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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사 피바람’ 속, 노조는 선유도로 집단휴가 ‘파문’

강산21 2008. 9. 19. 11:53

KBS ‘인사 피바람’ 속, 노조는 선유도로 집단휴가 ‘파문’
사원행동 측 “관제사장의 광기어린 인사전횡” 맹성토
입력 :2008-09-18 16:55:00  
[데일리서프 민일성 기자] 이병순 KBS 사장이 지난 17일 밤 기습적으로 단행한 보복성 인사 조치에 대한 KBS 사원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KBS노조는 18일 오전 선유도로 휴가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이날 KBS 노조 게시판에는 “밥통하고 목 만 챙기지 말고 언론이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봐라”, “양아치 쓰레기보다 못한 어용 노조는 자폭하라”, “노동조합이라는 건 노조원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앞장서서 고쳐야 하는데 보복성인사 조치에 대해서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등 강도 높은 비판 글이 올라왔다.

KBS 내부의 의견 차이로 이병순 사장 취임을 인정하는 노조와 반대하는 ‘KBS 사원행동’이 서로 입장을 달리한다손 치더라도, 이와 같은 ‘피의 숙청’이 있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휴가를 떠난 것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은 18일 규탄대회를 열어 “이병순 관제사장의 광기어린 인사전횡”이라고 맹성토했다. 미디어포커스의 한 기자는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차라리 나도 인사 대상에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보도본부 시사보도팀의 ‘미디어포커스’의 김경래 기자는 이날 오전 보도본부게시판에 올린 “차라리 저도 인사를 내 주십시오”란 제목의 글에서 김용진 탐사보도팀장의 부산총국 발령에 대해 “성향이 맞지 않고,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 이유였겠지요. 눈엣가시인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을 만든 사람이라는 이유였겠지요”라며 “보복성 인사라는 사실은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인사는 KBS 기자들을 그저 고분고분한 순둥이로 만들겠다는 거 아니냐”며 “기자들을 이런 방법으로 순치하려 한다면 KBS의 저널리즘은 희망이 없다”고 성토했다.

김 기자는 더 나아가 “어짜피 원칙도 절차도 없는 인사라면 저도 포함시켜 주십시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게 아무 소용없다, 조용히 보신하고 줄 잘서면 KBS에서 출세한다는 냉소적인 인식이 후배들의 몸에 체득되고 있다”면서 “보도본부의 공기에 불길한 패배주의의 냄새가 지독하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규탄대회를 갖고 “이번 막가파식 보복인사를 보며 과연 관제사장에게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도대체 KBS를 얼마나 더 망가뜨려야 관제사장의 이 광기가 멈출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사원행동은 성명을 통해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판적 시사ㆍ보도프로그램 제작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라며 “KBS뉴스의 ‘탐사보도’, ‘시사기획 쌈’, ‘미디어포커스’는 지금의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KBS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해온 대표적인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이다. 탐사보도팀과 시사보도팀의 팀장을 교체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다수의 팀원들을 아예 그 부서에서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사원행동은 또 “인사 대상자들의 의사는 깡그리 무시됐고,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켜지던 순환근무의 원칙과 기준도 철저히 무시됐다”며 “사실상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표적 사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원행동은 “KBS 역사에서 이 같은 시도는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양심적인 KBS 구성원들과 깨어있는 국민들이 이를 결코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며 “국민의 방송 KBS를 사장자리를 베풀어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시키고, 이를 위해 KBS 구성원 모두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 광기를 멈추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날 자유 발언에서 사원들은 이번 ‘보복성 인사 조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시사IN 고재열 기자의 ‘독설닷컴’에 따르면 양승동 사원행동 대표는 “KBS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인사가 됐다”며 “회사가 큰 화를 부르는 첫 단추를 꿰었다”고 경고했다.

이병순 사장 취임사를 조목조목 비판해 부산방송총국으로 인사발령된 최용수 PD는 “지역에서 더 큰 투쟁의 촛불을 일으켜 횃불이 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TV 제작본부에서 시청자센터로 발령된 현상윤 PD는 “우리가 비참하게 당하는데 뉴라이트 노조께서는 선유도로 ‘화려한 휴가’를 떠나셨다”며 “천일 동안 파업하는 노동자도 있는데 이까짓 부당인사에 불복할 수 없다. 최후의 1인까지 투쟁하자”고 성토했다.

김태영 기자는 “이번 인사로 탐사보도팀은 완전 학살당했다”며 “탐사보도팀은 권력을 물 수 있는 ‘사냥개’들이 와서 일하는 곳인데 이 사냥개들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KBS가 정권의 애완견이 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KBS가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PD연합회도 이날 오후 긴급 성명을 내고 “높아진 KBS의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일했던 홍보팀 직원들 또한 모두 어딘가로 내쫓겼다”며 “‘관제사장 이병순’이 현업 시절 얻은 별명이 ‘독일병정’이라더니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는 막무가내 식의 ‘칼부림’이다”고 성토했다.

PD연합회는 “이병순 씨가 아무리 ‘관제사장’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KBS 출신’으로서 KBS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이번 부당보복인사는 철회해야 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또한 PD연합회는 “KBS 구성원들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며 “관제사장의 야만적인 칼부림에 힘겹겠지만 그래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구성원들의 노력은 끈질기게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PD연합회는 “수많은 국민들과 시청자들, 그리고 시민사회는 여전히 KBS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KBS 구성원들이 깨어있다면 국민들은 결코 KBS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또한 KBS 구성원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고 밝혔다.

민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