안했다고 해도 안 믿을 것 아니냐”면서 일관되게 부인해온 인사 개입 문제도 종종 의혹을 살 장면들이 포착됐다.

지난 1월 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내 한 중진 의원이 이 의원에게 특정 부처 차관 후보의 이력서를 건네는 장면이 언론에 잡힌 것이 단적인 예다. 지난 6월 친이계의 정두언 의원이 이 의원을 적시하면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직격한 것은 인사 개입이 단순한 의혹 차원을 넘어선 징표로 받아들여졌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이 의원 정도 되면 이번 경우처럼 많은 사람들이 문건을 갖다준다. 문제는 본인이다. ‘이런 것을 원치 않는다’고 강하게 잘라야 하는데, 보니까 자꾸 넣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의원을 둘러싼 비공식 권력 논란은 그가 무대 위든, 뒤든 사실상 ‘국정 2인자’로 남아있는 한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김광호·박영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