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일본의 100분의 1로 창피한 수준이다. 세계 11위의 글로벌 파워라는 위상에 걸맞은 기여를 해달라.”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베풀지 않는 한국인에게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정부 관료만 반성할 지적일까? 아니다. 우리 스스로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답하기 어려울 듯싶다.
앞만 보고 달려온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어졌다. 부의 편중이라는 문제점을 풀어내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언제 한계에 부딪힐지 모른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언급했듯 따뜻한 피가 흐르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첫걸음은 바로 기부문화다.
최근 한의학 박사 1호인 한의학계 원로 류근철 씨(82)가 카이스트(KAIST)에 600억원에 가까운 부동산과 골동품을 기증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이 뉴스가 화제가 됐다는 얘기는 한국이 그동안 기부에 인색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매경이코노미는 한국 기부문화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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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부 현주소는…기업 의존도 갈수록 높아져
=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회복지단체장들의 한국 기부문화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요약된다. 기부문화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보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기부액수가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기부 총액은 줄곧 늘었다. 2003년 1382억원에서 지난해 2600억원을 넘을 때까지 꺾임 없이 상승곡선을 그렸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졌어도 기부의 손길은 이어졌다는 얘기다.
또 부유층부터 서민들까지 골고루 기부액수를 늘려간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고액기부자클럽을 본뜬 한국형 고액기부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가 탄생했다. 1억원 이상 기부(또는 약정)한 개인기부자들의 모임으로 올해까지 8명이 가입했다. 아직 액수는 9억원으로 많지 않지만 부유층의 신분에 맞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단초로 평가받는다.
소액기부도 증가세다. 좋은 예가 인터넷포털 업체 NHN이 진행하는 해피빈 프로젝트다. 3500만명 네티즌들은 ‘메일’ ‘블로그’ 등 네이버 서비스 곳곳에서 100원부터 기부할 수 있다. 3년째인 이 서비스를 통해 쌓인 모금액은 72억원. 참여 네티즌은 160만명이 넘는다. 해피빈서비스는 소액기부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인터넷 소액기부는 충남 태안 바다 오염 때도 빛을 냈다. 싸이월드에서 태안 살리기 모금운동을 펼치자 불과 2주 동안 1만5000명이 참가해 1000만원이라는 모금액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누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과장은 “1000만원 이상의 고액기부자와 2만원 미만 소액기부자가 2000년 이후 동시에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일회성 기부 여전 하지만 기부문화가 뿌리내리기까지 갈 길이 여전히 멀다. 기부가 일상적인 생활문화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개인기부 참여율을 보면 잘 나타난다. 이는 국민 가운데 몇 %가 정기적인 기부에 참여하는가를 나타내는 비율. 나눔 문화가 뿌리 깊은 미국은 83%에 달한다. 캐나다는 이보다도 높은 85%다.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은 정기적으로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절반 수준인 45%에 불과하다. 액수로 따지면 격차는 더 커진다. 미국 1인당 연간 기부액은 113만원. 반면 한국은 10만원 수준으로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국민소득 격차를 감안해도 미국의 5분의 1도 기부를 안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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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재단의 행사 모습 |
기업 중심의 기부도 지적받는다. 미국에서는 전체 기부액의 개인 비중이 76%에 달하지만 한국은 이에 턱없이 모자란 30% 수준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미국도 경제사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력과 기부액수가 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기부교육을 시켜 몸에 배도록 만드는데 한국은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며 “연말이면 모금액이 늘어나는 일회성 기부행태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임은희 사회연대은행 실장은 “미국 자료를 보면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의 70% 가까이가 성인이 돼서도 봉사활동에 참여했지만 어린 시절 봉사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성인이 돼 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33%에 불과했다”며 “어렸을 때부터 나눔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