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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기고] 쌀직불금 논란 속에 농민은 없다

강산21 2008. 10. 27. 22:31

[옥중기고] 쌀직불금 논란 속에 농민은 없다

낡은 지주.소작제 폐지, '경자유전' 현실화 등 제2의 토지개혁 필요

문경환,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등록일: 2008-10-27 오후 4: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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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소득보전직불금(이하 쌀직불금) 논란이 꺼질 줄 모르고 연일 언론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 민주당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음을 주장하느라 티격태격이며 이 와중에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한승수 국무총리가 담화를 발표하는 등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쌀직불금 제도의 허점

농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다 보니 도시민들에겐 생소한 쌀직불금 제도란 대체 무엇인가.

이 제도는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 재협상에서 출발한다. 당시 쌀시장 개방에 대비해 정부는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쌀소득보전기금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 법의 내용은 3년에 한 번 지난 3년간 쌀값 등을 기준으로 목표가격을 설정하고 이 가격과 실제 쌀값의 차액 가운데 85%를 직불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8~2010년 목표가격은 80kg 기준 17만 83원으로 책정되었고 2006년에만 99만 800여명이 직불금을 받았다. 또 2005년부터 지금까지 3년간 총 3조 7천억원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이 쌀직불금 제도에는 허점이 많았다.

애초에 ‘대상농지에서 실제 논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만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지만 마을 이장 등에게서 ‘농지 이용 및 경작현황 확인서’에 도장만 받으면 누구나 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도시에 살면서 농촌에 땅을 갖고 있는 부재지주들이 소작인과 이장을 협박(?)해 도장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소작인들은 계속 농사를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주의 요구에 따라야 했다.

또 대상자의 소득규모나 지급면적 상한규정이 없어 다른 직업을 갖고도 농지가 있으면 쉽게 돈을 받을 수 있고 부농일수록 돈을 더 많이 받는 편향까지 생겼다. 실제 충남에서 150억 상당의 농지 등에서 연 8억 6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2년간 2억 6천만 원의 직불금을 받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쌀직불금이 사실상 눈먼 돈이라는게 알려지면서 이 제도를 알게 된 지주, 공무원 등이 서류를 조작하여 쌀직불금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 총 수령자 99만 8백여 명 가운데 17만 3947명이 무려 1683억 원을 부당 수령하였다. 이들 가운데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이 무려 4만 6634명으로 부당수령자의 26.8%를 이룬다. 또한 1년간 11만 5천여 명이 농지를 사들여 직불금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59%는 다른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쌀직불금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정작 농민 가운데 13~24%는 쌀직불금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쌀직불금 제도의 근본적 문제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쌀직불금 제도를 두고 정치권은 연일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인 농민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온갖 보도를 하면서도 분노한 농민들의 기자회견이나 규탄집회 등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누구 하나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정치인, 언론인들이 과연 이 문제를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을 위해 다루는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다루는지 의심스럽다.

쌀직불금 문제의 근원에는 쌀시장 개방, 농업 개방이라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도사리고 있다. 애초에 농업을 개방하지 않고 식량주권을 지켰다면 이런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세계화시대 개방은 대세다’, ‘전체 경제 이익을 위해 농업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농업도 세계와 경쟁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가 사회 전반에 만연했으며 농업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은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농업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다른 건 몰라도 식량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식량은 곧 안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다른 산업 분야에서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식량주권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1998년 프랑스 영화인들은 문화적 예외원칙을 내세우며 영화산업 개방을 저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자간 투자협정(MAI) 체결을 무산시켰다. 문화가 예외라면 식량이라고 예외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최근 중국산 제품의 멜라민 파문만 보더라도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항상 외부의 위험에 과도하게 노출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농업시장 개방과 함께 정부의 농업정책도 중요한 문제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농업을 근본적으로 살릴 수 있는 농업정책을 내놓은 정부가 있었는가. 이는 정부나 보수정당들이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 현실과도 관련 있다.

쌀직불금 제도도 보면 쌀시장 개방으로 몰락할 농민들에게 일시적으로 돈 몇 푼 안겨줘 충격을 줄이겠다는 제도다. 과연 이런 제도로 2015년 쌀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농민들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농업이 몰락한 후 올해 초처럼 세계 곡물가가 폭등하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아직도 농촌에 남아있는 봉건적인 지주-소작 제도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즉 농사짓는 이가 땅을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대도시 주변 농지의 60~80%가 부채지주의 소� 추정된다. 1996년 농지 관련 법률이 농지법으로 통합되면서 도시민의 농지 구입이 쉬워지고 이에 따라 많은 도시의 땅투기꾼들이 농지를 사들였다. 이들은 강제 처분과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처럼 서류를 꾸몄고 덤으로 쌀직불금까지 받았다. 일부 소작농들은 이런 지주의 서류조작을 거부했다가 소작지를 뺏기고 쫓겨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전근대적적 지주․소작제를 없애고 ‘경자유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농민들은 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제 2의 토지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농업은 우리 국민의 생존을 책임진 중요 산업이다. 농업의 가치는 돈으로 결코 환산할 수 없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은 농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쌀직불금 사태가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성동 구치소에 수감 중인 한국민권연구소 문경환 상임연구원이 보내 온 글입니다. 10월 21일에 작성된 원고를 그대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