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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깃털이 주는 교훈

강산21 2008. 11. 27. 12:03

새의 깃털이 주는 교훈


서구인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구세계 사람들은 모든 백조는 흰 새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은 경험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 난공불락의 신념이었다. 그런데 건은 백조 한 마리가 두어 명의 조류학자(그것도 새의 깃털 색깔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조류학자) 앞에 홀연히 나타났으니 얼마나 흥미롭고 놀라웠을까. 이 사건에는 조류학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관찰과 경험에 근거한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마리가 넘는 흰 백조를 보고 또 보면서 견고히 다져진 정설이 검은 백조 한 마리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못생기기 짝이 없었다는) 검은 백조 딱 한 마리로 충분했다.


이야기가 철학적, 논리적 질문으로 빠져들기 전에 경험적 세계로 한 발짝 물러서 보자. 덧붙여 내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되물어 온 문제도 생각해 보자. 내가 특별히 대문자로 표기한 '검은 백조(Black Swan)'는 다음 세 가지 상징성을 지니는 사건이다.


첫째, 감은 백조는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놓여있는 관측값을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다. 극단값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할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검은 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 준다. 셋째,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요컨대 희귀성, 극도의 충격, (선견지명은 아니지만) 예견의 소급 적용, 이 세 가지가 검은 백조의 속성이다. 우리는 몇 마리 되지 않는 검은 백조의 존재에서 찾아낸 원리로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사상과 종교가 발흥하는 이유,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 등등. 1만 년전 우리가 흥적세를 벗어나던 때부터 이러한 검은 백조 효과는 위력을 발휘해 왔다.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복잡성이 증대하기 시작하면서 이 효과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반대로 일상의 사건들, 즉 우리가 신문 따위를 통해 배우고 토론하고 예상하려 하는 사건들은 점점 아귀가 맞지 않는 결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조라고 할 만한 사건들만 떠올려 보아도 우리의 세계 인식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따분한 역사 시간에 주입된 지식을 지금 말해 보라는 뜻은 아니다). 히틀러의 등장과 그에 이은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는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급속한 붕괴는 또어떤가?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생과 인터넷의 확산, 1987년의 주식시장 붕괴(그보다 더 예상하지 못했던 급속한 시장회복)도 누가 예상했는가? 갖가지 유행풍조, 전염병, 사상, 새로운 예술 장르와 유파의 등장 따위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검은 백조의 역학과 관계가 있다. 그야말로 우리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사건과 사물들이 그러하다.


낮은 예견 가능성과 큰 충격은 검은 백조 효과를 거대한 수수께끼로 비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 더 내 관심을 끄는 현상은 우리가 검은 백조란 없다고 가정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이나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벌써 한 세기가 넘도록 사회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불확실성을 제어하는 도구를 갖고 있다고 착각해 왔다. 불확실성의 과학을 현실의 세계에 적용하다 보니 종종 웃지 못할 결과가 벌어진다. 내가 종사하는 금융과 경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지금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재무설계사를 찾아가서 '리스크(risk)'의 정의를 내려달라고 해보라. 틀림없이 그 재무설계사는 검은 백조가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한 방책을 내놓을 것이다. 이런 방책을 내놓는 그의 예견 능력은 점성술사의 예견력보다 그리 높지 않다. 사회적 문제에서 이런 일은 그야말로풍토병이다.


이 책의 중심주제는 무작위성에 대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맹목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특별히 맹목성과 무작위성이 크게 발휘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려 한다. 즉 과학도건 비과학도건,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건 개미군단이건 어째서 한결 같이 1달러는 못보고 1페니에 목을 매는 것일까? 도대체 심대한 결과를 낳을 증거가 명명백백한 굵직한 사건들은 도외시하고 어째서 사소한 일들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덧붙여 내식대로 말한다면, 어째서 신문을 읽으면 오히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줄어드는 것일까?


인생이란 한 줌에 불과한 의미심장한 사건들이 몰고 온 파장이 쌓인 결과라는 데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검은 백조의 역할을 따져 보는 것은 그저 안락의자에 앉아서, 혹은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할 수 있을만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각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 각자가 태어난 이래 발생한 숱한 사건들 가운데 의미심장한 것들, 신기술, 새로운 발명품 등을 떠올려 본 뒤 그것들이 처음 일어낫던 당시의 환경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실제 결과를 비교해 보라. 예상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직업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만나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배신을 당하고, 갑자기 일확천금이 들어오거나 혹은 빈털터리로 전락하거나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내린 선택들 가운데 사전에 계획했던대로 된 일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우리가 모르는 것


검은 백조 원리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많은 경우, 검은 백조 현상은 예상 밖의 일이기 때문에 발생하며 또 그래서 그 효과가 증폭되는 것임에 유의하자.


<블랙 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동녘 사이언스, 2008,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