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청와대의 오마이뉴스 상대 5억 소송, 사실상 ‘포기’

강산21 2008. 9. 15. 11:00

[데일리서프 하승주 기자] 청와대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낸 5억원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와 관련된 진실 규명이 미궁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정적인 이유는 청와대가 녹취록 제출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인터넷신문을 상대로 이와 같은 초유의 청구를 하게 된 계기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6월 6일 오마이뉴스의 보도 때문.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각계의 여론을 청취하겠다며 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회동을 진행중이었다.



 

오마이뉴스는 불교계 지도자들과 만나 간담회를 가진 다음날인 6월7일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촛불집회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고 당시 참석자의 전언을 인용해 "촛불 배후는 주사파 친북세력"이란 제하의 기사로 보도했던 것.

오마이뉴스는 당시 "주사파와 북쪽에 연계된 학생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활동을 안 하다가 내가 집권하니까 이 사람들이 다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이 뒤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것 같다"는 발언을 이 대통령이 했다고 보도했다.

이 발언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자발성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해석되어 더욱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청와대는 보도 다음날인 6월 8일 즉각 해명자료를 내면서 해당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당시 청와대의 해명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한총련의 학생들이 가담을 하고 있어 걱정이다, 빨리 경제를 살려서 서민도 살려야 하고 젊은 사람 일자리 만들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발언했을 뿐 주사파 발언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법적 대응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후 오마이뉴스는 당시 참석했던 불교계 관계자를 통해 이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청와대도 법적대응의 뜻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결국 청와대는 6월 23일 언론중재위원회에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언론조정신청을 내게 됐다.

이 조정신청은 이명박 정부 최초의 언론사 상대 소송으로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과거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를 향해 언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사실에 대해 '언론탄압' 등의 이유로 비판한 바가 있어, 집권하고 나니까 그렇게 비난했던 전 정권과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그간 청와대와 오마이뉴스와의 분쟁은 언론중재위를 통해 진행돼 왔다. 그러나 취재 결과 언론중재위의 조정과정은 '지지부진'과 '흐지부지'란 말로 요약되고 있다.

이번 분쟁에서 핵심은 6월6일 불교계 지도자와 가졌던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마이뉴스에서 보도했던 '주사파가 배후'란 발언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여부.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은 비공개라 할지라도 반드시 녹음 등의 방법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이 기록물(녹음이든 녹취록이든)만 확인하면 사실여부가 깨끗이 정리되고 승패를 가를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 녹취록 등은 끝까지 공개되지 못했다. 조정을 맡은 언론중재위 제4중재부는 먼저 2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첫째 녹음을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틀어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확인하거나, 둘째 청와대측이 녹음을 풀어 녹취록을 만들고, 중재부가 이를 가지고 간담회에 참석한 스님들에게 내용이 사실과 다름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 대통령을 대리한 법무법인 바른의 김재협 변호사는 이 두가지 방안을 모두 거부했다. 결국 중재부는 중재부장 혼자서만 녹음을 듣고, 해당부분만 오마이뉴스에게 확인시키겠다는 3번째 제안을 최종적으로 건넸으나, 역시 거부당했다.

당사자도 배제한 채 중재부만 조용히 녹음을 듣겠다는 제3의 제안은 사실 피조정 당사자인 오마이뉴스에게 오히려 무리한 제안이었으나 청와대 측이 "법적 정치적으로 어렵다"며 이를 거부했다. 중재위에서 청와대 측 인사들은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이 공개될 경우 업무수행이 매우 곤란해 진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재위는 지난 7월 11일 "심증을 형성할 아무런 증거자료가 없다"며 ;중재불성립' 결정을 내렸다. 청와대의 호언장담이 있었기에 당시의 녹음이 공개되고, 그 녹음에 그같은 발언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만 된다면 청와대의 승리가 확정적인 사안이었으나, 결국 청와대는 끝까지 녹음제출을 거부해 중재불성립이 된 것. 이는 청와대의 사실상 패배이며 송사를 포기한 것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언론중재위의 '중재불성립' 이후 2달이 지나도록 법원으로 이 송사를 가져가지 않고 있다. 즉 청와대가 초기에 호언장담한대로라면 즉시 이 사안을 민.형사소송으로 가져가야 원리적으로 맞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 포기론에 무게를 더해주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편하게 나누는 간담회 대화록이 공개될 경우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대통령 대화가 전면 공개되는 선례를 남기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엄격한 비밀엄수의무를 지는 중재위원회의 녹음청취마저 거부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어 흥미를 끈다. 즉 불교계와의 간담회 내용에 오마이뉴스 보도 내용 이상의 '심각한' 발언이 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당내 특정인사에 대한 발언 등등 여러 설들이 정치권에서는 난무하고 있다.

실제 청와대가 3차 심리때 공개한 부분 녹취록에 의하면, 당시 이 대통령은 한총련과 노사모 등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데모대 구성원이 달라지거든요. 이제 노사모 나오고 정치적 단체 나오기 시작하고 그 다음 학생들, 한총련인가 옛날 다 죽어가던 단체가 다시 살아나 학생들이 가담을 하고 하기 때문에. 저는 사실은 걱정이 빨리 경제 살려서 서민도 살려야 하고 젊은 사람 일자리 만들 책임이 나한테 있고..."

청와대가 중재도둥 공개한 내용만으로도 이미 처음 6월 8일 청와대가 공개한 발언 내용과는 큰 거리가 있다. 6월 8일 청와대의 해명자료는 대통령의 말씀을 상당히 윤색한 해명이었던 것이다.

지난 7월 11일 조정불성립 결정 이후, 2달이 흘렀다. 이제 남은 법적절차는 정식 소송이다. 사실확인을 위해 청와대 측에 문의했으나 오히려 "오마이뉴스에 문의해 보시라"고 답변했다. 오마이뉴스 측은 중재불성립 결정 이후 아무런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오마이뉴스 이병선 부국장은 "청와대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거부했다"면서 "오마이뉴스는 이 사태에 대해 분명한 입장과 태도로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