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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市의원 법정 야유회?…재판 기다리며 농담-장난

강산21 2008. 9. 26. 13:10

서울市의원 법정 야유회?…재판 기다리며 농담-장난

기사입력 2008-09-26 03:20 |최종수정2008-09-26 05:58 
[동아일보]

● 100만원 받아 택시비 쓰고 식사하면…

● 내 피고인석에 가서 대신 앉아볼래?

저 사람들 기억못해, 안경 바꿔쓰면

● 법정에 의자 부족한데 市예산 좀 줄까

● 재판 뒤에 우리끼리 소주나 한잔 하자

김귀환 의장 “시간 충분했다면 전원에게 돈 줬을것”

“100만 원 받아 놓고 (재판 받으러 다니느라) 택시비 쓰고 식사하고 나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앞. 18대 국회의원 총선과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를 전후해 김귀환(60·구속) 서울시의회 의장에게 100만 원씩의 돈봉투를 받은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및 뇌물수수)로 기소된 28명의 서울시의원 중 몇 명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재판을 받으러 왔다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재판을 기다리던 한 시의원이 일행에게 “내 자리(피고인석)에 가서 대신 앉아 볼래?”라고 말을 걸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저 사람들(재판부)은 기억도 못 해. 안경만 바꿔 쓰면 돼”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의원이 “자리가 부족하면 의자를 좀 갖다 놓지”라며 피고인석이 부족한 것을 불평하자 옆에 있던 시의원은 “시에서 예산을 좀 지원해 준다고 해”라고 맞받았다. 대화 도중에 “재판 끝나면 소주나 한잔하자”는 말도 나왔다.

이날 재판에서는 김 의장이 하루 종일 증인 신문을 받았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 중 돈을 줄 대상을 어떻게 선정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당시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 100여 명 전원에게 돈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의원에겐 음식점 등에서 지갑의 수표가 집히는 대로 줬다”는 진술도 했다.

또 4명의 시의원에게는 300만∼500만 원씩 건넨 것에 대해 “의원들이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줬다”며 “평소 스타일상 돈 몇 백만 원 빌려주는 데 이자나 변제기일, 차용증 같은 거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서울시 재선의원인 김 의장은 의류사업으로 돈을 번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검사가 ‘왜 하필 4월에만 4명에게 한꺼번에 돈을 빌려줬느냐’고 거듭 묻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건 빌린 사람들한테 물어보라”고 답했다.

재판 도중 여러 차례 휴대전화 벨소리와 진동음이 울렸고, 일부 피고인은 그때마다 자주 법정을 들락거려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법정 들락날락… 곳곳서 휴대전화벨 울려

오후 4시 반경 한 시의원은 일어나 “의원 세미나가 있는데 좀 이따가 나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재판장인 형사합의21부 이광만 부장판사의 표정이 굳어졌고 따끔한 훈계가 이어졌다.

“피고인들이 법정 안에서는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법정 밖에서는 온갖 농담을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에 떠 있던데, 법정 바깥에서 처신을 좀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재판이 끝나기 전에 나가는 것을 막진 않겠지만, 퇴정한 시간 이후로는 불출석한 것으로 기록하겠다”고 못 박았다.

순간 법정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몇몇 시 의원들은 멋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법정 앞에서 벌어진 이들의 대화는 이날 오후 3시쯤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재판부는 잠시 휴정한 틈에 인터넷 기사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8시경 10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재판이 끝날 무렵 재판장은 다시 한 번 “인터넷에 ‘피고인들이 법정에 나온 게 아니라 야유회 나왔다’는 식의 기사가 나왔다”며 거듭 훈계를 하려다 말을 멈췄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시의원들은 오후 8시 30분경 법정을 나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한 시의원은 “일부 의원이 스트레스 풀려고 농담한 것을 보도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대부분 의원들은 엄숙하게 재판에 임했다”고 항변했다.

법원 청사를 나선 시의원들은 “뭉쳐서 가면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며 뿔뿔이 흩어졌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