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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퀼라트의 눈물

강산21 2008. 11. 22. 15:13

이마퀼라트의 눈물


케셰로 병원 피스툴라 병동에서 여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는데 남자 두 명이 들어 왔다. 그들은 입구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한 소녀에게 링거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주사를 놓자 그 소녀는 누운 채로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선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주사의 통증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신세에 대한 감정이 복받친 눈물일까?


그 눈물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 때문임을 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간호사들은 이 소녀의 배에 있던 한 뼘 크기의 반창고를 뜯어냈다. '저 반창고는 어디서 많이 보던 반창고인데.'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아프간여인 카마르의 배에있던 것과 거의 같은 위치, 같은 크기였다. 반창고를 뜯으니 시뻘건 외상 자국이 나왔다. 정말 한 뼘 정도 되는 벌어진 상처였다. 왜 의사들은 이 배의 상처를 실로 봉합하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벌어진 채로 놔두는 것일까? 잠시 후 간호사들이 이 상처를 소독하자 소녀는 고통에 신음했다.

간호사들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이 소녀의 이름은 이마퀼라트Immaculate며 열여덟 살이다. 마시시에 있는 부파만도 마을에 살다가 2주 전 FDLR반군 세 명에게 강간을 달했다. 그 당시 그녀는 임신 7개월이었는데 강간으로 인해 태아의 상태가 위험해지자 그 마을 의사들이 즉석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수술로 태아를 잃었지만 이마퀼라트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녀는 배에 난 큰 상처와 피스툴라를 동시에 얻었다. 마음의 병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큰 수술자국에 병균이 옮으면 안 되는데 큰 걱정이다. 병원 측에서는 그녀의 복부 수술과 피스툴라 복원 수술을 따로 해야 할 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현실과 너무나 모순적이다.


'이마퀼라트'는 가톨릭 이름으로, 순결함을 뜻한다. 특히 성모 마리아의 성령을 통한 잉태, 예수의 순결한 탄생을 의미하지 않는가! 큰 눈망울이 인상적인 이 아리따운 이마퀼라트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겨우 살아 남은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뜨렸단 말인가!

이마퀼라트의 상처 소독이 끝나자 함석지붕 위로 무섭게 쏟아지던 소나기가 멈췄다. 먹구름 사이로 해가 조금 비치자 여자 두 세 명이 플라스틱대야와 비누를 들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여자들은 헝겊 기저귀, 루빈도를 손으로 빨려고 나온 것이다. 이들은 건물 밖 잔디밭에서 빨래를 하고 널었다. 이 여자들은 피스툴라 수술을 받아 소변이 더 이상 새지 않을 때까지 이 빨래를 계속 되풀이해야 한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종이 생리대가 없어 헝겊 생리대를 개울가에서 빨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 달에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어쩌면 평생동안 이 헝겊 기저귀를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빨아야 한다. 도대체 누가 이 여자들을 이렇게 살게 했는가?

그 후로 나는 열흘에 한번 꼴로 케셰로 병원에 갔다. 갈 때마다 이마퀼라트의 안부를 물었다. 310일이었다. 여성 병동에 가보니 이마퀼라트가 밝은 색의 나무지팡이를 짚고 일어서 있었다! 상태가 호전된 것일까? 그녀는 나를 보더니 악수를 청했다. 나도 이제 스와힐리어를 조금 배우기 시작했다.

"잠보(안녕)"

이마퀼라트가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로 답한다.

"잠보산나(안녕)"

"이마퀼라트, 나는 이마퀼라트가 항상 자리에 누워 있는 줄만 알았어. 이제는 좀 걸을 수 있어?"

깡마른 체구의 이마퀼라트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나는 통역을 통해 이마퀼라트가 결혼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집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였다. 통역 케네디는 이마퀼라트에게 몇 마디 물어보더니 뒤돌아 이렇게 얘기 했다.

"이마퀼라트는 결혼을 안 했대. 그 이상은 얘기를 안하는군"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이마퀼라트는 강간 당시 임신7개월이었고, 허술한 제왕절개 수술로 배 한복판에 큰 상처가 났다. 그런데 결혼을 한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그 임신도 강간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마퀼라트의 인생은 어쩜 그렇게 기구한 것일까. 그러나 속된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스스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지키고 싶은 사생활이고, 마지막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쌍한 이마퀼라트. 그녀는 자신의 침대 주변만 겨우 걸어 다닐 정도였다. 열여덟 살에 꽃다운 나이에 왜 그녀는 그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녀는 힘이 없는지 나무 지팡이에 두 손을 얹고 그 위에 자신의 턱을 살짝 얹었다.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3월 한달간 나는 반군들을 취재하고 르완다에도 다녀왔지만 항상 이마퀼라트가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눈물이 나의 마음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불쌍한 이마퀼라트! 아프리카에서 여자로, 투치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어린 나이에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다니!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3월 말 케셰로 병원을 다시 방문해 여성 병동을 책임지고 있는 길레 박사에게 이마퀼라트에 대해 물었다. 길레 박사는 내게 4월 초쯤 이마퀼라트가 복부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내가 이마퀼라트의 수술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니 길레 박사는 한 명만 도와주면 다른 환자들이 알게 돼 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결국 그녀만을 위해서는 기부하지 못했지만 병원의 여성 병동에 작은 금액이나마 기부할 수 있었다. 지불할 당시에는 나와 길레박사가 서면에 서명을하고, 두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증인으로 입회했다. 내 옆에서는 케네디의 조수 마누Manu가 통역을 도왔다.

나는 길레 박사를 만나고 다시 여성 병동으로 돌아와 이마퀼라트를 찾았다. 그녀는 마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이마퀼라트가 곧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뻐서 당장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마퀼라트. 잘 있었어? 방금 의사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는데 네가 2주 후에 수술을 받는데. 피스툴라 수술은 아니고 일단은 배 수술이래. 그래도 참 잘됐잖아?"

이마퀼라트는 마당의 잔디밭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그녀는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마누에 따르면 "몰랐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 병동 쪽으로 향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결국 이마퀼라트의 수술을 확인하지 못한 채 콩고를 떠났다. 지금은 수술 경과가 잘 진행됐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도 각 단체와 병원, 그리고 익명의 기부자들 덕분에 콩고의 강간피해 여성들이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그녀가 모든 수술을 마치고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정은진, 웅진지식하우스, 2008. 6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